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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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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어떻게 자라게 될까...

... 조회수 : 9,783
작성일 : 2012-05-23 23:21:34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까?

여자 아이가 아빠와 함께 가는데, 아빠는 대낮부터 술에 취에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횡설수설 하고 있었죠.

아이는 그런 아빠 모습이 익숙한 듯이 "아빠 빨리 와~" 하면서 아빠를 부르더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저러니 여자가 못살고 도망갔지." 합니다.

 

며칠 전 보았던 이 한 장면이 계속 맴돕니다.

지금은 삼십대 중반이 되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

남 부럽지 않은 남편과 두 딸, 탄탄한 직장.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노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

나의 아버지도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진탕 술 마셔서 일을 못하게 되면 며칠 씩 쉬고

그러다 내키면 일하고.

안주도 없는 깡소주.

소줏잔도 아닌 글라스 잔에 가득 부어 마시던 모습.

방에 대자로 누워 전축 볼륨 만땅으로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선 이웃이 항의하면 되려 화내던 모습.

성질나면 집안 집기들 던지고 내가 초등학교 땐가, 칼을 들고 이웃과 시비 붙던 모습도 생각나고.

술에 취해 누우면 두 남매 무릎 꿇려 앉혀놓고 했던 이야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자신의 한쪽 팔을 내밀어 딸랑구~ 여기 누워라~ 하면 저는 아빠 팔을 베고 아빠가 잠들 때까지 조용히 누워있곤 했죠.

 

며칠 전 보았던 그 여자 아이와 술 취한 아빠를 보니

힘들었을텐데도 동생과 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낸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던가.

엄마에게 그냥 이혼하라고 처음 이야기 했을 때

그래도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다.

할머니도 불쌍하다.

늬들도 불쌍하다.

....

....

 

지난 2월 말에,

올해 환갑을 맞이한 아빠가 간경화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미워하기도 많이 미워했고

나중에는 그냥 체념해버리기도 했지만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 속에 덮어 두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비로소 차분히 정리되는 듯 합니다.

그렇게 미운 아빠였어도,

자식들이 장성해서 제 밥벌이 할 때까지 살아주셨던 것도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구나.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며칠전 보았던 그 소녀는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까요.

계속 눈가에 맴돕니다.

 

내가,

계속 마음 속으로 응원해줄께.

IP : 175.198.xxx.219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짠하네요
    '12.5.23 11:25 PM (211.36.xxx.86)

    아이의 모습 생각하니.. 울 남편도 시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컸어요 아버지들 제발 가정 잘 꾸리셨음..합니다

  • 2. 행복한 주부
    '12.5.23 11:28 PM (114.207.xxx.86)

    눈물이 고입니다. 님도 님의 어머님도 참 좋은 분이시라는 게 느껴집니다. 잘 자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보셨던 그 아이도 님같은 미래를 맞이하길 함께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 3. 웃음조각*^^*
    '12.5.23 11:30 PM (210.97.xxx.59)

    원글님.. 원글님의 마음이 그 아이를 지켜주길..
    그 아이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겠지만.. 그 이후의 삶은 정말 행복하길 빕니다.

    원글님도 복 많이 받으시고, 그 아이도 꿋꿋하고 바르게 잘 크길 바래요.

  • 4. 원글님처럼
    '12.5.23 11:33 PM (175.206.xxx.120)

    잘자라길 바래봅니다
    원글님도 힘내시고요..행복하세요!! 화이팅!!

  • 5. ...
    '12.5.23 11:39 PM (49.1.xxx.162)

    원글님 어머니보다
    그래도 제가 좀더 낫네요
    하지만 전 매일 이혼을 꿈꿉니다.
    그래야만 제게 희망이 생기니깐요
    제 앞으로의 꿈을 아이들의 행복으로 바꾸어야겠어요

  • 6. 아....
    '12.5.23 11:43 PM (211.217.xxx.112)

    원글님... 그리고 원글님의 어머니..
    힘겨운 시간 이겨내신 두분 앞으로도 쭉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더불어,
    오늘 뵈었던 그 소녀도.
    힘들때마다 꿈을 생각하면서 잘 자라주길. 기도합니다.

  • 7. 눈물
    '12.5.24 12:35 AM (61.43.xxx.203)

    눈물이 나네요
    술만 안드시면 나무랄데 없으신 울아빠...
    술만 드시면...이젠 좀 돌아가셨으면...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얼마전 가족이 모두 나가고 저만 있는데
    아빠가...말씀도 못하시고 눈도 겨우 뜨고 계시는데
    돌아가시는구나...싶더라구요
    그런데...갑자기 아빠가 너무 불쌍하단 생각과 함께 눈물이나는데...엉엉 목놓아 울고말았죠
    다행히 아직.곁에 게시지만

  • 8. 눈물
    '12.5.24 12:36 AM (61.43.xxx.203)

    잘해야지..하는데도 잘 안되네요
    낼부터는 말이라도 한마디 따뜻하게 해드려야겠어요..

  • 9. 우리 남편도 알콜중독
    '12.5.24 1:08 AM (24.103.xxx.168)

    저의 남편도 알콜중독이예요......저는 이혼하지 않고 잘살고 있습니다.

    저녁에 술을 마시고 나면 아침엔 무슨일이 있어도 일하러 나가요.

    꼭 제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요...아침을 거르는 적은 없어요.

    술을 좋아하지만 주사도 없고 두 아이도 끔찍하게 이뻐해요.자상해요

    그런데 제가 걱정하는거는 건강이 나빠질까봐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알콜중독하면 폭력적이거나,직장을 포기하거나,집안에 소홀히 하거나.....안좋은면만 오버랩 되는데요.

    저의 남편은 단지 술을 일주일에 6일 마시고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 모습을 지켜 보며 살고 있습니다.

    항상 아침은 해장국으로 준비해주고 어니면 매운 신라면으로......

    술먹는 모습 꼴보기 싫어서 이혼 생각하다가도 ....성실한 면이 더 많으니까...

    결혼 10년째 아직도 잘 살고 있어요.

    원글님의 엄마가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저도 우리 남편이 어떨땐 참 안쓰럽기도하고...(여긴 미국이예요.)

    밖에서 술 안마시고 꼭 집에서만 마시는 남편이 어떨땐 고맙기도 하고....그래요.

    이민생활 힘든데.........저녁에 집에서 맥주라도 소주라도 한잔해야지......스트레스 풀리겠지....하면서

    이해의 폭을 넖히기로 했습니다.원글님의 따듯한 글 읽고 눈물이 날려고 하네요.

  • 10. 유키지
    '12.5.24 1:40 AM (182.211.xxx.53)

    아 원글님땜에 눈물나요
    그런 환경에서 원글님도 저도 그리고많은소녀들이
    살아내고 살아남잖아요
    다만 그아이에게기댈사람 단하나만있길
    아이지켜줄 그한사람이꼭있길
    저도진심으로기도합니다

  • 11. ...
    '12.5.24 10:08 AM (118.220.xxx.231)

    제 아버지도 알콜중독이셨고..저도 참 고단한 삶을 살았죠..이제 중년이되니 그래도 좀 제속이 안정이되요...원글님도 애쓰셨네요...그아이도 잘 크길 바랍니다.

  • 12. 그 소녀도
    '12.5.24 4:00 PM (203.142.xxx.231)

    원글님처럼 일찍 철들어서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꺼라 생각됩니다.
    저도 원글님의 아버지같은 아버지가 있어서요.
    지금 나이 70넘으셨는데, 뭐 아직도 막걸리 하루에 몇통 드시고도 특별히 아픈데 없이 사시네요.
    저도 그럭저럭 결혼해서 큰 걱정없이 삽니다.
    물론 엄마가 같이 해줬지만, 참 불후했던 유년시절이었거든요. 얘기하면 진짜 밤새어야 할정도. ㅠㅠ
    그래도 살더라구요.

  • 13. 남편생각이..
    '12.5.24 4:38 PM (116.41.xxx.233)

    저희 시아버지..남편 중1때인가 돌아가셔서 전 얼굴도 못뵙지만 알콜중독이셨대요..
    알콜중독+폭력..을 못이겨 7살된 저희 남편과 4살된 여동생을 남기고 엄마가 가출하시고 나중엔 이혼했구요..
    엄마없이 살면서 폭력쓰는 아버지를 피해 어린 여동생을 델고 밤새 밖에서 밤을 지새기도 하고..
    신문배달해서 월급받을 날짜되면 보급소가서 아들 월급 받아다 술마시고..이런 아버지였다네요..
    남편얘기 들어보면 맘이 짠해요...나랑 겨우 한살차이인데 너무 다르게 자라와서...
    그래도 님네 어머님은 님을 지켜주셨잖아요...
    엄마가 그래도 곁에서 있었다면 저희 남편이랑 아가씨도 조금은 덜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을텐데 말이죠..
    지금 울 큰애가 6살인데..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엄마도 없이 아빠 주정+폭력을 어찌 견디면 살았나 싶어요..다행히 저희 남편이랑 아가씨는 대학졸업까지 무사히 하고 인성도 바르구요...
    저희 남편은 울집 꼬맹이들 키우면서 자기가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이런거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대요..
    그 여자아이도 울 아가씨처럼 잘 자랄거에요..

  • 14. ..
    '12.5.24 6:49 PM (116.89.xxx.10) - 삭제된댓글

    차라리 술값이 아주 고가였음 좋겠어요.
    가난하고 힘들다고, 사는게 괴롭다고 술 마시고
    몸 아파서 일도 못하게 되고.. 악순환같아요.
    어릴적 제 모습이 보여 아프네요. ㅜㅜ

  • 15. 알콜중독자의 아내
    '12.5.24 7:26 PM (125.146.xxx.190)

    남편이 알콜 중독자입니다. 안주도 없이 그냥 밤마다 매일 먹어야 잠이 들고,,,
    라면도 중독되었습니다. 매일 끓여 먹습니다.

    10년 가까이 시험도 계속 떨어집니다.
    우린 한집에 살지만 서로 모른 척하고 밥도 함께 먹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가 참 가엾습니다.
    저도 가엾고,
    남편도 가엾습니다.

    그가 참 싫고 미웟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가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워하는 것이 힘들어서 이제 미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잇는 일이 없습니다.

  • 16. 알콜중독자의 아내
    '12.5.24 7:27 PM (125.146.xxx.190)

    그 아이도, 원글님도,
    저도 잘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의 아빠도 제 남편도....건투를 빕니다.

  • 17. 20년
    '12.5.24 8:18 PM (112.187.xxx.122)

    이젠 이혼하고 싶어요.

    원글님처럼 우리아이들도 잘 자랄까요.

    원글님 수고 많으셨어요.

  • 18. 지금은엄마
    '12.5.24 10:04 PM (117.53.xxx.149)

    저도 잘 자랐습니다. 알콜중독 아빠에 새엄마 밑에서.
    애도 혼자 낳았는데...
    대기업 들어가고 지금은 엄마며, 전업주부지만,
    그런 부모 밑에서,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따뜻한 엄마로 저도 잘 자랐고, 저에게 칭찬을 줍니다.
    남은 인생도 잘 헤쳐나갈겁니다. 제가요. ^^

  • 19. ...
    '12.5.24 10:41 PM (175.198.xxx.219)

    많은 분들 댓글에 감사합니다. ^^
    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 술을 놓지 못하셨어요.

    그래도 술 안드실 땐 농담도 잘하셨어요.
    연세가 점점 드시면서 망나니같기만 하던 아빠도 많이 부드럽게 변하셨죠.
    부드럽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술독에 빠져 산 것은 마찬가지니.

    언젠가 까만 봉다리에 대롱대롱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오셨던 밤이 생각나요.
    우리 아빠가 저런 것도 사올줄 아는 아빠구나 하고 처음 느꼈었죠.

    재작년에는 김장할 때 아빠가 김치 속도 넣으시더라구요.
    오마나 세상에. ㅎㅎ

    첫 아이 낳아 친정에서 산후조리 할 때
    아빠가 우리 딸을 많이 안아주셨어요.
    엄마가 놀라시더라구요.
    아빠는 우리 남매 아기 때 한번도 저렇게 안아준적이 없으시대요.
    손주는 다르긴 다른가보다고.

    위에 댓글 주신 어떤 분처럼
    나에게 필요도 없는 아빠란 존재.
    차라리 빨리 돌아가셨으면.
    내게 짐 뿐인 가족이라는 이름.
    어서 벗어버렸으면.
    그런 마음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처럼 빨리 철이 들어버린 저는
    엄마 아빠에게 응석부리고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대신
    열심히 공부만 했어요.

    누가 봐도 착하고 효녀라고 칭찬받으며 자랐는데...
    마음 속으로는 아빠 많이 미워하고 저주했어요.

    늘 마지막을 생각했어요.
    아빠의 마지막을.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쉬익쉬익 소리를 내는 오만가지 기계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한 채
    마치 자신도 그 기계의 일부인 양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을 마주하니
    아빠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엄마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어요.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아빠가 짊어져야 했던 무게가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워서
    그래서 술로 잊으려 했던걸까.

    이번에는 끊을거야.
    이젠 정말 안마실거야.
    수없는 다짐에도 다시 술을 찾게 만드는 뇌의 장난 때문에
    아빠는 얼마나 매일이 고통이셨을까.

    아빠 눈 감겨드리며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어요.
    마음 속으로는 말해야지. 말해야지. 눈 감고 계셔도 다 들으실텐데 말해야지...하는데
    그 말이 안나오대요.

    그냥
    편히 주무시라고.
    나는 잘 살테니 내 걱정 말고 편히 주무시라고....
    그랬어요.

    돌아가시면 홀가분할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계속 눈물이 납니다.
    설거지 하며 흐르는 물 소리에 내 울음 소리 함께 파묻고 통곡 합니다.
    너무 불쌍해서요.
    우리 아빠가 너무 불쌍해서요....

    내가 지금 이 위치에 서 있는 것이
    모두 나 혼자 잘나 그런 것인줄 착각하고 살았어요.
    아이를 키우며 알았습니다.
    부족한 부모일지라도 그 분들의 희생으로
    부모님 보다는 나은 삶고 있다는 것을요.


    잘 자랐어요.
    즐겁게 살고 있어요.
    엄마 아빠 덕분에요...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갈겁니다.
    다른 힘든 모든 분들도 힘내세요.

  • 20. ㅠㅠ
    '12.5.24 11:03 PM (219.251.xxx.182)

    원글님..
    울면서 글들을 읽었어요

    행복하세요

  • 21. 윤쨩네
    '12.5.24 11:13 PM (14.32.xxx.207)

    원글님 인생을 축복해요.
    그 아이도 멋있게 잘 자라기를 기도해요.

  • 22. 마테차
    '12.5.24 11:32 PM (59.5.xxx.169)

    원글님도 그여자아이도 모두 정말 행복한 인생이 펼쳐지길 기도합니다.
    항상 술에취한 아빠와 여자아이...
    엄마도없이 살아가야할 그아이의 운명을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맡은 배역대로 대본대로 살다가 간다고 하지요..
    때로는 내가맡은배역이 맘에 들지않아도 그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을때
    다음생에 또 좋은배역을 맡을수있다고 하네요..

    그아이 다음생엔 정말 좋은배역을 맡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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