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온 식구를 조마조마하게 만드셨던 버럭 소리지르기가 특기이신 아버지가 작년 가을 부터 근처 시골 작은 초등학교로 출근을 하신다.
일명 배움터 지킴이 ^^*
나는 혼자 아이를 키워 이제 기숙사 있는 학교로 보냈고, 아버지 또한 엄마가 돌아가신지 3년째.
내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 커다란 집에 아버지와 둘이 산다. 거실을 경계로 양쪽에서 거의 각자 독거노인 모양새이다.
아버진 작년 가을에 우리 식구의 모교인 인근 초등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라는, 아이들 등 하교 시간에 교통안전 지도를 하는 일을 하게 되셨다.
시골 초등학교가 소위 전교조 선생님들의 대안학교 인지라 인근의 시골아이들과, 시내의 살짝 의식있는 부모들의 아이들이 섞여있다. 아버지는 그 아이들이 등교할 때와 점심시간, 하교시간에 사고나지 않게 살피는 일을 하시고 수업 시간엔
자전거로 집에 오셔서 쉬거나 밭에 나가신다.
첨에 몇 일은 퇴근 하셔서 걱정이 '일지' 쓰는 거라며 매일 뭔가를 써야하는데 쓸 말이 없다며 물어오셨다.
그래서 몇개의 문구를 적어드려서 돌아가며 써 보라 일러드렸다.
할만하냐고 물으면 나 한테는 못하겠다고 투덜투덜 투정을 부리시더니만 그 학교 선생님을 만나 여쭤보니
엄마 돌아가시고 혼자있으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TV만 보며 게으러게 지내다 아이들을 보니 보람있고 살도 빠지고 기분도 좋다하셨단다.
가을이 깊어 낙엽이 많이 쌓였을 땐 자전거 뒤에 갈퀴랑 빗자루를 싣고 출근 하셔서 쉬지않고 낙엽을 치우시더니
급기야 경운기로 출근하셔서 실어 오기까지 하셨다.
방학동안 쉬시면서 나 한텐 새학기엔 안 할란다 하시며 어긋장을 놓으시더니 학교에서 연락이 오니 지금은 잘 다니고
계신다.
최근 감기가 심해져 폐렴이 되어 입원해 계신다. 그래도 아침엔 버스를 타고 시내서 학교로 출근하신다.
난 아버지께 전화하고 출근하지 말라 했더니
시내에서 온 일학년 아이 한명이, 누구 손자, 아무개 손자(인근아이
들) 몇명에게 따돌림 당하는 걸 봐서 가봐야 한다며 기어이 출근하신다.
커다란 집에 나혼자 이방 저방 다니다 아버지 침대 옆에 탁상용 달력을 보니 결혼식, 모임 약속 표시와 함께
'일학년 XX따돌림'....
가슴이 짠하고 뿌듯해졌다.
6년 중풍으로 누워계셨던 엄마를 간호 하실 때 아버진 엄마가 기저귀에 변을 보면 어김없이 탁상용 달력에
대소변 양을 적으셨다. 달력이름은 이름하여 똥표!
" 이순희(울엄마) 여사 똥표 한 번보자"
하시며 달력을 꺼내던 목소리, 쑥스러워 하시던 애기가 된 엄마 . . .
지금도 달력에 일지를 쓰는 이런 배움터 지킴이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