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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바라본 스승 김용민

김용민 홧팅 조회수 : 1,104
작성일 : 2012-04-10 16:04:32

오늘 너무 피가 끓어서 말이다. 더 이상 가만히 바보같이 있을 수 가 없다. 옛날 교수님이 적어 주신 글을 나만 몇년째 혼자 보기가 너무도 아까와 '오늘' 퍼 날라야 겠다. 아래는 2008년 가을학기 '인터넷방송제작론'이란 수업의 종강을 맞아 커뮤니티에 교수님이 적어주신 글.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렇게 살뜰히 제자들 챙겨주신 교수님이 또 없었다. 교수님이 늦은 밤, 졸린 그 눈을 비비며 우매한 제자들을 위해 적었을 순간을 다시금 돌이켜보며..

제목 - 김용민입니다. 종강 인사 올립니다.

2009.01.02 10:23

어느덧 2008년 2학기 강의를 갈음하며 인사합니다. 수고들 많이 하셨고. 여러분의 강의평가 점수(86점)도 잘 받았습니다. 학점으로 보자면 B+입니다. 지금까지 한양대에서 받은 점수 가운데 가장 낮은 듯 하여 며칠은 속이 좀 상하기도 했고,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한국 미디어의 장래를 이야기할 때 '빅뱅'이란 단어를 갖다 붙입니다. 아마 어떤 형식으로든 거대 자본과 족벌 신문들의 방송 참여가 현실화되겠죠. 이제 바람을 남깁니다. 특히 미디어계통으로 비전을 둔 분들에게 전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종업원'이 아니라 '저널리스트'가 되길 바랍니다.

'사주의 이익이 내 이익'이라는 식의 발상을 가진 이들은 '종업원'입니다. 미디어는 회사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요, 나나 회사라는 좁은 틀거리 속에 양심과 소신을 담보로 두지 마십시오. 치열한 고민 속에 '정의'가 무엇인지 찾아내시고, 그 '정의'를 좇기 바랍니다.

저같은 나부랭이도 두 개의 종교방송사에 몸담으면서 불의한 자본, 건강치 못한 종교권력과 싸운 탓에 타 직장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만, 지금은 고생은 좀 하더라도 두 발 뻗고 행복하게 삽니다. 좀 더 자랑하자면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출세를 탐하며 돈을 추종하는 탓에 불의의 편에 선 사람은 그 자리는 보전할 수 있어도 늘 초조하며 비굴해집니다. 진정한 저널리스트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선배 언론인들은 두 개의 길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에 굴복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말이죠. 정답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답을 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선배들의 고민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 요즘 흥분합니다. 여의도 앞을 가득 메우는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보며 말이죠. MBC, SBS에 뒤이어 이젠 KBS까지. 이 분들은 지금 정답의 편에 섰습니다. 방송사 프로듀서, 기자들의 위상이 십수년 만에 부쩍 오른 것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방송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건강한 저널리스트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다질 때 언론인은 가장 빛나는 자기 얼굴을 갖게 돼 있습니다. 많은 월급 말고는 자랑할 게 없는 조중동 종업원들은 이런 점에서 참 초라하죠. 건강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뭐 잘 알지도 못하며 덮어놓고 양비론에 젖지 않아야 합니다. 옳고 고름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다 일리 있죠. 그러나 더 일리가 있는 게 있습니다. 이걸 찾아야 합니다. 그 훈련을 해주기 바랍니다. 좋은 훈련 하나 일러드리죠. 사설을 보는 겁니다. 사설만큼 좋은 게 없어요. 사안을 핵심적으로 간추려주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죠. 물론 모든 신문 사설이 다 좋은건 아닙니다.

저는 한겨레, 경향, 한국, 서울 등의 신문의 사설을 추천합니다. 이 사설을 눈으로 읽지 말고 소리내서 읽으세요. 뉴스가 어려운 사람은 매일 밤 8시 또는 9시 뉴스를 보는 훈련을 기르세요. 방송뉴스는 신문보다 훨씬 쉽습니다. 이러기를 반 년. 여러분의 안목은 훨씬 높아질 겁니다. (따로 언론사 고시 때 상식 준비 안 해도 될 거예요.)

많은 한양인들이 주요 언론사에 진출해 우리 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몫을 담당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질'을 키워야 합니다.

행여 살다가 막히는 문제가 있거나 도움을 구할 일이 있으면, 또는 연예인 이니셜이 궁금하다 싶으면, 언제든 제 전화 01*-***-7472로 연락주세요. 돈은 못 빌려줘도 지혜는 드릴 수 있어요. 여러 해가 지나도 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 학기 고생하셨고, 새해에 복많이 받길 바랍니다.

**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008년의 가을학기에 나는 실습 과목이었던 이 강의실로 가는 길이 신이 났던 것 같다. 이 즈음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으셨고 또 군 제대후 입대전 소홀했던 학점을 메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수업이 끝나면 아빠 병실에 갔다가 늦은 밤 간이 침대 구석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뒷 좌석에서 교수님이 주신 아티클을 신나게 읽고 말도 안되는 기획안을 이리저리 쓰고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했던 조원들과 신나게 촬영하고 밤을 새워 편집을 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즈음 멘탈붕괴의 고비를 교수님때문에 근근히 버티고 지나온 것만 같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일년만 잘 보내시면 완치판정을 받으실 게 분명하다.)

내가 기억하는 교수님은 이렇게 '존재감'이 각별했다. 비록 당신은 당신이 추구하는 '소신'에 따라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가는 직장마다 찢기고 찢겨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눈치 보지 않고 제자들에게 '소신'을 가지라 말할 수 있는 유일무위한 그 '존재감' 말이다. 학기말 성적입력도 다 끝났고 아쉬울게 하나 없는 수강생들에게 이리 살뜰한 조언을 해주는 교수님이라니.

게으름을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면 아마 나는 대한민국 상위 0.1%에 들지도 모르겠다. 이런 교수님을 만난게 심히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 수업에는 목을 메고야 말았다. 암선고를 받고 병실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내 아버지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 싶어서 였을까? 아니면 학부 시절을 통틀어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내 삶의 '잔잔한 멘토'를 만나서 였을까? 그것은 '운명'이었을까. '인연'이었을까..

그렇게 가고팠던 방송사들이 여전히 파업중이다. 나의 꿈도 산산히 깨어졌고 이제는 밤을 새워 편집을 하는 일이 더디고 예열이 길고 재미가 없다. 내가 만들고픈 영상을 편집하는 일은 여전히 며칠밤을 새워도 달콤한데 클라이언트와 주고받는 메일에 맞춰 편집해주는 일은 드럽게 하기싫다. 나는 정말 그냥 '종업원'이 된 듯 하다. 시크하고 건강한 '저널리스트'가 되어서 교수님에게 자랑스런 제자가 되기를 한때는 신나게 꿈꾸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부끄럽다.

내일 아침 '사주의 이익을 담기 위해' 또 나는 촬영을 가야 하는데.. 오늘이 지나면 이런 푸념을 적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몰라 잠은 잠시 접어두고 산산히 깨어졌지만 그래도 근근히 나를 지탱하는 그 '꿈'을 위해 적어본다.

화요일, 목요일 촬영 중간에 '투표'하러 집에 가야겠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야지. 나에게 처음 '꿈'을 그리게 해준 고교 은사님에게도 또 그 '꿈'을 본격 그리게끔 이 '바보'를 자극한 대학교 은사님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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