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왕따는 왕 따돌림의 준말로, 양아치애들이 교실에서 쟤 왕따야 쟤 왕따시키자 그런 식으로 쓰던것이라 합니다.
90년대 신문에서 설명하던 글을 본 제 기억 속에 당시 왕따의 유래가 남아있지요.
언론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뽑다 보니 그 아이들의 왕따라는 말을 가져와서 쓰게 된게 오늘에 이르게 된 듯합니다.
그런데 이게 제 생각에는 문제가 많아 보이네요.
한 두번 그렇게 왕따라는 집단 따돌림의 개념이 있다더라- 그렇게 인용되기 시작한게
이제는 어딜가도 왕따 예방, 왕따 아이 치유,우리 아이가 왕따에요...그런식으로 이 저급한 용어가 남용되다보니
이젠 따돌림 당하는 아이에대한 지칭으로 상담자에게나, 피해자에게나 가해자에게나 주변인이게나
아무 문제의식없이 정착화 된 것 같습니다.
원래 개념용어가 생겨버리면 그때부터는 그 용어에 맞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인 듯합니다.
아 물론, 그 용어때문에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생긴게 아니다. 따돌림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사실인데
왜 이 용어탓으로 상황을 희석시키고 어물쩡 넘어가냐 이런 문제제기가 있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용어는 인간 심리를 근본적으로 움직입니다.
옛날에는 성범죄에 대해서 강간이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성폭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용어를 바꾸었죠.
처음엔 어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뭘 때려? 맞는건가? 제가 어린시절 바뀐 용어를 뉴스에서 들을때마다 어색했죠.
그러나 이제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다 보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범죄의 희생자를
순결을 잃은 이-라기보다 이제 범죄의 피해자로 객관화시켜 보게 되는 순효과가 있다는 걸 느끼지는 않으시는지요?
이처럼 왕따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쓰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왕따라는 현상에만 주목하고, 이것이 범죄라는 사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왕따. 왕따. 왕따. 라는 손쉬운 개념어를 많이 쓰게 됨으로써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쟤 왕따 시킬까? 쟤 왕따같애, 쟤 왕따야 식으로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 없이 무작정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상황의 아이들을 다 뭉뚱그려
한 카테고리에 넣고 왕따놀이를 즐기게 된다는 점이 큰 문제이지요.
만일 용어를 바꾸어서- 왕따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을 당시-로 돌아갔다고 가정하고 말해봅시다.
쟤를 오늘부터 따돌리자, 쟤는 이제 우리의 집단 따돌림 희생양이야. 쟤랑 놀지 말자.
좀 어색하지 않나요? 뭔가 말하는 내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짓, 별로 당당하지 않은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정도는 들죠?
조금은 가벼워보이는, 죄의식이 발견되지 않는 용어 뒤에 숨고, 용어로 모든 현상을 가리고
잔인한 범죄를 놀이같은 은어 뒤에 숨겨 한 아이를 잔인하게 생태계 먹이사슬의 희생양으로 삼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일이 터지기 전에 아무것도 제제하고, 보호하지 못하는 어른들...
지금이라도 교실 내 이슈, 도덕심과 우정에 호소해서 넘기기보다
집단 따돌림은 범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왕따라는 용어를 쓰지 맙시다.
교실 내 집단 따돌림 범죄 , 교실내 집단 정서학대 - 등으로 - 분명히 이 사안의 범죄성을 인식합시다.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에 용어선택이 부적절할수는 있습니다.)
너무 길어서 언론사가 다루기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만, 다른 방안이 분명 있을것입니다.
저보다 더 현명한 분들이 이 문제는 생각해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과거에도 따돌림은 있었습니다. 자살하는 학생도 있었고 잔인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나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잔인한 현상이 장난처럼 유행하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왕따라는 개념의 무차별적 범람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왕따라는 개념 뒤에 숨은 비열한 사람들을 끄집어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양심을 깨웠으면 합니다.
왕따는 가해자들에게서 나온 범죄인의 은어이지 정상인들이 쓸 용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