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몸으로 말하는 부모
몸은 천근만근인데, 다행히 (?) 올해 대학입시를 봐야 하는 큰 아이가 있어서 공부하는 데에 동지애를 느끼며 함께 격려를 하면서 걸어가는 길이 나름대로 흐믓하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앉아있다 보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내 방으로 와서 쓱 한번 살펴보고 다시 제 책상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걸 보면 그래도 늙은 엄마가 약간의 자극의 역할은 되나 보다.
예전에 읽었던 황동규 시인의 글을 보면 밤마다 아버지 (황순원 선생님)서재의 불이 꺼질 때까지 공부를 했다는 대목이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황순원 선생님이 대학 은사이기도 한 나에게는 더욱 인상적이었고,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를 닮고 부모의 모습을 싫어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배운다.
성경에도 보면 다른 나라의 왕에게 행여라도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서 비겁하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목숨을 보존하려는 아브라함의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의 아들 이삭도 꼭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아버지와 꼭같은 해결책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아브라함에게는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수치스러운 기억이고 두고 두고 아내에게 미안할 일이었을 것이니 아들에게 그런 일이 전해지길 바랬을리가 없다.
그런데 이삭은 어디서 배워서 아버지와 꼭같은 남편이 된 것일까.
엄마도 아버지도 함께 숨기고 말해주지 않아도 신기하게 들쳐내서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사실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교육학자들은 부모가 말로 가르쳐주는 교육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훨씬 강하게 아이들에게 작용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말로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쳐도 나의 행동이 무의식중에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정적인 것을 더 많이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심어둘 것이라는 얘기이다.
더 무서운 얘기는 부정적인 영양일수록 더 쉽게 받아들이고 더 깊이 심어둔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그런 비겁함을 보이고 두고 두고 가슴이 쓰렸을 아브라함이 아들까지 자신을 그대로 닮은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로서 느꼈을 참담함이 내 마음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옛말에 아이를 보느니 밭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가도 가도 어렵고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다.
쉬워지는 부분보다는 새롭게 나타나는 어려움들에 부모들은 순간순간 헉 소리가 날만큼 어려워하다가도 또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아이가 가져다 주는 생수처럼 시원한 기쁨에 또 그 깊은 고통을 잊기도 하고 그러면서 인생이 흘러가나 보다.
지금 나의 모습은 우리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숨기고 싶고 가리고 싶은 치부를 아이에게 여과없이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때때로 등골이 오싹할만큼 두려워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너무나 허술한 방어책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한다.
엄마도 단점이 아주 많은 인간이야.
엄마인데 왜 저래, 엄마가 어쩜 저럴 수 있을까, 하면서 속상해하지 말길 바래.
엄마는 부족함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하거든.
엄마의 판단이 다 맞는 건 절대 아니야.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구멍은 뚫리게 마련이고 그래서 또 실수를 하곤 하지.
말하면서 머쓱해지는 순간도 많지만 아이들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 본다.
이젠 자라서 십대들이 되었는데도 내가 이 대사를 읊으면 입을 삐죽이지 않고 들어주는 딸들이 고맙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나의 단점을 완벽하게 가린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감추고 덮어놓아도 귀신같이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 드러내고 인정하는 편이 훨씬 건강하고 서로에게 편안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것을 무기로 악용하면서 그래,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어쩔래, 한다면 그보다 더 나쁜 게 없겠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어린 자식이라도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줄 수만 있다면 그래도 조금 수월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나의 잘못된 행동을 모조리 다 버릴 수만 있다면 좀 좋을까.
고쳐도 고쳐도 새록새록 솟아나는 나의 못된 부분도 마음이 아픈데, 이걸 자식들에게까지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내 스스로도 내가 싫어질 때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도 엄마의 이런 점이 정말 싫어.
이건 절대 닮지 말아라.
그러면서도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그 부분을 더 많이 닮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또 덧붙인다.
이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이걸 덮을만큼의 다른 장점을 만들어야 해.
그리고 나자신의 단점을 무조간 방어만 하지 말고 인정해야 해.
인정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야.
나의 절박한 대사들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남아있을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엄마가 곁에 없어도 기억하고 새기면서 잘 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한 엄마는 그저 마음으로만 미안하고 몸은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으니 참 모순이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의 공부에 적응들이 되었는지 저희들끼리 TV를 볼 때 같이 끼려고 하면 엄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들어가서 공부하세요 엄마네 반 아줌마 아저씨들 지금 다 공부하고 있어요, 하고 밀어낸다.
딸들에게 밀림을 당하고 들어온 나는 별 수 없이 공부를 하는 수 밖에.
중년의 엄마와 열공모드를 함께 해주고 깊은 밤에 혼자 깨어있지 않게 동지가 되어주는 딸들에게 오늘도 감사의 입맞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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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랭이
'10.6.19 9:57 PM간만의 글이 반갑습니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왜이리 님의 형편이 부러운지요
2. 천사
'10.6.20 1:03 AM부럽네요
3. 달빛한스푼
'10.6.20 7:50 AM동경미님 잘~ 지내시죠!
딸아이들이 엄마 공부 팍~ 팍~ 잘 밀어주고 있네요.
동경미님~~ 화이팅!4. REG
'10.6.20 10:52 PM"나의 절박한 대사들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남아있을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엄마가 곁에 없어도 기억하고 새기면서 잘 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을 흘렸습니다..5. 피어나
'10.6.21 10:04 AM동경미님, 반갑습니다.
바쁘신 거 알면서도 이따금 들어와서 혹시 다녀가셨나 기다렸어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동경미님과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길 바랄게요.6. 수박나무
'10.6.22 10:56 PM저두 기다렸습니다.
열공중이셨군요... 기쁨의결실이 있길 바랍니다.
뭔가 이루려는 열정이 있으시다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정말 산 교육이 되겠네요.
자~~ 화이팅입니다.7. 해밀처럼
'10.6.24 10:11 AM오래간만에 동경미님 글을 읽습니다.
여전히 글을 읽으니 참 배울게 많고
저는 부족하기만 한 부모입니다.
나의 단점이 아이들에게서 보여지면 정말 속상해요..
은연중의 제 생활 패턴이 아이들에게도 학습되었구나
생각은 들지만 고치기는 참 힘드네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감사드리고 좋은 결과 맺으시길 바랄게요~8. uzziel
'10.6.30 12:09 PM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글입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하는 고민이기도 하구요.
요즘 저희 아들이 따라쟁이가 되어서 제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툭툭 던지기 좋아하는 제 모습을 따라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구요.
정말 따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을 따라하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변하지 못하는 제 자신도 너무나 싫구요.
동경미님의 글을 읽고 또 한번 제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9. asfreeaswind
'10.7.16 12:32 PM아이를 키우면서 맘이 가라앉을 때 읽으면서 다시 되새기곤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