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 우리 아이는 책 같은 것 안좋아하는 데도 공부 잘해요 ” 라는 말을 들으면 참 당혹스럽습니다 . 과연 어떤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지도 궁금하고 그렇게 한 공부가 정녕 남에게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까 싶은 우려도 들지만 그냥 “ 그러세요 ?” 하는 한 마디를 짜아 냅니다 .
영어로 “ 교육 ” 을 논하다보면 흔히들 education 이라는 단어를 쓰곤 합니다 .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시켜 주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 말인데요 , 이 의미는 참 포괄적이어서 애완견의 배변 훈련이나 어린아이의 젓가락 사용법 같은 단순 반복의 과정이나 대학 , 대학원 과정의 전반까지도 education 이라는 단어로 아우를 수 있지요 . 그래서 “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 대략 최고 학부를 마치거나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 간혹 암기나 요점 정리를 아주 잘하는 “ 똑똑한 ” 사람이 현실 감각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을 때 education 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
교육을 논하면서 제가 쓰고 싶은 단어는 edification 입니다 . 각성과 깨달음의 의미가 들어 있는 단어지요 . 암기를 통해서는 각성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 천자문을 달달 외우던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 한자는 pictograph 이기 때문에 옛적 선비들은 사람으로서의 위치나 도리를 자문하면서 한글자 한글자를 들여다 보았지 싶습니다 . 그래서 기껏 천자를 공부하고도 문리가 트이고 인성을 갖춘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이처럼 edification 은 education 의 수준을 넘어서 개개인의 이해와 각성 여부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그래서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이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오지 않고도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눈을 터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어눌한 농부가 전해 주는 흙의 진리 , 파릇파릇한 이십대 수영 선생님이 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그 놀라운 단순 명료함 등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들 있으실 것입니다 . 이처럼 제대로 된 교육은 스스로를 각성시키고 타인에게도 전달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enlightenment 가 knowledge 나 skill 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
다시 한번 책을 안읽고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경우로 돌아가 봅시다 . 고시오패쓰라는 단어를 회자시킨 모 고시 삼관왕이 떠오르는군요 . 이 분이 동경의 대상에서 조소의 대상으로 급격히 추락한 데에는 edification 을 뒷전에 둔 채 education 에 몰입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자 , 그러면 어떻게 우리 자녀를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까요 ?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같이 읽어 보세요 . Lexile level 이나 California reading level 같은 지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아 낼 수 있어요 . 그리고 중고등학생의 경우에는 각 학교 별로 summer reads 가 정해져 있으니까 학교나 선생님의 추천을 바탕으로 방학 동안 최소한 5-6 권의 양서를 읽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중고등학생의 경우에는 먼저 학교에서 정해준 책들을 구입해서 성실히 요점정리를 해가며 읽어내고 있는지에 대해 자주 대화를 해보아야 합니다 . 오늘은 초등학생들의 책읽기에 중점을 두어 봅니다 . 우선 , 남들이 다 읽는다고 , 내 아이의 어휘 수준에 맞는다고 무조건 이 책을 읽으라고 주문해서는 안될 문제 입니다 .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을 예로 들어 보죠 . 이 책은 Lexile level 880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사학년에 올라가는 제 아이의 경우 아무 어려움 없이 읽어 낼 수가 있습니다 . 간혹 이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 오겠지만 그거야 당연한 과정입니다 . 하지만 이 책은 조금 조심해야 할 책입니다 : 흔히 기독교인들이 비판하듯이 마술이나 팬터시를 소재로 한다는 점보다 더 중차대한 문제점은 이 책이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아직 준비가 안된 아이들에게 노출시킨다는 것입니다 . 이것을 잡아 내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활자만을 읽어내는 학생이 있다면 그것도 문제요 , 이 주제를 일찍 파악해 버린 제 아이처럼 이 책에 대해 강하게 거부감을 가진 제 아이의 경우도 문제죠 .
좋은 책 , 자녀의 수준에 맞는 책 , 자녀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의 책을 선택해서 함께 읽어 보세요 . 한 문단 씩 나누어 교대로 소리내어 읽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 빨리 읽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마시고 중간 중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 이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 자녀에게 질문해 보세요 . 어쩌다 보니 페이지를 못 넘기고 이것 저것 얘기하게 된다면 정말 좋은 신호입니다 .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니듯 , 책을 읽은 후에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이라면 그 책은 안읽은 거나 매한가지 이니까요 . 이것 저것 할 얘기가 많다면 우리 자녀가 이미 깨달음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 주지 않는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은 무의미합니다 . ( 이런 의미에서 잡지책은 책으로 분류하기 어렵겠죠 ?) 자 , 이번 여름 방학 동안 내 자녀를 제대로 각성시켜줄 책 다섯 권 준비하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