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배지로 만든 것은 또 있어요.

막내동생의 서랍장이 그 도배지로 다시 바른 거에요.
이 서랍장은 저희가 전에 이사다닐 때 남의 집에서 버린 낡은 서랍장이었어요.
MDF도 아닌 조잡한 판자에 시트지 같은 걸 붙인,
아주 싸구려 서랍장이었지요.
그동안 매우 좁은 집에서 살아야했기 때문에
새집 들어가기 전까지만 잠시 쓴다는 생각으로 주워다썼는데
도배지를 바르니까 깨끗하게 되어서 새것 같지 뭐에요.
지금은 남동생의 보물 자동차 밑에서 녀석의 공구함으로 쓰이고 있어요.
이렇게 이 도배지를 가지고 여기저기 '조자룡이 헌칼 쓰듯' 써대고 있어요.
그냥 버렸어도 되었을 도배지지만 말이에요. ^^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막내 방을 공개할까요?
재활용품으로만 만든 방이랍니다.

창가에 놓여진 책상이 모두 주워온 책상이에요.
오른쪽 'h형' 책상은 누가 이사가면서 버린 것을 업어왔던 것이고요.
이사오기 전까지는 녀석의 셋째 누나가 쓰던 것이었죠.
왼쪽 컴퓨터 책상 두 개 역시 누가 버린 것을 데려온 거에요.
마치 맞춘 것처럼 크기가 맞아서 기분이 좋았었죠.
'h형'책상 손잡이는 바꾸어주었어요.
심하게 망가지기도 했고, 동생 기분도 생각해서...
일산 가구단지에 가면 '가구 자재 백화점'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엔 가구와 관련된 갖가지 자재들이 있는데 소매로도 살 수 있거든요.
개당 천 원쯤 준 것 같아요.

뭐, 사실 서랍이 움찔움찔 움직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흠집도 많은 책상이지만
옛날 책상이라 나무가 튼튼하고 공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서
만족하며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녀석의 형 방에는 좋은 책상을 놔준 것도 아니에요.

붙어 있는 두 개의 책상은 전에 살던 집에서 녀석들이 하나씩 나눠쓰던 거에요.
그리고 그 이전엔 저와 여동생들이 썼던 책상이구요.
오른쪽 유리덮개마저 없는 책상은 제가 유치원 졸업할 때 샀던
20년도 훨씬 넘은 제 책상입니다.
그때도 어린이 책상이 따로 나왔었지만 처음부터 어른 책상을 사주셨어요.
예쁜 것 보다는 튼튼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진의 왼쪽 책상은 19년 전, 둘째가 유치원 졸업할 때 산 것인데
일부러 같은 회사 같은 디자인으로 골랐어요.
방을 같이 썼기 때문에 맞춰놓기 좋았거든요.
아직도 저 책상들은 튼튼합니다.
가구 보러 다니다보면
요새 가구들이 의외로 약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소비자들이 유행이나 디자인을 중시하다보니 책상의 생명이 짧아져서
공장에서도 튼튼한 것보다는 싼 재질로 그때그때 유행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남동생들은 아무 불평없이 쓰고 있어요.
뭐, 나름대로 앤틱(?) 아닌가요? ^^
디자인이 단순해서 질리지 않으니 지금 보아도 그리 흉하지는 않습니다.
(안목 없는 제 눈에만 그럴지도 모르죠.)
책상 위에 있는 연두색 가습기!
그것도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것이에요.
어느날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아버지가 "저것, 아무래도 색깔 안 맞는다고 내놓은 게 아닐까?"
부창부수라고... ㅋㅋ
"가져가서 망가진 거면 다시 버리고 아니면 우리가 쓰자!"
그렇게 업어왔습니다.
아무 문제 없이 넷째 방의 습도조절을 열심히 해내고 있죠.
왜 저렇게 멀쩡한 것을 버렸을까요?
플라스틱 제품의 손때는 창문닦는 푸른 액체로 닦으면 잘 닦여요.
다용도실에도 주워온 책상이 있어요.

이렇게 책상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면
세탁기에서 나오는 물 때문에 바가지나 비누 등이 젖을 일이 없지요.
가운데 보이는 스뎅 통은
김치통으로 쓰이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분이에요.
행주 전용 삶는 통으로 부활하셨죠.
다음 사진은 주워온 것이 아니고 재활용한 것이에요.

시중에 있는 가*행거라는 회사의 제품이었어요.
전에 살던 집이 매우 좁고 장농은 넉넉치 않아 방에 이 행거를 설치하고 옷을 걸었었는데
이사오면서 버릴까 말까 하다가
이렇게 보조주방 수납장으로 다시 조립했어요.
아래에 있는 빨간 철제장은 한때 유행했던 전자렌지 및 밥통 수납장인데(데*라인, 파*들..등)
이렇게 부식재료 보관함으로 변신했죠.
사진이 좀 지저분한데...
보이는 양주병에는 당연 양주는 안 들어있고
할머니가 아버지 위해 담그신 오가피주가 들어있어요.
달걀... 네, 저희 달걀 두 판, 세 판씩 사다 먹습니다.
10개 짜리 사가지고는 감당을 못하니까요.
밑에 있는 것은 각종 밀가루, 통조림, 북어채 등이에요.
행거 뒷쪽 3칸 짜리 서랍도 주워온 것이고요,
그 속엔 감자, 양파 등이 들어있어요.
그 위에 쥬스병엔 각종 잡곡이 종류별로 담겨있어요.
훼*리 쥬스 병인데 투명하니까 잡곡이름을 써붙이지 않아도 좋지요.
물통은 아버지 사무실에서 드시는 생수의 빈 통인데 모아놨다가 가지고 오세요.
시골에서 물을 떠올 때 거기다 떠다먹으니까 이것도 재활용이네요.
물은 할머니집에서 일주일에 한 두번씩 떠다먹거든요.
다음은 주워온 빨래건조대에요.


아마 어느집에서 행거로 쓰던 물건인가봐요.
처음엔 신기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걸 한참 동안 쳐다보기만 했는데
마침 전에 쓰던 빨래건조대가
더이상 테잎과 끈으로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하나 장만하려던 게 생각나
우선 업어왔지요.
행거로 쓰이던 거라서 옷걸이 거는 홈도 있고 돌기도 많아서 빨래 널기 좋아요.

윗 사진의 빨래 건조대를 자세히 보시면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아실 거에요.
이사오면서 낡은 빨래건조대에게 작별을 고하고
새 건조대를 사려고 하던 차에 누가 쓰레기통 앞에 내놓은 것이었어요.
처음엔 멀쩡한 것인 줄 알고 얼씨구나 업어왔더니
한쪽 팔이 골절상을 당했더라구요.
그래서 엄마가 그 팔을 아래 운동화 너는 곳에 걸쳐서 3단 건조대가 되었어요.
뒤에 있는 퍼렁색 건조대(원래 행거)에는 옷걸이에 걸어서 널고
이 3단 건조대에는 속옷, 양말 등을 널죠.
두 개를 발코니에 나란히 놓으면 마치 맞춘 것처럼 딱 맞게 들어가더라구요.
한 번 빨래했을 때 나오는 빨래양을 모두 커버한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건,
저희 집이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였기 때문이에요.
사실 그동안 살림살이가 말도 못하게 구질구질해서
이사 날짜만 꼽으며 몇 년간 간신히 버텨오던 낡은 살림들을 거의 버리고 입주를 했거든요.
그런데 새 집 와서 남들이 버리는 것들을 보면 멀쩡하거나
조금만 손질하면 되는 것들이더라구요.
입주기간 동안 대형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오거든요.
누군가에게 버릴 쓰레기였는지 몰라도
또 누군가에겐 쓸만한 물건일 수도 있지요.
(새 아파트 입주하시는 분들, 미리 물건 사지 마시고
입주기간에 대형 쓰레기 잘 살펴보세요.
새로 이사하고 인테리어한다고 멀쩡한 것들도 많이 버리더라구요.)
이 글을 보시면서 '구질구질하군...'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제목은 거창하게 '인테리어'라고 붙였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테리어'개념하고는 조금 다르지요.
뭐, 사실 우리집 식구들이 안팎으로 짠순이 기질이 다분한 건 사실이에요.
'이 없으면 잇몸'정신으로 살지 않으면
이 대식구, 먹고 살기 힘들거든요. ㅋㅋ
누나들이 쓰던 책상 아무말도 없이 잘 쓰면서
이제야 자기 방 생겼다고 좋아하는 남동생,
주워온 책상 손잡이 하나 바꿔주고 주워온 서랍장 도배지로 감싸줬더니 흐뭇해하던 막내.
새 것으로 채워주지 못한 방이지만
녀석들의 불평없는 얼굴 보면
흐뭇해요.
여러분들도 주변에 버려진 물건들,
길가에 흔한 돌, 풀, 꽃들,
이런 것들에 약간의 아이디어만 더해서 '돈 안 드는 인테리어'를 해보세요.
몇 백, 몇 천까지 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작품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뭐 어때요, 돈 안 들었으니 망쳐도 손해볼 것 없잖아요.
그럼에도 '그래도 역시 구질구질해..'라고 생각하신다면 할 수 없지요.
짠순이 가족의 안목과 형편은 겨우 여기까지인 걸요. ^________________^

즐거운 밤, 되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