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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엄마와 나의 기억이 겹치는 곳.

초겨울 조회수 : 1,809
작성일 : 2021-12-01 11:51:12
공감능력이 없는 엄마와 대화하다보면
실소와 함께 결론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난 그런적이 없는데? 넌 참 이상하드라~~
넌 왜 없는 얘기를 진짜처럼 하냐~~??
평소엔 기억력이 좋다고 칭찬하면서
꼭 엄마에게 불리한 기억은 전부 저러니
속이 답답해져요,

그런 엄마와 제가 
똑같은 경험을 한건 있어요.

제가 8살여름에
식당을 하던 우리집이 하루아침에
망했어요.

엄마아빠는 저를 고모네집에 두고
뿔뿔이 흩어졌어요.
반아이들은, 검은 유리창안을 들여다보는  저를 보면서
낄낄대기도했어요.
세상이 멈춘듯했어요.
그때 느꼈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해요.
죽고싶다.
눈앞에 보이는 실개천에 발을 넣으면
죽어질까.
하는 생각을 다 했어요.
눈을 들어보니, 5월의 푸른하늘에
하얀구름.

그다음날부터 
전 고모네집 청소를 열심히 했어요.
아침다섯시면 고모부가
신사양말신고 제 옆구리를 살살 걷어차요.
야,야 일어나.
청소하면 먼저 목화솜 이불을 개키는데
지금생각하니, 어설픈 눈사람같이 덩치만 큰거같네요.

그다음, 안방,거실, 신발장정리, 다시 2층계단을 올라가
건넌방과 거실과, 계단을 정리하고 내려와서
마당으로 내려가는 돌계단과, 난간을 닦고
마당청소를 합니다.
싸리빗자루가 지나간, 흔적들이 계절을 따라
남습니다.
낙엽이 모아지기도 하고
눈송이들이 모아지기도 합니다.

시간이 되면, 뒤뜰도 돌아보고 정리해야 합니다.
늘 아침이면, 거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 걸레질을 하는데,
붉은색깔이 도는 나무마다, 제 실루엣이 어른댑니다.

늘 하기 싫은 일이었어요.
고모부는 늘 미운 눈으로 흘겨봤어요.
그런 어느날, 고모네 외아들인 오빠가, 오토바이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어요.
그런 청천벽력같은 일에서도, 고모네는,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유리창을 제게 닦으라고하면서
겉으로는 아무일없는듯 차분한 표정으로 살았습니다.

고모부는, 1년이 되어가도록 절 찾아가지않는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어요.
가난한 엄마와 집을 나올때, 처음 고모네를 들어갔던
그 옷보따리그대로 다시 나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로 갔던 기억.
그후로는 참 행복할줄 알았는데
속좁고 배움없는 엄마의 구박과 비웃음.

그런 엄마가 몇년후, 고모네집에 들어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을 1년 할떄
단 하루도 쉬지못한것.
식구들이 들어올때마다 이미 했던 밥은 안먹는다고
다시 해야 한다고해서 그때마다 수없이 지었던 밥.
빨래를 널고 거둬들이는 순간에도 무작위로
쌓이는 빨래들.
그리고, 1,2층을 매일 닦고 큰 유리창들까지 수시로 닦아야하는
그 일들.
손님이 오면 늘 집에서 큰 솥단지들을 꺼내 대접해야 하고
혼자 그을린 솥들을 닦고 말려야 했던일.
연탄보일러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꿀때 바닥을 전부 곡괭이로 헤집어놓고
서까래및 천장곳곳이 먼지투성이로 뒤집힌것을 전부
다 청소해놓아야 했던것.
고모네 딸이 남편과 크게 싸우고, 코뼈 부러져, 두 부부가 
병원에 입원할당시 두아이들이 기거할때 또 밥도 해주고 간식도 틈틈이 해주어야 했던일

옥상까지, 뒷뜰까지.돌아다니면서
개들이 싼 배설물까지 늘 치우면서
그 큰 집의 유리창까지 반짝이도록 청소했던 일.
그일. 저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1년동안 했던 그일을 엄마도 1년동안 했습니다.
청소에 목숨걸고 절대 지저분한 모습을 못봤던 고모네 집에서의
그일은 서로가 눈에 선한듯한데
그럼에도 엄마는,
너도 고생했구나 라는 말은 절대 안해요.
지금은, 고모도 세상을 떠나 없고 고모부도 없고.
이젠 왕래도 없는 친척인데,
그일은 참 새록새록, 
엄마는 엄마대로, 그일이 새록새록.
딸이 겪었던 그일들에 대해.
그리고, 제게 나중에 숙제하라고 주었던 방엔
쥐가 부시럭대고, 깨진 유리들이 많았는지.

그런 제 이야기엔 너도 힘들었겠구나 한마디도 없이
그때 그렇게 하루도 못쉬고 청소하고.
밥하고, 어디나가 밥먹으면 큰일나는줄 아는지
꼭 집에와서 밥먹고, 그것도 방금한 뜨거운 밥이라고 해서
수없이 많은 찬밥들을 버려야 했다고.
그런 이야기만 다시 제게 하는데
그럼에도 또 엄마,힘들었겠네 공감합니다..



IP : 1.245.xxx.138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ㅡㅡ
    '21.12.1 12:01 PM (14.55.xxx.232) - 삭제된댓글

    참 가혹한 유년의 시절이 있었네요.
    뻘소리이지만, 글을 참 잘 쓰셔서 박완서님 글 같은, 예전 어려웠던 시절 단편 읽는기분이었어요.
    아마도, 엄마는 잊고 싶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들이 많은가봐요. 자식 앞이라도. 아니, 자식 앞이라서일까요?
    무안하기도, 수치스럽기도 또는 직면하기어려울수도요.
    원글님 글 보니 어려운 시절 보내고, 지금은 따뜻한 계절이실거 같아요. 엄마보다 나은 삶을 사는 걸로 위안이 되려나요.

  • 2. 고모가
    '21.12.1 12:07 PM (180.230.xxx.233) - 삭제된댓글

    심보를 좀 곱게 쓰시지...
    엄마는 찬밥을 모아 누룽지라도 만드시지
    그걸 아깝게 다 버리시다니...
    그런 두 분 사이에서 원글님 참 고생했네요.

  • 3. 고모가
    '21.12.1 12:08 PM (180.230.xxx.233) - 삭제된댓글

    심보를 좀 곱게 쓰시지...
    엄마는 찬밥을 모아 누룽지라도 만드시지
    그걸 아깝게 다 버리시다니...
    현명치 못한 두 분 사이에서 원글님 참 고생했겠어요.

  • 4. 고모가
    '21.12.1 12:12 PM (180.230.xxx.233)

    심보를 좀 곱게 쓰시지...
    엄마는 찬밥을 모아 누룽지라도 만드시지
    그걸 아깝게 다 버리시다니...
    현명치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원글님 참 고생했겠어요.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죠.

  • 5. 원글
    '21.12.1 12:12 PM (1.245.xxx.138)

    찬밥을 모아 누룽지를 만들수가 없었어요. 처음엔 했대요.
    그런데 고모,고모부, 고모부네 오빠, 오빠의 아내, 그사이의 아이들 3명.
    또 집에 늘 수시로 찾아오는 손님들, 그중엔 3,4개월씩 그냥 건넛방 차지하고 놀다가 가는
    손님들도 많았고, 고모네 친구들,고모부네 친구들, 엄청 왔어요. 다 밥은 엄마가 하는거였고,
    돈주고 부리는 일이다보니,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했어야했던 그 청소만 해도 입주청소에 해당하는 일이었대요.
    그걸 혼자 몸으로 다 한거죠,, 저또한 입주청소의 기본은 매일 했으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저도 너무 잘알죠^^ㅎㅎ

  • 6. 엄마가
    '21.12.1 12:18 PM (180.230.xxx.233)

    너무 힘드시다보니 자기 힘듬에 빠져 자식 힘든 것은 모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저희 엄마도 본인이 잘못해 있는 돈 다 날리시고 자식들도 힘들게 했는데 본인이 힘드니까 저희들 힘든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어이없었지만...

  • 7. 원글
    '21.12.1 12:20 PM (1.245.xxx.138)

    윗님은 그래도 너희도 힘들었겠구나 라는 깨달음은 엄마가 가지셨나봐요,
    그런 생각을 말로도 전해주시고..그렇다고 맘이 위안이 되지는 않지만, 끝까지 끝까지
    그런 말은 절대 못건네고, 아, 그떄 너무 힘들었어,, 라고 혀를 차는 엄마도 있잖아요.~

  • 8. ....
    '21.12.1 12:26 PM (218.155.xxx.202)

    세상에 조카어린아이를 그렇게 부려먹나요
    고모면 아빠의 남매인데 혹시 아빠 사업실패할때 돈좀 가져다 쓰고 그빚대신 일 시킨걸까요?

  • 9. ...
    '21.12.1 12:48 PM (221.150.xxx.71)

    세상에나..어떻게 그렇게...
    영화도 아니고.. 읽는내내 오싱인줄 알았어요
    친척맞아요?
    어린애가 그렇게 쉼없이 일하고 고생하는데
    남보다도 못한 대접이라니..님 엄마 이해안돼요
    고모라니..시댁인데 그런곳에 아이를.. ㅠㅠ

  • 10. .....
    '21.12.1 1:14 PM (114.129.xxx.6) - 삭제된댓글

    원글님 바보예요?
    뭘 그런 말을 하는 엄마 말에 공감을 해줘요?
    "엄마가 했던 그 일 나는 8~9살 국민학교 1학년이 아이의 손으로 다 했던 일이야"
    "그 때는 매일 죽고 싶은데 엄마는 거기에 나 버려두고 안 데려가니 죽지도 못하고 견뎌냈어"
    "나는 엄마 기억 들으면 죽고싶었던 그 기억만 떠오르니까 한번만 더 그 얘기 꺼내면 엄마 안 봐"
    해줘야죠.

  • 11. 소설가세요?
    '21.12.1 1:29 PM (61.84.xxx.71) - 삭제된댓글

    아니시면 소설을 시작하세요!
    글을 잘 쓰신다는 의미에요.

  • 12.
    '21.12.1 4:55 PM (47.136.xxx.230)

    글을 너무 잘쓰셔서 소설같아서....
    위로먼저 드려야되는데....
    이글 아깝다 많이들 보셔야되는데 이런 생각이
    먼저드네요.

    ㅡㅡㅡ
    지금은 두분다 편하셨으면 좋겠어요.

  • 13. 원글
    '21.12.1 6:32 PM (1.245.xxx.138)

    대신 전
    사람에게 미움받고
    시간에게 용서받는..
    그런 순간들이 어느날은 오더라구요.
    세월이 흘러 과거로 남아버리고
    그 시간들은 어디에 한무더기씩 쌓여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자물쇠가 굳건한 유리창너머 적막한 홀 풍경도,
    그게 제 눈동자에 각인되어 선연히 떠오르는 그 기억도
    저를 슬프게 하지못하잖아요,
    다만, 그일만큼의 일들이 자꾸 와서 견디다보니
    벌써 유년이 지나고 성년이 지나고 이젠 중년이 되었는데
    예민하고 섬세한 그 성격만큼 어느누구보다도 꼼꼼하고
    예감이 후각만큼이나 발달했어요.^^

  • 14. 모두다 사라질뿐
    '21.12.1 10:28 PM (61.84.xxx.71) - 삭제된댓글

    소중하고 미워했던 인연과 순간들도
    휑한 가을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도 저 허공속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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