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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공감가시나요?

깍뚜기 조회수 : 712
작성일 : 2010-08-22 01:06:55
* 대박 공감, 읽고나니 씁쓸,
  그나마 실업을 면한 것에, 의자에 앉아 있는 것에 고마워야 해야하는 (?)  더러운 세상 ㅠㅠㅠ




                           <사무원>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장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과 資金收支心經 과 자금수지심경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IP : 122.46.xxx.13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ㅜ.ㅜ
    '10.8.22 1:08 AM (218.154.xxx.223)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이 부분이 젤 공감가네요;;

  • 2. 삼순이
    '10.8.22 7:34 AM (99.62.xxx.2)

    얼마 전 퇴근 길에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배는 나오고 어깨는 구부정 하더군요. (물론 저도, 흠흠)
    참, 전 귀가길에 셔틀버스에 보여줘야 하는 신분증 대신 신용카드를 내밀었다는.

    좋은 시 고맙습니다, 깍뚜기님.

  • 3. 정말
    '10.8.22 8:24 AM (121.164.xxx.188)

    아주아주아주 공감이 되는 시네요.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나타나있어요.

  • 4. 마지막은
    '10.8.22 8:44 AM (174.6.xxx.54)

    처용가가 생각나네요 . . .

  • 5. 봄비
    '10.8.22 3:00 PM (112.187.xxx.33)

    현대, LG 가계도는 문학소녀 깍뚜기님께서
    전문 개드립체로 B급 찌라시다운 맛이 화악 느껴지게 써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깍뚜기님이 쓰시면 정말 재미나게 쓰실듯...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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