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링크가 안돼서 품위전쟁 올려드릴게요.

산만한 조회수 : 477
작성일 : 2010-05-19 10:48:38
품위 전쟁


영화 만드는 박찬욱 씨가 ‘이젠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참 이 사람 저 사람 그 글을 화제로 올리기에 부러 찾아 읽었었다.

기억에 기대어 내용을 적어보면 이렇다. 박찬욱 씨가 젊은 상류계급 인사들의 무슨 모임에 불려갔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하더란다.

그런데 그게 겉치레로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인간적인 호감을 뿌리치기가 어렵더라는 것이다.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그로선 거부감이 들지도 느끼하지도 않는 ‘새로운 반동들’(이건 내 표현)이 적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부르주아 1세대는 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디 어느 모로 보나 착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제 집에서 소를 훔쳐 도망 나온 사람이었으며 동족이 죽어나가는 전장을 쫓아다니며 탄피를 팔아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에 대한 타고난 탐욕과 하한선이 없는 듯한 인격을 한껏 발휘하여 개발독재 시기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의 험한 외양까지 바꾸어낼 순 없었다. 그들은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 앞에 조아리게 했지만 조아린 사람들은 내심 그들에게 침을 뱉고 있었다.

양반이 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이던 상놈처럼, 그들은 돈으로 제 가계를 개량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집안 좋고 머리 좋은 배우자와 짝을 지워 좀 더 우량한 아이를 만들어내고 정히 엇나가는 아이는 미국대학에 기부입학이라도 시켜 통속적인 외양을 확보하기를 수십 년, 드디어 그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아이들’을 얻게 되었다. 이른바 재벌 3세, 혹은 4세로 불리는 그 아이들은 대개(물론 전부는 아니다) 인물 좋고 머리도 좋으며 심지어 예의바르고 착하다.


물론 그건 어떤 삶의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그들의 진짜 인격은 아니다. ‘이젠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라는 말의 실체는 ‘이젠 부자가 착함까지 사들였다’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부를 일구고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의 시궁창을 천하게 구르던 제 할아버지와는 달리 일 년 내내 착한 얼굴을 하면서도 제 부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착한 것이다.
단언컨대 그들 가운데 누구도 제 부에 결정적인 위협을 받을 때 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고래가그랬어 편집장 조중사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산 중턱에 있는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거길 그만두고 성북구의 한 가난한 동네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으로 옮기고는 퇴근만 하면 우울해하고 술이라도 한잔할라 치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인다고 했다. 조중사가 연유를 물으니 그러더란다.

“아이들이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여기 학교 아이들은 한 반에서 다섯 명 정도를 빼곤 지난번 학교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축에 껴. 거기에다 왜 여기 아이들은 키도 덩치도 작고 또 왜 이리 아픈 아이들은 많은지..”


개혁파든 극우파든 신자유주의 광신도들의 지배가 지속되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겨워지는 현실 또한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싸우고 있고 또 싸워야 한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의 품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인가? 아니다. 가난은 불편하고 때론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적어도 부유보다는 정당하고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이다.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이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품위마저 사들인 부자들은 세상에서 가난의 품위라는 것을 도려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바야흐로 품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 전쟁에서 질 때, 그래서 아이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제 아비 어미를 수치스러워하게 될 때 우리 삶도 끝장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gyuhang
2007/05/19 08:35 2007/05/19 08:35
Posted by gyuhang at 2007/05/19 08:35 | 트랙백 10 트랙백 주소 :: http://gyuhang.net/trackback/992
IP : 210.124.xxx.144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하지만
    '10.5.19 12:51 PM (61.253.xxx.133)

    예전에는 대학에 가고파도 돈이 없어 갈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고자 하면 갈 수 있는 것에 만족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53383 입다문 盧측… 뒤져도 뒤져도 100만弗 용처 미스터리 16 세우실 2009/04/16 974
453382 예전에 생방송 60분 부모에 나왔던 분 중에서... 궁금 2009/04/16 651
453381 어찌해야할까? 1 신중녀 2009/04/16 400
453380 시장에서 생멸치사다가 젓갈 담궈도 될까요(서울) 5 바다 2009/04/16 644
453379 전 가카가 너무 좋습니다. 25 .... 2009/04/16 1,398
453378 소파 궁금해서요(카우치,일자형) 10 소파 2009/04/16 1,090
453377 기분좋은날 이재용아나운서 4 ?? 2009/04/16 2,694
453376 강남,분당에 1 .. 2009/04/16 532
453375 에버랜드나 놀이동산 갈때 도시락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15 맑음 2009/04/16 2,284
453374 겨드랑이 제모 잘하는데 알려주시와요~ 2 강남~ 2009/04/16 521
453373 학습지 교사 관심 있으신 분들, 이 기사 읽어보세요. 1 학습지 2009/04/16 850
453372 주옥같은 올드팝 방송듣기..... 2 사반 2009/04/16 316
453371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4 세우실 2009/04/16 423
453370 아래 친구댁이 일주일간 지냈으면..저도 질문이 있어요. 37 덩달아 2009/04/16 1,874
453369 운동회 반티 싼 곳 있나요? 2 알려주세요... 2009/04/16 1,403
453368 '묻지마' 체포의 부활과 청와대 기자도청 해프닝?! 3 오호 통재라.. 2009/04/16 372
453367 제주도 여행 도움주세요 2 제주도 2009/04/16 718
453366 분당에 아이들 캐릭터나 학용품 예쁜 가게 있나요? 3 반아이들 생.. 2009/04/16 355
453365 프랑스가 다른나라로 부터 환수받은 문화재 아시는분.. 3 불문과 2009/04/16 301
453364 결혼하신님들 한달에 저축얼마나하세요? 10 저축 2009/04/16 1,644
453363 dsrl 카메라문의. 5 ?? 2009/04/16 442
453362 "왜 <조선일보>만 성매매 예방교육에 발끈하나?" 1 세우실 2009/04/16 334
453361 아래 영화 더 리더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요..감동 못 받았는데... 9 더 리더 2009/04/16 778
453360 친구댁이 울집에서 일주일간 지냈으면 하는데요.. 122 난감. 2009/04/16 8,182
453359 반복을 싫어하는 초1 남아..설득하기 좋은 말 13 맹모삼천지교.. 2009/04/16 607
453358 "시험으로 교사·학생 때려잡는다? 오바마가 안다면…" -[인터뷰]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 ... 2009/04/16 314
453357 독일이랑 스웨덴으로 가거든요. 8 남편이 출장.. 2009/04/16 743
453356 기분좋은날에 김남주씨 ㅎㅎ 2009/04/16 716
453355 강남 송파 강동에서 필러 저렴한 곳 1 이쁘자 2009/04/16 452
453354 돌아가신분 생일도 지내는 건가요? 8 잘 모름 2009/04/16 6,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