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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 남자 책도 읽고 영화도 한번 더보고~(스포있음)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책을 읽었는데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알고나니 훨씬 이해가 쉽네요.
남주인공이 너무나 짠하더라구요.
한사람의 인생에 다른 사람이 너무나 깊은 영향을 줘서
그 이후에는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한나가 기준이 되어버리고 한나와 헤어진 후에는 더이상 자기가 상처받을 만큼의 사랑은 주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다른 여자를 만나도 후각에서 먼저 한나와 다름을 인지하는~~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주인공의 삶이 안스러웠어요.
세미나중에 어떤 다혈질적인 대학생이
그런 추잡한 짓을 해놓고도 피의자들이 너무나 뻔뻔스럽다고 울분을 토하죠~
그리고 나치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들은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일들(유태인학살)이 일어나는지 뻔히 알면서도 용인하고 방조했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라고 합니다.
남자 주인공 마이클을 통해서 작가가 나치시대 이후의 세대의 정신적 혼란을 보듬어 주고 나아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거 같앴어요.
그러니까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나치 이후의 세대는 나치세대에 대한 미움, 증오,사랑,원망,애증,,,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됨을 스스로 인정하고 물론 나치세대는 유죄이지만 그세대를 이해하는(용서는 아니에요. 이해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죄에요.) 그리고 울분을 토햇던 마이클의 동료처럼 그냥 비난으로 끝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그전세대가 존재함으로 자기세대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그세대를 부인하지 않고 이해하며 자기세대도 어느정도는 유죄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비난으로 끝나지 않고 그 과오를 다음세대에 담담히 알려주는것(마이클이 자기딸에게 자기와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영화가 끝나요.)이 나치 이후 세대의 역할이라는 거 같아요.
영화나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요.
한나가 법정에서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사람을 골라 가스실로 보낼수가 있느냐, 사람이 불에 타죽고 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을수 있냐 물으니
그럼 재판장님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요.
도전하는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죠. 재판장의 대답도 옹색하기 그지없구요.
한나는 그냥 그게 자기 일이고 자기 역할이고 자기 직업이었으니 그일에 충실한거라는거죠.
오늘 문득 드는 의문이
독일은 칸트니 니체니 헤겔이니 세계적인 대철학자들을 배출해낸 나라가 아니던가요?
그런 앞선 사유의 나라가 어떻게 1,2차 대전이며 홀로코스트며 그런 잔인한 일을 벌일수 있었을까요?
사족)))
마이클이 한나의 집을 두번째 방문했을때 한나가 양동이에 석탄을 떠오라고 시켜요.
공동으로 쓰는 창고 같아 보이는 곳에 석탄이 천장까지 쌓여있더군요.
예전에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 배경이 알사스와 로렌지방이었나요?
석탄인지 철광석인지 자원이 많아서 독일과 프랑스(오스트리아였나?) 사이에 항상 분쟁이 잦았던 곳이요? 그게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석탄이 얼마나 풍부하면 저렇게 쌓아두고 공동으로 같이 쓸까 싶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일텐데. 공동으로 쌓아두면 너도나도 다 퍼서 자기집으로 나를거 같더라구요~~
1. 공감
'09.12.28 6:52 AM (122.36.xxx.153)책 읽어주는 남자, 무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감명 깊게 봤습니다.
영화만 두 번^^;;
두 번째 볼 때는, 먼저 소설을 읽은 친구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 가면서 보았고요.
저는, 재판정에서 한나가,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자신이 하지 않은 서명을 자신 것이라고 인정해버리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슴이 얼마나 먹먹해지던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한나가 글공부를 하고, 마이클에게 편지를 보내고,
읽고 싶은 책을 적어 보내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이클이 마이크를 쥐고, 어려서 읽어주던 책을,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읽으면서 녹음하는 장면도
눈물로 봤고요.
죄다 눈물 얘기만...-,.-
재판정에 함께 있었던 과거의 공범들이나 검사, 재판관들에 모습은,
모르는 얘긴 아니었지만 새삼스럽게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보았고요,
마이클과 친구들과 교수가 토론하는 장면과
마이클과 교수가 따로 대화하는 장면에선
저 역시 그 답을 찾을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서 곤혹스럽더군요.
나찌 시대 땐 나찌 당원이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가
나찌가 패망하자마자 나찌 당원이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더라는 말도 떠오르고요.
마이클이 유태인 학살의 흔적을 찾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나는 나찌 시대를 겪은 독일인의 희생을 극적이고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한나의 공범이었던 자들 모습은 나찌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어느 정도로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고요.
나찌에서 벗어난 후, 나찌 이후 시대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과거 나찌를 독일에서 떼어버리고 미래의 새 독일로 나아가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양을 만들고 스스로 알고 있는 문제를 덮어버리는 모습은,
이를테면 재판(관)이 형식 논리에 치우쳐 나찌 시대의 현실(진실)을 어물쩡하게 처리하는 모습은,
내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현실]은, 죄인도 희생자도 어쨌든 [함께] 살아남았고, 어쨌든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의 그 현실은, 그렇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강했으니까요.
마치 우리 처지처럼요.
마이클의 동기생이 울분을 참지 못하지만, 그 울분은 정당하고 울분의 원인은 해결돼야 하지만,
독일은 그 울분을 더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그 울분과 그 울분의 원인과,
울분하는 자들과 울분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흐르는 시간에 함께 떠내려 보내기로 한 듯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죄를 지은 자로서, 희생 당한 자로서,
죄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자로서, 희생의 아픔을 온전히 치유하지 못한 자로서,
고통과 노력을 동시에 품은 시대를 거쳐갔나 봅니다.
[환부를 도려내고] 건강을 회복한 프랑스나 덴마크나 벨기에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와는 달리 말이죠.
한나가 마이클을 진정으로, 가슴 깊이 사랑했다는 점은 놀라웠습니다.
여자의 사랑과 남자의 사랑은 다른가보다고 비약해서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한나가 문맹이라서 시작되었지만
그 문맹에 발목이 잡혀 더 나아가지 못했던 한나의 사랑은,
한나가 글을 깨치고 나서 비로소 그 본 모습을 찾아 완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마이클과 결합하는 식의 결실은 없었지만요.
저는, 이 작품을, 이렇게, 한나와 마이클의 사랑 얘기로,
나찌 시대를 불가항력의 희생자로 살고, 나찌 이후에도 역사적 희생을 감당해야 했던,
여성 한나의 사랑 얘기로 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이미 그 시대에도 독일에선,
강의실에서 학생이 교수와 맞담배를 피우고,
기숙사에선 자유롭게 섹스를 했더라고요.
억울하고 분하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