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섬진강을 낀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청소년을 보낸 1971년 출생입니다.
어느 집이라고 할 것 없이 모두 가난하고 많은 식구가 한집에 살던 산골마을입니다.
큰 채에는 할아버지방, 그리고 바로 옆에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어도 될 만큼 큰 방이 있었습니다.
불때는 아궁이가 3개가 있던 부엌, 땔감을 쌓아두던 문이 없이 창고 같은 공간 또, 옆으로 작은 흙방을 지나면 좀 더 큰 부모님 방이 있었습니다.
작은 흙방은 오빠들의 공부방이었고 나는 그 방에 들어가서 같이 어울리고 싶었던 호기심 많은 산골 개구쟁이 여자아이였습니다.
남동생과 나는 늘 오빠들 방을 동경했습니다.
그 방엔 몇 가지 책과 앉은뱅이 책상, 큰 오빠가 입고 걸어놓은 반듯한 교복과 직접 그린 어설픈 그림이 전부인 볼품없는 방임에도 그 시절 오빠들은 우리가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빠가 학교에 가고 없는 틈에 작은방에 들어가는 날도 가끔 있었습니다.
책상 서랍은 열쇠로 채워져서 건드릴 수 없었지만 읽을 수 없는 수많은 글씨가 있는 책을 넘겨보고 그림을 보며 그 그림을 따라 그려놓았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가 화를 내던 모습이 선합니다.
우리 집 마당엔 살구나무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좁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창고와 외양간 돼지우리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 마당의 닭들은 정해진 공간이 없어
그저 우리가 쫓으면 집 뒤 대나무 숲 근처로 갔다가 저녁이면 마루 밑이나 외양간 어귀에서 잠을 잡니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어린 시절엔 옥수수 줄기도 입술이 터지건 상관 않고 씹었습니다. 줄기 마디마디를 잘라서 동생과 똑같이 나누며 흐뭇해하던 꼬마들.
덜 익은 떫은 감은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에 넣어두고 떫은맛이 사라지면 꺼내먹던 어린시절.
잔잔한 바람에도 파도처럼 출렁이는 소리를 내던 대나무 숲은 동생과 나에게 미로처럼 비밀스런 장소입니다.
한낮에도 조명을 낮춘 듯 어두웠던 그곳 이맘때쯤 우리는 그곳을 자주 갑니다.
대나무 숲 깊숙이 멀리 끝자락일 것 같은 곳에 키가 큰 감나무가 있습니다.
간밤에 잘 익어 떨어진 감을 발견하면 우리는 두려움에 움츠렸던 마음이 돌아갈 땐 다시 올 거라고 다짐하고 감을 챙겨 돌아갑니다
우리 집 할아버지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단 한 번의 말대답도 허락하지 않았던 무섭고 어려운 존재 셨습니다
그러던 시절 할아버지는 가끔 닭 한 마리를 옻나무와 함께 고아 드셨습니다.
닭을 잡는 일은 아버지가 하십니다.
닭 발과 위통, 간, 약간의 껍질을 제외한 닭은 푹 고아져서 국물까지 몽땅 할아버지만 드십니다.
우리는 할아버지 약이라고 생각하며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남은 발과 간 등은 작은 냄비에 담겨 아궁이 숯불에 자글자글 끓여집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작고 다정한 목소리로 오빠들을 부르십니다.
누가 먹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을 농사가 끝나고 할아버지는 쌀과 몇 가지 곡식을 서울로 보내시고 서울나들이를 하십니다.
서울에는 작은아버지 집과 시집 안 간 고모, 삼촌이 타향살이하던 곳입니다.
택배가 없던 그 시절에 작은 체구의 아버지는 등짐 가득 가마니를 지게에 짊어지시고 할아버지를 그 먼 기차역까지 배웅하십니다.
할아버지가 나들이가시고 없는 어느 날 저녁 밥상에 닭고기가 들어간 뭇국이 대접 가득 각각 놓여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 나이쯤 되시는 어머니는 닭을 잡아 큰 솥 가득 토막을 친 닭고기에 오빠들 연필 깎아주던 빠른 솜씨로 무를 빠져 넣고 간은 굵은 소금으로 양념은 마늘과 파로만 합니다.
그 맛있는 국물은 잊히지 않는 나에게는 비밀스런 추억입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추억하며 나는 닭 뭇국을 끓입니다.
그리고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때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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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가을엔 먹어야 하는 입 나의버릇
달콤한 추억 조회수 : 515
작성일 : 2009-10-26 09:06:13
IP : 211.226.xxx.13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970
'09.10.26 9:30 AM (110.9.xxx.223)같은 시대 70년 생...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전 원글님의 추억이 너무 부럽네요.
기억을 떠올리면, 제 유년시절은...
아빠가 가져온 미제 쥬스가루에 찬물 섞어 쥬스 만들어 먹던일..
몇살때인지는 기억 안나지만, 당시 우리집에만 티비가 있어서,
수사반장 할 때 마다 우리집 방이 터져 나갈듯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티비 보던일...
9살쯤엔 배달 야쿠르트에 바늘로 구멍 뚫어 쪽쪽 빨아먹던 일.
뭐 그런 것만 단편적으로 떠올라요.
원글님 글 읽다보니, 시골 특유의 그 냄새와 느낌이 전해지네요.
(서울태생이지만, 방학때마다 할머니 보러 갔었거든요. ^^)2. ...
'09.10.26 9:48 AM (220.88.xxx.254)닭뭇국을 먹어본적은 없지만 추억을 그림처럼 예쁘게 써주셨네요.
그땐 노인들이 참 권위가 있던 시절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많이 변했네요.
시골 큰집에 가면 할머니 하얀 고무신 깨끗이 씻어서 댓돌에 세워놓고
놋대야에 따뜻한 세숫물 떠뜨리고 했는데...
오래전일도 아닌데 사극같은 분위기가 나네요ㅎㅎ3. ^^
'09.10.26 3:57 PM (203.171.xxx.197)이런 수필같이 잔잔한 이야기 넘 좋아해요..
얼마전 열편의 이야기를 올려주신 이야기님인가 하는 생각 설핏~
근데 할아버님 넘 이기적이시네요..
어쩜 홀랑 본인만 국물까지 다 드시는지...
할아버님만 닭고기 드시는거.. 먹고싶어하는 아이들을 보는 부모님의 맘이 어떠하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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