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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이야기
시골 마을 중 면단위도 아니고 리에 속하는 마을에
가게 있는 마을은 흔하지 않지요.
면에는 보건소도, 약국도, 우체국도, 은행도, 가게도
거의 없는게 없지만 말이지요.
지금은 안한지 꽤 오래된 면에 00약국은
역사가 엄청 오래 되었어요.
가정집에 딸려있던 나무로된 이 약국은
어찌나 오래 되었던지 예전에 무슨 영화 속에
잠깐 나오기도 했다지요.
영화 관계자들이 아주 아주 오래 된 약국이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전국 각지의 약국을 찾다가
찾아내서 영화 장소로 잠깐 나왔던 이 약국은
그 약국의 오랜 시간 만큼이나 나이도 지긋하신
주인장 부부가 하셨다가 지금은 없어진지 좀 되었어요.
여기서 한가지 재미난 거 알려드리자면
제 고향이 cf속에서 나오기도 했지요.ㅋㅋㅋ
생뚱맞은 얘기로 잠시 빗나갔는데,
요즘은 가을날씨 답지 않게 좀 많이 추운 거 같아요.
추워지니까 갑자기 호빵 생각이 난 김에 얘기 하나 올릴려고요.ㅎㅎ
마을에는 가게가 없다고 했지요.
한때는 마을에 가게가 생기기도 했어요.
가게라고 하기엔 터무니없는 공간이었지만요.
마을 부녀회장님 댁에서 집 한쪽에 이것저것 구비를 해놓으셨지만
역시나 필요없어서 얼마 못가 없어졌지요.ㅎㅎ
여튼 가게가 면까지는 나가야 있다보니
마을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 이상은 군것질 할 거리가 없었어요.
과자든 뭐든 먹고 싶어도 사먹을 곳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장날을 꼬박 기다리기도 했지요.
저도 물론 그랬구요.
왜 장날이냐 하면.
엄마가 장에 다녀오시는 날이면 장터에서 산
붕어빵이든, 풀빵이든 뭔가를 먹을 수 있으니까요.
엄마가 장에 가시는 날에 손가락 까지 걸고
약속을 해놓으시곤
장바구니에서 쓸데없이 생선이 나오거나 식재료가 나오면
어찌나 화가 나던지
엄마한테 과자 안사왔다고 고약하게 성질을 부리곤 했지요.
엄마는 잊어버리셨다고 달래셨지만
엄마는 모르실거에요.
엄마가 시장에서 빨리 돌아오기를
대문 밖에서 서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장바구니 속에 과자 한봉지가 담겨 오기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말이죠.
그러니 쉽게 투정이 풀릴리는 없고
계속 투정부리다 결국 엄마한테 혼나서 또 울고.ㅎㅎㅎ
아버지는 어딜 가시는 일도 별로 없었고
밖에 나가셔야 할 정도면 어떤 경조사나 다른 일로
나가시는 것이어서
아버지가 군것질 거리를 사들고 오시는 일은 없었어요.
저조차도 엄마한테는 기대를 했을지언정
아버지한테 뭐 사다달라고 하거나 기대하거나 한 적은 없었거든요.ㅎㅎ
그러던 어느 겨울날
면에 일보러 나가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는데
뒤로 뭘 감추고는 오시는 거에요.
마당에서부터 그걸 보고 있던 저는
아버지를 가로막고는 뭐냐고 뭐냐고 물어보느라
정신 없고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까만 봉지를 후다닥 들고는
방안으로 들어가시는게 아니겠어요?
아~ 근데 제가 눈썰미가 좋은지
그게 아무것도 아닌건 아닌거 같더라구요.
까만 봉지속에 들어있는 뭔가의 자태가 꼭 호빵 같더란 말이지요.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가 글쎄 벽장 문을 열고 그 까방 봉지를 벽장에 쏙
넣어두시는게 아니겠어요?
그때 방안에는 나무문으로 된 벽장이 하나 있었는데
초등학생이던 제게는 그 벽장은 너무 높고
발꿈치를 들어도 올라가지 못할 위치에있었지만
저는 손을 쭉 뻗어 벽장을 잡고
기어 올라가 종종 벽장 속에서 놀곤 했었어요.
한때는 그 벽장 속에서 어린 박쥐 한마리가 나오기도 했다죠.
여튼 그렇게 올라가 놀던 게 익숙해져서
아버지가 벽장 속에 넣어두시고 잠시 나간 사이
저는 하던대로 손을 뻗어 벽장을잡고 발로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 벽장 속에 놓인 까만 봉지를 열어보게 되지요.
아~~ 그건 말이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쑥 호빵 두개가 담긴 봉지였답니다.ㅎㅎ
지금은 뭐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는 작은 호빵이 흔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그때는 호빵이 나온지도 얼마 안됐을때고
호빵 종류라고는 흰색 호빵하고 쑥 호빵. 두 종류 뿐이었어요.
아주 진한 쑥색 호빵이요.
크기는 또 얼마나 컸는지...ㅎㅎ
검정 비닐봉지에 코를 박고는 킁킁 거리며 냄새만 실컷 맡고 있었지요.
먹고 싶지 않았냐고요?
왜 먹고 싶지 않았겠어요.ㅎㅎ 고걸 냉큼 집어서 입으로 한가득 베어 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지요.
어찌나 열심히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있었던지
벽장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시고는
그러고 있는 절 보곤 껄껄 웃으시면서
몰래 감춰두고 저녁에 짠~하고 줄려 그랬더니 그새를 못참고
거기 올라가 그러고 있냐고 하시면서 아버지는 웃으셨지요.ㅎㅎ
결국 그 따끈한 쑥색 호빵을 반씩 쪼개서 나눠 먹었어요.ㅎㅎ
처음 이 마을에 이사오고 마을 주민이 되었을때
제가 4살이던 그때
어찌나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지
동네 아저씨랑 막걸리 드시러 가도 아버지 뒤에 제가 졸졸
따라오고
어딜 가든 아버지가 가는 곳에 제가 그리 졸졸 따라 다녔데요.
여자 아이는 어렸을때 아버지를 많이 따른다는게 맞는걸까요?
아버지가 손을 뒤로 하고 뒷짐지고 걸으시면
4살짜리 꼬맹이가 아버지처럼 손을 뒤로 하고 뒷짐지고는
아버지 뒤를 졸래졸래 따라 다녔데요.
그걸 보고 있으면 어찌나 우스웠는지 모른다고...
저도 기억나요.
한번은 아버지가 마을 아저씨네 가셨는데
저도 따라갔더니
아저씨가 저한테 아버지 좀 그만 따라다니라고
막 뭐라 하셨던 기억이요. 물론 일부러 그러신게 아니고
절 놀리시려고 그러신 거지요.ㅎㅎ
그때 호빵이 하나에 오십원인가 할때였는데
가게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통.
호빵이 담긴 통 속엔 한쪽은 흰색 호빵
한쪽은 쑥색 호빵.
막내오빠랑 초등학교를 왔다갔다 하면서
가게 앞의 호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입맛 다시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정말이지 너무 빠른 거 같아요. ㅎㅎ
1. ^^
'09.10.22 4:07 PM (220.64.xxx.97)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요즘 풍족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런 감성을 알까요?
어제 수퍼에서 호빵 세개 든거 사왔었는데,
비록 쑥호빵은 아니지만, 그거라도 쪄 먹어야겠어요.2. 호빵..
'09.10.22 4:11 PM (122.128.xxx.177)저도 어제 슈퍼에서 야채호빵 보고 먹고싶어 사왔는데 아직 못쪄먹고 냉장고에 그냥 있네요.
날 추워지고 호빵이 처음 눈에 띄면 꼭 사게 되더라구요..3. 아ㅡ
'09.10.22 4:38 PM (222.116.xxx.36)호빵먹고싶어요ㅡ 저희 아빠는 어렸을때 외출하고오시면 항상 맛있는걸 사오셨던 기억이 있어요~아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ㅋㅋ. 님 글을 읽고 매번 잊혀졌던 옛추억을 떠올리네요.
4. 좋은글
'09.10.22 4:56 PM (211.51.xxx.98)아, 이렇게 정감있는 글을 봣는데, 그만 딴 소리 좀 할께요.
호빵 성분 표시 함 보시면, 질겁을 할 정도로 첨가물이
많이 들어있어서 다시 호빵 먹을 엄두가 안나요. 한번들
봐보세요.5. 원글
'09.10.22 4:58 PM (61.77.xxx.112)좋은글님 전 어렸을때나 군것질에 목말랐지
커서는 그닥 과자류에 관심이.ㅎㅎ
결혼하고서는 더 과자를 안먹어요.
호빵도 안사먹은지 꽤 오래라는..
요즘은 과자든 뭐든 먹거리가 너무 불안정해요.
옛날에 먹었던 호빵하고 비교하기도 힘들고요.ㅎㅎ6. 소박한 밥상
'09.10.22 7:43 PM (58.225.xxx.101)오늘 호빵 봉지에 쓰여진 칼로리표를 보니 600칼로리가 넘더군요
밥 두공기가 넘고 첨가물 설탕 밀가루 음식이란 거 감안하면
참 망설여지네요.
저의 부친도 참 좋아하셔서 제삿상에도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물론 저도 !!
아름다운 얘기끝에 찬물 붓는 소릴 해대서 죄송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