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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

프리댄서 조회수 : 1,601
작성일 : 2009-09-04 07:06:37
나의 사랑을 회상한다는 것은 매우 아득한 일이어서 그 사랑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에로티시즘을 초월한 이 흥분의 기쁨은 너무도 엄청나 차라리 순수한 고뇌라 하겠다. 이 흥분과 고뇌는 말들을 열정으로 변화시킨다. 사랑의 언어활동은 불가능한 것으로서, 적절한 표현이 어렵고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암시적인 것이 되어 그 의미는 은유에 실려 흩어져 버린다. 사랑의 언어활동은 문학이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역사> 서문 ‘사랑의 찬가’ 중에서

몇 년 전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 책, <사랑의 역사>를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랑의 역사>는 플라톤에서부터 성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로미오와 줄리엣>, <돈 후안> 등을 찍고 보들레르와 조르주 바타유에 이르기까지, 서양문화사에서 사랑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텍스트들이 ‘사랑’의 의미와 모습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탐구한 책이랍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대가예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보내고 대학시절에 프랑스로 건너왔죠. 프랑스에서 60년대 말에 문학박사 학위와 정신분석의 자격증을 땄구요, 롤랑 바르트 등과 함께 전위 및 실험문학의 이론적 근거지로 유명했던 문학지 <텔 켈(Tel Quel)>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텔 켈> 활동을 하면서 <텔 켈> 창간자인 필립 솔레르스와 눈이 맞아 결혼을 했고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 아들에 대해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과 성스러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이방여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룻을 언급할 때였는데요, 룻은 잘 알다시피 우리로 치면 만주족이나 말갈족쯤에 해당하는 모압 여성이었죠. 다시 말해 오랑캐 아가씨가 조선 사대부 집안의 정식 며느리가 돼서 아들을 낳고 나중에 그 아들의 아들이던가,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던가가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인물입니다. (뭐 성서 속 인물들의 삶이 모두 드라마틱합니다만--;) 그 왕도 보통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하여 ‘왕 중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다윗왕이었구요.

그런데 사실, 옆길로 새는 얘기이기는 합니다만, 다윗이 ‘왕 중의 왕’이라 불리는 까닭은 유일신 신앙을 유대민족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죠. 그 전까지는 소박한 ‘단일신’ 정도이지 않았을까. 처음엔 모세가 민족운동 차원으로 이집트에서 발아한 유일신 개념을 유대민족에 전승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이 신한테 선택받은 민족이다, 그러니까 이 야훼라는 신 하나만 믿으면서 똘똘 뭉치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 뻥 아니다, 내가 이렇게 계시받은 것까지 들고 왔지 않느냐....’면서 단결을 도모했겠죠. 하지만 유대민족 내 다신교 전통이(바알신이니 뭐니...) 제법 뿌리 깊었고, 거기다 12지파라는 부족들이 각각의 신들을 내세워 권력투쟁을 벌임으로써 유일신 신앙이 뿌리 내리기가 어려웠을 테죠. 그러다 다윗이 권력투쟁에서 ‘대승’을 거둬 왕권을 잡았는데,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바로 야훼를 믿는 쪽이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야훼가 우주 전체, 이 세상 전체를 주관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저 소박하게 유대민족이 믿는 여러 신들을 대표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보통 혁명이 일어나거나 혁명에 버금가는 변화가 권력체계에 발생했을 때 그 변화를 정당화시켜주는 사상적 밑그림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조선의 탄생에 기여한 성리학이나 프랑스혁명을 이끌어낸 계몽주의처럼요. 다윗은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았지만  반대파의 빈란이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백성들을 자기들 편으로 단단히 묶어둘 사상적 밑그림을 강화하고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파의 선동이 먹혀들 수 없도록요. 바로 그 과정에서 대두된 것이 유일신 개념이 아닐까.... 단일신을 유일신으로 격상시켜 그 유일신이, 다시 말해 시시한 부족신 따위가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주관하는 대단한 신께서 우리 민족을 선택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내용의 프로파간다였을 테니까요. (뭐 냉소적인 무신론자는 유일신 신앙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암튼 그렇게 권력을 잡은 다윗에게 반대파들은 끊임없이 비난과 모함과 바방을 일삼습니다. 거기서 다윗의 아킬레스 건인 ‘혈통’의 문제가 빠질 수 없었죠. 하여 다윗은 이렇게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그들은 불만에 차서 내게 말할까요. 그는 떳떳한 혈통이 아니요, 그는 모압 여인 룻의 후손이요, 라고 말입니다.” 다윗의 이름 ‘DAVID’에 대해서도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가엾다’는 뜻의 ‘D'(달렛트)가 두 번이나 들어간 것 역시 유대왕으로서 이방 여인의 비천함과 오점을 자신의 피에 담게 된 운명과 비탄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잠깐 또 다른 샛길로 빠져보자면요, 1920년대 미국에서는 ‘할렘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현상이 펼쳐졌었답니다. (참으로 뜬금없는 얘기?) 당시 농촌인구가 도시로 대량 유입되면서 흑인들도 대도시로 많이 진입하게 됐어요. 흑인들은 당연히 흑인들만의 게토를 이룬 채 그 안에서만 지내야 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할렘이었고, 당시 할렘에 있는 흑인들을 중심으로 민족적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우린 왜 이렇게 지내야 하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그리고 그 각성을 다양한 예술 양식으로, 폭발적으로 드러냈죠. 바로 그 현상을 ‘할렘 르네상스’라고 하는 거랍니다. 할렘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흑인들의 문예부흥운동이라는 의미에서.

그때 ‘할렘 르네상스’ 시기에 나온 소설 중 <패싱(Passing)>이라는 게 있습니다.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넬라 라슨이라는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인데, 거기에 백인이나 다름없는 흑인 혼혈 여성들이 등장해요. 부모 중 한 쪽은 흑인, 한쪽은 백인인데 ‘운 좋게’ 외모를 백인 쪽 부모의 것으로 물려받은. 그 여성들 중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뒤 백인이라고 속여서 백인 중산층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패싱>의 주인공 중 한 명이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 여성은 끝내 ‘패싱’에 성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유전의 법칙상 본인은 백인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 해도 앞으로 낳을 아이는 까만색 피부를 타고 태어날 수도 있는 문제였죠. 결국 자기 안에 있는 ‘더러운 피 한 방울’이 자기를 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항시적인 불안이 그녀를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만들다가 진짜로 파멸하게 만든 거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더러운 피 한 방울’ 콤플렉스를 떨쳐내는 데 성공해 예수의 조상으로 등극을 하죠. 그에 대해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다윗의 더러운 혈통은 다윗의 왕권에 ‘선명한 이질성’을 부여하여 ‘강력한 선민의식에 기초한 주권을 원했던 유대민족과 왕실에 항구적인 불안감을 조성하는 한편, 새로운 완성을 향한 활력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합니다. 저 말은 곧, 다윗의 열등감의 근원인 혈통이 오히려 다윗으로 하여금 당시 유대민족에 잠재해 있던 ‘강력한 선민’에의 열망을 이끌어내어 유일신 신앙을 강화하고, 그를 기반으로 하여 새롭고도 강력한 통일왕국을 건설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닐지... 암튼 그래서일까, 프랑스 내의 이방여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도 자신이 낳은 외아들의 이름을 다비드라고 지었다고 하는군요.^^

그런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정신분석의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대로 실제 정신분석 상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역사>에도 그 경험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요.  그녀는 맨 위에서 언급한 텍스트들을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분석하면서 거기에 자신이 직접 상담했던 환자들의 사례들을 병치시키죠. 그 과정에서 신학과 철학, 문학, 예술이론 등을 종횡무진하구요. 그러면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천착해갑니다.  

그런데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읽는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의 역사>를 읽는다는 건 사랑의 본질에 대한 명료한 대답을 얻는 행위가 아닙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읽는다는 건 열정으로 변한 그녀의 말들과 대면한다는 것이고, 결국 그것에 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취하는 과정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사(psuedo) 체험하게 되는 거죠. 제 경험으로는 그래요. 하여 <사랑의 역사>도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었지만 (다른 책들은 더더욱...), 그 말들에 취하게 되고, 그 도취 속에서 ‘사랑의 본질이 이런 것이구나...’ 체험하게 된달까? 책을 다 읽든 다 읽지 않든 간에 말이죠.--;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번역이 그다지 썩 매끄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책이 일찍 절판됐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저께야 안 사실인데 <사랑의 역사>가 작년에 다시 발간이 됐더라구요. 번역자를 바꾼 채로. 하지만 문제는 그 번역자 역시 별로라는 것.--; 아, 정말 공개적으로 이런 말 하려니까 참 거시기하네요. 김인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번역출간된 크리스테바의 책 대부분을 번역했는데요, 그것들을 읽으면서 느낀 소회는 크리스테바가 한국에 와서 참 고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_-;; 재출간된 <사랑의 역사>를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잠깐 맛을 보니 역시나... 랄까요? 김영 교수가 번역한 구 번역본도 매끄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면서도 크리스테바 문장 특유의 읽는 이를 도취시키는 어떤 맛은 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더랬습니다. 그에 비해 새 번역본은 깔끔하려 애는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영애도 아니고 전지현도 아닌 꼴이랄까. (물론 서문 일부만 읽은 걸로 판단한 겁니다. 그리고 워낙에 그 번역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구요...)

아쉬워요. 오히려 <여성과 성스러움>을 번역한 임미경 씨가 번역을 잘 했던데, 그 분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아쉬움 때문에 횡설수설해봤습니다. (근데 몇 년 전에는 참 ‘도취되면서’ 읽었던 문장들이 이번에 다시 뒤적이면서 보니까 그때만큼 흥분시키지 못하네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아님 그 문장들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일까요???)
IP : 218.235.xxx.134
2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프리댄서
    '09.9.4 7:14 AM (218.235.xxx.134)

    마땅한 제목을 붙이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새로 출간된 <사랑의 역사>에서는 원음주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저자 이름이 '줄리아 크리스테바'에서 '쥘리아 크리스테바'로 바뀌었더군요....

  • 2. 우리때의
    '09.9.4 7:25 AM (114.207.xxx.169)

    크리스떼빠...기억나네요. 올만에 들어보는..ㅎㅎㅎ
    시대가 바뀌니 이름도 트렌드 따라 바뀌나보죠? ^^

  • 3. 프리댄서
    '09.9.4 7:36 AM (218.235.xxx.134)

    '윗님 때'^^는 크리스떼빠라고 했었군요. (쓰레빠가 생각난다는..ㅎㅎ)
    그러게요, 외래어 표기법이 현지음에 최대한 가까운 형태로 표기하자는 '원음주의' 원칙을 채택하면서
    요상해진 게 많아요. 얼마 전 어떤 책에에는 말콤X를 맬컴X라고 표기한 것도 봤답니다.--;
    (영어는 미국식 발음이 기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름을 쥘리아로 바꿨으면 성도 끄리스떼바??? 뭐 이렇게 바꿔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근데 좀전에 게시판을 둘러보는데, 저 뒤에 있는 전공이 뭐냐는 글 넘 재밌네요.
    왜 이렇게들 웃기시는지. ㅋㅋㅋ 센스가 다들 넘치세요, 정말.^^

  • 4. 감사
    '09.9.4 7:37 AM (125.177.xxx.59)

    댄서님의 팬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당장 읽어보겠습니다.
    지난번에 추천해주신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못읽어봤지만 대신 <대단한 책>을 읽고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지요. <프라하...>도 읽을 예정이구요.

    글을 정말 잘쓰십니다.
    감탄감탄^^

  • 5. 프리댄서
    '09.9.4 7:56 AM (218.235.xxx.134)

    윗님, 전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근데 <사랑의 역사>는 마찬가지로 재미가 있기는 있지만, 두껍고(<대단한 책>만큼..)
    <프라하의 소녀시대>보다는 더 딱딱할 수가 있어서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책에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서 책을 권하는 게 참 조심스럽더라구요.--;)
    <여성과 성스러움>도 저는 정말정말 재밌게 읽었는데요, '내친 김에' <여성과 성스러움>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모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전 저 내용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크리스테바의 저 문장들은 참 좋아요.

    ..... 고작해야 아홉 달 전에 그녀가 한 남성의 연인으로서 들고 있었던 에이스 카드, 즉 유혹, 애정, 충동, 욕망 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연되고, 목표를 위해 억제됩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억제로 이해하기보다는 기다림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모성애의 평온함은 차연된 에로스, 기다림 상태에 있는 욕망이지요. 뒤로 미루면서, 그리고 기다리면서, 이 차연된 에로스는 삶, 프시케, 언어의 시간을 열어놓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와 맺는 이 관계의 시작점에서 기적 같은 연금술이 행해집니다. 즉 아버지(혹은 어떤 관계, 직업, 보수 등)라는 에로스적 만족의 ‘대상’은 서서히, 사랑받는, 단지 사랑받기만 하는 ‘타자’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자애로운 사랑이 에로스적 사랑의 자리에 대신 들어앉습니다. 만족의 ‘대상’이 - 보살피고 발전시켜야 할 - ‘타자’로 변모하는 것이지요. 보살핌, 양육, 계발, 인간 경험에서 전면적이면서도 단순하게 타자의 출현에 직면하는 상황들은 모성의 경험을 빼고 나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나름의 방식으로, 또한 덜 직접적으로 동일한 연금술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즉 모성의 경험에 스스로를 동화시켜야만 하지요. 그 스스로가 어머니,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여기에 자신의 고유한, 필요불가결하고 근본적인 거리를 덧붙여야 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사에서 우리 여성과 남성은―에로티시즘을 자애를 통해 뒤로 미루어놓고, '대상'을 '또 다른 나'로 바꾸어놓는―이러한 모성의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타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또한 여전히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관능적 혹은 직업적 ‘행위’를 가진 한 사람의 여자이며, 이러한 어머니와 여자 사이에서 빚어지는 존재의 긴장은 그녀가 자신의 아이와 맺는 평정한 관계 속에 끊임없이 끼어듭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이와 맺는 관계는 격렬한 갈등으로 달아오른, 세상의 모든 불협화음이 실려 둔중해진 관계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다행한 일입니다. 모성애 속에 이처럼 뜨겁고 역동적이고 남근적인 부분이 없다면, 어머니와 아이로 하여금 혼자 힘으로 서고, 스스로를 넘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게 해줄 약동성이 어떻게 생겨나겠습니까? 그 약동은 언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고, 자신의 뿌리를 끊는 것이고, 세상에 스스로 서는 것입니다.....

  • 6. 프리댄서
    '09.9.4 7:59 AM (218.235.xxx.134)

    <여성과 성스러움>은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카트린 클레망(<테오의 여행> 저자)가 '여성과 성스러움'을 주제로 주고받은 서신들을 묶은 책인데요, 크리스테바를 옮겼으니 이번엔 클레망도 함 옮겨볼까 합니다. 클레망이 '권력을 잡은 여성들' 중 에비타에 대한 논평하는 부분. '육영수와 박근혜'가 연상되기도 하는 내용이에요. 저기서 '미친 사랑의 축성'과 같은 표현은 크리스테바가 그 전에 보낸 서신에서 사용했던 표현이죠.

    ...에바 두아르테는 페론을 만나기 전 이미 반쯤 매춘에 가까운 생활을 했습니다. 에바와 페론 장군을 이어준 것은 열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에 대한 합의였습니다. 즉 페론은 권력이라는 성배를, 에바는 민중이라는 성배를 찾아나섰던 것이지요. 페론과 결혼한 에바 두아르테는 라 세로나(la Serona), 즉 라 담므(la Dame)가 되었습니다. 퍼스트 레이디가 아니라 담므가 된 것입니다. ‘세컨드’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지요. 에바의 재능은 선전에 있었습니다. 그 선전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즉 페론은 민중의 구원자이다. 가난한 여인과 결혼하여 그녀를 구원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에비타는 민중이다, 라는 것이지요. 구원자-페론이 민중-에비타에게 부여해준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보석, 모피, 화장 등 온갖 수단의 동원되었습니다. 에바 페론의 경우는 사회적 상승의 단순한 상징보다 한층 더 멀리까지 나갔습니다. 그녀는 아르헨티나 민중의 부인으로서 민중의 차원에서 궁정풍 연애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황홀경이 지속되는 동안 페론은 봉건군주로서 민주주의를 짓밟았습니다.

    곧 그녀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성녀 에비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민중들에게 사회 변혁의 이미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그들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지요. 그녀가 죽었을 때 수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조문하기 위해 노동자 회관에 안치된 그녀의 관 앞에 줄을 섰습니다. 나는 당시 어렸었는데, 민중들이 그녀의 죽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보고 감동해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것과 동일한 장면을 공산당 지지자들이 위마니테 홀에서 밤새 엘자 트리올레트(루이 아라공의 아내로,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던 여인. 1970년에 사망)의 유해를 지킬 때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시인의 연인의 시신 앞에 줄지어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프랑스식으로 치러진 그녀의 장례미사를 가득 채웠던 것은 가식적이면서 또한 민중적인 이 미친 사랑의 축성(祝聖)이었던 것입니다.

  • 7. 하늘을 날자
    '09.9.4 8:47 AM (121.65.xxx.253)

    좋은 글, 좋은 댓글 늘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고 싶네요. <사랑의 역사>. 제가 요즘 좀 바빠져서 도통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ㅠ.ㅠ

  • 8. 가로수
    '09.9.4 9:40 AM (221.148.xxx.139)

    반가와요, 프리댄서님
    다시 지적이고 흥미로운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쁘네요
    쉰을 꼴까닥 넘어서면서 사는게 참 허망하여 하루에 두시간쯤 도서관에 앉은 기분으로
    책을 정독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이지요
    일단 사서 쌓아놓을까 싶은데 언제쯤 다 읽어질런지요..

  • 9. ^^
    '09.9.4 9:49 AM (222.239.xxx.45)

    /프라하의 소녀시대/ 덕분에 잘 읽었답니다. 고종석씨를 좋아하기도 하구요.^^a(남자분인데도 문체가 여자와 말이 참 잘 통할 것 같은 친구 같은 느낌;) 주제가 독특하고 너무 가볍게도, 무겁게도 이끌어 나가지 않아 중심을 잘 잡았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재밌었구요.ㅋㅋ
    좋은 글 고맙습니다~

  • 10. 하늘을 날자
    '09.9.4 9:49 AM (121.65.xxx.253)

    아참. 그리고 심산 선생님(그 분의 시나리오 작법서를 재밌게 읽었고 배운 점이 많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은 재밌는 분이더군요. 그 분의 시나리오 작법서는 재밌게 읽긴 했는데, 독자들(내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을 깔보는 듯한 좀 고압적인 자세로 쓰여져 있어서 약간 불편하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심산스쿨이란 사이트에 가보니 그 분의 시집 <식민지 밤노래>의 시 몇 편이 실려있더군요.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기형도 시인과의 인연을 써놓은 글을 읽고부터는 그 분이 좋아졌습니다. 왠지 너무 마음 아프기도 했고요. 심산 선생님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산스쿨 시나리오반에 등록해서 좀더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법을 배우고, 글 쓰는 데에만 매진하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아주 조금 들더라고요. 제가 광주에 있고, 도통 여유가 없어서 애시당초 불가능한 상상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11. ^^
    '09.9.4 9:51 AM (222.239.xxx.45)

    아 그리고 번역 문제...
    학교 다닐 때 너무 짜증이 나서 원서로 읽어 보려고 했던 책들이 여러 권..
    그러나 야망이 너무 컸던 거였어요.ㅎㅎㅎㅎ 깨갱~
    하지만 아직도 미련이 버려지지가 않네요. 흑.

  • 12. 잘읽었습니다~
    '09.9.4 10:04 AM (61.250.xxx.124)

    지난 4월에 [테오의 여행]읽었는데 소개 보니 반갑습니다~
    저도? 섣부른 진화무신론자라서 프랑스의 [나는 걷는다]등 종교를 지나온 ?문화에 마음이 기웁니다..
    소개해 주신 [프라하의 소녀시대] 잘 보았고, 요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도 읽고 있습니다...
    급 동구보스니아 지도에 친근감이 생겨 오랫동안 알던 곳 같이 느껴지구요ㅎㅎ

    요즘 저는 [과학으로 생각한다]는 반조리 식품을 먹고 있는데ㅎㅎ 댄서님도 시간 되시면 한번 보시면 어떨까합니다..
    저는 도킨스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빅뱅],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엘레강트 유니버스], [청소년 과학사]등의 과학 베스트셀러를 즐겨 읽었는데...
    이 책은 그런 책들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하고
    물리학을 전공한 우리나라 과학철학자들이 씹어?준 요리면서도 철학이 좀 심도 있어요...
    사실 저는 비트겐슈타인이나, 비엔나모임, 파이어아벤트, 라카로슈는 읽어도 잘 모르겠기는 합니다...만...

    제가 제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이 사실은 저들,
    사상이나 과학하는 이들이 뚫어 놓은 길을 보고 있는거네...싶었어요...ㅎㅎ
    우리가 아는 인문의 조류에 과학의 영향까지 말입니다...

  • 13. faye
    '09.9.4 12:28 PM (209.240.xxx.178)

    유일신 사상이 나오는 것은 중앙집권하고 관련이 되죠.
    부족이 통일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잡신들을 정리하고 하나로 만듭니다. 신이 많이 있으면 통제하기가 힘드니까...

    서양은 그래서 유일신으로 갔고, 동양은 아예 신을 없애 버리는 쪽으로 가죠.

    근데, 잡신의 반발이 만만찮죠. 결국 서양은 유일신으로 못가고, 세개의 신으로 갑니다.
    여호와, 예수, 성모 -> 통일에 실패, 그러다가 종교개혁때 신 하나를 없애는데 성공합니다.
    (기독교에서 성모의 신성화 삭제) 그래서 현재는 정확히 말하면 2신체제입니다. (여호와, 예수)

    반면, 동양은 전체적으로는 신을 없애는데 성공, 그러나 수많은 잡신들 등장...
    그나마 가장 강력하게 신을 없애는데 성공한 나라가 바로 전 인류역사에 유일하게 '조선'이라는 나라입니다. 정치가 '종교'를 탄압한 유일한 나라......
    (보통, A종교를 등에 없은 정치가 B종교를 탄압)

    '피'를 기반으로 하는 선민사상 - 결국 신분제 혹은 봉건제 사회 - 은 전세계 역사에 걸쳐서 나타나는 사상입니다. 이스라엘만 그런게 아니죠. 특히 침략으로 인해 지배, 피지배구도가 된 나라는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로마때문에 기독교가 대박을 맞아서 우리가 이스라엘의 다윗이라는 왕의 얘기도 알고 그러지만, 삼국의 가야보다도 조그마한 나라의 통일이야기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우습지요. 유럽학자들을 보면 자신의 역사에 대한 얘기가 전무합니다. 유태인은 자신의 조상도 아니고, 로마인도 자신들의 조상이 아닌데도 말이죠.

  • 14. ^^
    '09.9.4 12:44 PM (121.165.xxx.109)

    너무 재미있네요,서평이요...책 주문 들어갑니다..
    근데 모성을 소개하는 부분에선 눈물이 납니다. 제가 아이를 못 낳거든요.. 제 가슴에 항상 아름답고 신성한 이름 모성,,아홉 달..아픔이지만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지극히 상상 할 수 있는것이어서 늘 가슴을 벅차게 하네요.. 사랑의 역사 책보다도 댄스님 서평에서 충분히 다 읽은 듯한 느낌 ^^:: .. 자주 올려주세요,,책 이야기..신화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 15. 프리댄서
    '09.9.6 7:03 AM (218.235.xxx.134)

    가로수님. 저도 반갑습니다.^^
    아, 쉰을 넘어서면 사는 게 허망해지나요?ㅠㅠ 언니들이 잘 버텨주셔야 뒤따르는 이들이 그나마 힘을 낼 텐데 말이죠.^^ 아웅. 그래도 이젠 강남에 볼 일이 있어서 한 번씩 들르게 되면, 아 여기에 가로수님 같은 분들도 계시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구요, 그 중에서도 표 안 나게, 정말로 소리 없이 우아하신 분들을 뵙게 되면 가로수님이 연상되곤 한답니다. 그럼 강남이 좀 친근하게 보이기도 하구요.ㅋㅋ 제 상상 속에서지만, 가을날 책을 읽고 계시는 가로수님 모습은 너무 근사하세요. 하여 도서관에서 눈 높은(?) 청년들이 대쉬해오면 어떡하나, 하, 제가 다 마음이 졸여지네요.^^;;;;;;;

    ^^님. 제가 좋게 읽은 책들을 누군가가 또 좋게 읽었다면, 제가 그 책을 쓴 주인공도 아니건만 참 기분이 좋아져요.^^ <대단한 책>에 ‘내 몸으로 암 치료법 책들을 검증한다’는 파트가 있어요. 말 그대로 난소암에 걸린 요네하라 마리가 시중에 나와 있는 암 치료법 책들의 조언에 따라 치료한 뒤 그 결과를 기술한 건데, 그 중에는 일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방법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체로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죠. 그래서 이 방법은 나와 안 맞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에겐 실패다...는 서술이 나오다가 그와 관련된 내용이 전화가 끊기듯 뚝, 하고 끊깁니다. 예, 요네하라 마리가 56세를 일기로 결국 죽은 거예요..... <대단한 책> 저작권자도 여동생 이름으로 되어 있더군요. (일본은 남편 성을 따르니까, 성은 남편 성으로 되어 있고 이름은 유리) 그 책 발문은 제부가 썼구요. (여동생 남편이 소설가이자 극작가...) 옛날엔 56세라면 멀고도 먼 나이였지만 이제는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일까요? 그냥 마음이 싸했었어요. 조금 더 사셔도 좋았으련만... 암튼 2009년 제가 알게 된 작가들 중 최대 수확은 요네하라 마리가 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고종석에게 감사를.^^

    하늘을 날자님. 맞아요. 심산이 원래 저렇게 재밌는 사람이에요. (저는 친구들과 기형도를 그냥 기형도라고 불렀듯이 심산도 심산, 심산... 하고 불렀으니 걍 심산이라고 할게요) 그러더니 어느 날 시나리오를 쓴다고 하고, 그것도 <비트>라는 386과는 좀 안 어울린다(?) 싶은 영화 대본을 썼다고 하더라구요. ㅋㅋ 그래도 그 가락들을 벗어버리지 못하네요. 저놈의 386들은.^^ 말씀하신 사이트에 강헌, 노성두 등 문화백수^^들이 강사진으로 포진해있는 거나, 전반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살짝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군요. 근데 드라마 <식객> 대본도 심산이 썼구나... 새롭게 안 사실입니다.^^ 음.. 근데 거기에 온라인 강좌는 없나 보죠? 아마도 지금 아기들한테 제일 많이 손이 가는 시기라서, 즉 개인 시간을 빼기가 제일 힘든 때라 마음이 더 조급해지실 수도 있을 듯싶어요. 지금처럼 차근차근 하시면 될 것 같은데, 근데 만일 대본을 쓰셨다면 평가를 받아보는 게 도움이 되죠.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전문가가 봐주는 게 좋구요. 소설가나 시인 같은 글쟁이들도 코멘트해줄 수 있지만 시나리오 전문가가 해주는 거랑은 달라요. 그런 면에서 심산이 참 제격이긴 한데... 함 이메일로라도 사정을 말씀하시고 문하생으로 받아달라고 매달려보시는 건 어떠실지.^^ 근데 이렇게 격려해드리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지금 몸담고 계신 업계에 비해 글 쓰는 동네가 워낙에 불안정한 곳이라서...케

  • 16. 프리댄서
    '09.9.6 7:05 AM (218.235.xxx.134)

    ‘잘읽었습니다~’님. 그쵸? 저도 프라하...와 네 이웃.. 읽고 나서 동구권이 급 친근해졌어요. ㅎㅎ 예전엔 월드컵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이름이 나오면 그냥 ‘아유, 복잡시럽기도 해라’하고 말았는데 이젠 막 그 나라를 열성적으로 응원해질 것 같다는.^^ 또한 제발 다시는 그 땅에 그런 비극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오옷, 권장해주신 책들, 감사합니다. <엘리건트 유니버스>나 <시간의 역사> 등등은... 흑, 읽다가 졸았는데(<자본론>은 예전에 읽다가 정말 그거 깔고 엎드려서 잤다죠?-_-)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르네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faye님. 고개 끄덕끄덕하면서 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성서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구약은 정말 유대민족의 역사서에 불과할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다윗이 예수의 조상도 아니죠. 요셉의 조상일 뿐.--; 어쩌면 이런 생각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를 구분짓는, 어떤 결정적인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구요. 그것을 신의 말씀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냥 건조하게, 이 세상 수많은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고대 역사서의 하나로만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하여 예수를 당시 중동 지역에 출몰했던 많은 수행자 중에서 뛰어난 감화력을 발휘했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 이해하는 사람.... 저는 예수가 보여준 면모 중에서 진실로 대단한 건 ‘허영심’인 것 같아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중 하나인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힐은 ‘세상(일체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일체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나을 테지요.”라고 했었죠. 정말 대단한 허영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아픈 세상과 함께 나도 병듦으로써 그 병을 고치겠다는! 그런데 예수는 그보다 한 발 더, 더욱 찬란하게 나가죠. 내가 일체 중생의 죄를 다 짊어지고 떠나겠다, 죄가 없어진 너희들은 모두 동등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서로 미워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싸우지 말고 살아라, 내가 너희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를 사랑하면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다른 점은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런 ‘허영심’의 소유자라는 점을 말하려고 했던 것도 같아요. 그러니 너희들도 허영심을 발휘하면서, 여타의 동물들과 구분되는 그런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라... 암튼 유일신 종교에 대해서는 썩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만, 예수의 저런 면모는 뭐랄까... 눈물겨우면서도 참 멋집니다.

    그리고 참, 이번에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faye님은 저걸 어떻게 해석하실까, 궁금하기도 했답니다.^^

    크크 마지막 댓글님‘^^님). 사실은 어제 새벽에 술을 좀 들이킨-_- 상태에서 님께 댓글을 남겼다가 오늘 눈뜨자마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며 부랴사랴 그걸 지웠어요. 잉잉, 제발 그거 못 보셨어야 할 텐데... (막 오타도 난무하고 그랬음.--;) 우선 말씀하신 문제, 어떤 사정이 있으시겠죠? 그러고 보면 인생이라는 게 우리가 어려서 생각하던 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인생을 어떻게저떻게 헤쳐나가면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죠. 님의 인생에 그 소망하시는 선물 못지않게 근사한 선물들이 따로 있을 것이며, 그 선물들이 뜻하지 않게(!) 도착할 거라 생각해요. (너무 입에 발린 말 같지만 진심이에요. 흑흑^^)

    그런데, 어제 지워버린 댓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프랑스 사회학자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청춘은 단지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청춘’이라는 시기는 확고부동하게 처음부터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층의 필요에 따라 조정된다는 것이죠. 가령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는 쪽이 지배층이 되면 (현재 MB정권처럼요...) 청춘이 끝나는 시기는 사오정에서 삼팔선으로, 그보다 더 아래 이태백으로까지 내려갈 수도 있죠. 그래야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청춘은 끝났다고 통보하고 해고를 쉽게 할 수가 있으니까요. 전쟁이 일어나면 소년병이건 노병이건 할 것 없이 병사들이 많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럼 그때 청춘이 시작되는 나이대는 더 빨라지고 끝나는 시기는 더 느려집니다. 투표권이 부여되는 나이부터가 아니라 열다섯 살, 열세 살... 도 청춘이니까 총을 들고 싸울 수 있으며 오십대 장년층들도 청춘이므로 참전해야 한다고요. (어떤 면에선 참 재수없죠? ‘청춘’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저렇게 건조하게 해석하는 사회학자라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모성도 저는 사회적 인식이 그때그때 달라져왔던 것 같아요. 물론 ‘모성은 신성하다’는 명제가 어느 시대고 간에 관통해왔지만, 돌이켜보면 오늘날처럼 모성을 이토록이나 신성시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도 들어요. 참 아이러니한 게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높아지고 페미니즘이 발호하면서 모성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몸짓들도 강해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모성신화는 더욱 공고해진 것도 같다 이 말이죠. 지나치리만큼 확고해진, 모유수유에 대한 정당화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아동심리 이론들하며... 정말이지 ‘엄마’라는 존재들을 쉽게 죄책감에 빠트리는 요소들이 너무 많은 듯싶어요. 저는 거기에 중산층 여성을 겨냥한 현대 자본주의의 농간도 들어있다고 봅니다.--; 아이를 적게 낳아서 키우는 현대여성, 그 중에서도 양육을 직접 담당하는 중산층 여성들에게 아이를 적게 낳은 만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주입하는 한편 그들이 자잘한 돈을 비교적 쉽사리 쓸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불안심리를 조장하여 이렇게 저렇게 지갑을 열게 만드는 거죠. (켁!) 저는 그냥 모성이 ‘사랑의 본질은 배타성에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같아요. 저희 어머니를 봐도 그렇구요... 저희 엄만 저를 누구보다 사랑해주시지만, 그건 오롯이 저에 한정된 것일 뿐이죠. 모성이 진정으로 그토록 숭고하고 이렇게나 칭송되는 것만큼 위대한 것이라면, 모성신화의 그 끈질긴 뿌리를 떠올려 볼 때,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모성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죠.--; 그런 면에서 모성은 참으로 폭력적인 사랑의 방식이라 할 수도 있겠구요. 물론 인간의 사랑에는 본질적으로 그런 면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그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성이 위대하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그런 모성의 측면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온천장 주인인 노파(아주 큰 권력을 쥐고 있는)가 유일하게 꼼짝 못하는 대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들. 그것도 아주 큰 아들이죠. 거기서는 모성의 비틀린 측면을 희화하느라 그 아들이 물리적인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는데 외양은 아직도 아기인 채로 나옵니다.^^

    이잉... 모성신화는 부풀려진 환상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따라서 님. 아이가 없는 님이나 저나, 그 이유야 어쨌든 간에, 주눅들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느낌,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어떤 감미로움과 풍요로움, 벅차오름 같은 것을 맛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답니다.^^ 그런 현실이 님에게 부디 어느 날 문득 찾아오기를.... 그리고 <사랑의 역사>는 되게 두껍고 제 말과는 달리 재미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시길 바래요!ㅠㅠ

    헥헥, 힘들어라.^^

  • 17. 프리댄서
    '09.9.6 7:14 AM (218.235.xxx.134)

    http://www.youtube.com/watch?v=XcylR_p55y4
    이 동영상은 82를 통해 알게 된 '한 매력적인 유학생 분'^^의 블로그에서 본 것이랍니다.
    넘 좋아서 허락도 없이 막 퍼왔어요.--;
    전 이거 보다가 핑~하고 눈물이 날 뻔했어요.^^
    제가 멋대로 붙인 제목은 '이토록 아름다운 생의 한때'. 일요일 선물로...

  • 18. faye
    '09.9.6 8:46 AM (209.240.xxx.149)

    "중동 지역에 출몰했던 많은 수행자 중에서" 왜 하필 로마의 콘스탄틴은 '예수'를 택했을까 하고, 역으로 생각하면, 님의 생각의 답이 될련지요.

    눈물겨우면서 참 멋진 예수의 모습이란게 결국은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기 가장 좋은 '사상'이라고 하면 좀 심한가요? 로마 기독교에서는 초대기독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기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서 새롭게 탄생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사상이 실제론 예수의 사상하고 많이 달르다고 하네요.

    우리가 아는 유교가 공자의 사상하고 많이 다른것처럼요.

    일본의 정치에 대해서 일본이 우리보다 조금 후발주자라고 생각하면 좀 이해가 쉬울런지요.
    (저도 이런 생각은 최근에야 하게 되었습니다만..)
    아마도 우리의 참여정부 전철을 밟다가 아소보다 더한 넘이 다음 수상이 될 거 같다는...
    (미국 오바마 정부도 비슷할거예요... 그러다가 mb같은넘이 다음 대통령 될거예요...)

  • 19. 프리댄서
    '09.9.6 2:23 PM (218.235.xxx.134)

    예, 저도 기독교에 대해서는 faye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음... 그런데 저 위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크리스테바가 <여성과 성스러움>에서 언급한 내용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아 그 부분을 함 옮겨보겠습니다. 이거 옮기는 동안 크리스테바가 제 안으로 빙의됐으면 좋겠네요.^^ 오늘 외출했다가 양산도 잃어버리고, 길도 잃고 헤매야만 했던 (아우, 덥더라구요) 저의 덜렁댐도 좀 떨쳐내고. 흑.

    (...) 둘째, 예수가 성모와 맺는 이 시원적 관계를 둘러싸고 언어의 양 갈래로 뻗어나간 하나의 대륙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인의 로고스(Logos)를 신의 말(Parole)로 바꿔놓은 것이지요. 이 말씀 안에서 한편으로는 아버질르 향해가는 아들의 여정이 펼쳐질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합리성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견하고, 또한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에 의해 정화됨으로써 현대철학으로의 길을 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실상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습니다. 솔레르스(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이죠)는 이를 ‘성모 마리아의 구멍’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 부득이하게도 도식화해서 설명하자면 -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가 성모 마리아라는 구멍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는 의미지요. 구멍이라는 표현은 수긍이 갑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그 구멍의 속과 둘레를 장식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는 이 말씀의 엄숙한 모험에서 침묵, 음악, 회화 같은 언어 밖 형상들을 한 덩어리로 들러붙게 해주거든요. 성모 마리아는 음악적 회화적 재현을 자극하고,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심미적 경험을 성모 마리아에게 헌납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술의 후원자이면서 동시네 뛰어난 오브제인 셈이지요. 13세기경 아시시의 성 프란키스쿠스와 더불어 성모 마리아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즉 가련하고 온유하며 겸손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이런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인간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일상의 삶과 자연-새, 짐승, 온갖 종류의 육신들-을 찬란하게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이것은 삼라만상에 깃들인 비참 혹은 여성적 마조이즘의 표현을 자유롭게 허락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이로써 일상적 경험, 자연 그대로의 삶이 비잔팀 교회의 교전(敎典) 속에서 거침없이 형상화된 것입니다...... 이후 반종교개혁을 통해서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의 힘을 빌려 한 번 더 재현의 전성기를 엽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크지요.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루벤스, 몬테베르디의 회화들을 생각해보세요.

    개략적으로 이야기해봅시다. 성모 마리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검열(여기서 성모 마리아는 단지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욕망이 제거된 존재지요.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떠난 그 어떤 에로티시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은 예술가로 하여금 오이디푸스적 번민을 면하게 해주고, 또한 이 거부된 기쁨을 예술가 자신이 창조한 다양한 형식으로 재현하여 누릴 수 있게 해줍니다.

    (....) 셋째, 성모 마리아는 어떤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정되는 이 권력은 여성들에게 마음을 안심시키는 거울을 내밀어줍니다. 신의 어머니로서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겪지도 않았고, 오히려 영예로운 영면과 몽소승천을 통해 지상의 삶을 통과하면서 천상과 교회의 군주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아들보다 신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우리가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편집광 증상을 부추깁니다 - 여성들은 누구나 영광을 약속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성모 마리아는 여성들을 우대함으로써 그들은 억압합니다. 그녀는 여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무릎을 꿇어라, 여인들아. 너희는 단지 지나가는 길목에 불과하다. 아이들과 아픈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 섹스도 정치도 돌아보지 말아라. 들을 수 있는 귀가 여성으로서의 육체보다 더 값진 것이다. 이 말을 명심해라.”

    ---------------
    이에 대해 카트린 클레망은 크리스테바가 성모 마리아를 너무 ‘좋게’만 평가한다고 비난합니다.^^ 기독교적 무신론자인 크리스테바에 비해 스스로를 유대교적 무신론자라 칭하는 클레망이 뭐랄까... 좀더 전투적이고 마르크시즘에 더 가깝거든요. (<여성과 성스러움>은 두 명의 대단한 아지매들이 서로 내가 더 잘났소, 하고 겨루는 듯한 측면도 있는데, 저 두 여제가 보여주는 현란한 대위법은, 저로서는 넋을 잃고 구경할 만한 한 장관이기도 했습니다) 암튼 크리스테바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흠모’의 정은 깊어서, <사랑의 역사>에서는 아예 한 챕터를 할애해 성모 마리아적 사랑에 대해 논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 챕터에서 성모의 이야기와 본인의 출산 경험을 병치시키는 아주 절묘한 서술기법을 발휘하고 있고요. 크리스테바가 그처럼 성모 마리아에 천착하게 된 데에는 그녀가 정교회 문화권(불가리아)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저는 추측해봅니다.

  • 20. 프리댄서
    '09.9.6 2:26 PM (218.235.xxx.134)

    또한 <여성과 성스러움>에는 크리스테바가 룻과 <아가>에 대해 논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그거 읽고 나서 원문을 능가하는 해석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었었죠. 크리스테바의 <아가> 해석을 접한 뒤에 <아가>를 여러 번역본별로 다 읽어봤는데 솔직히 저 해석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해주지 못하더군요. 저 마지막에 인용된 <아가>의 구절들도, 국내 여러 성서 번역본에 있는 것보다는 임미경 씨가 크리스테바의 불어 문장을 그대로 옮긴 버전이 더 좋아서 한동안 저기에 빠져 살았었어요. 근데 참 요상한 게, 지금 읽으니 그때만큼의 ‘맛’이 안 느껴지네요.--; 암튼 룻과 <아가>에 대해 언급한 대목도 ‘내친 김에’ 함 옮겨 봅니다. (아이고, 팔이야...)

    성서에 나오는 이 여인들 가운데서 내가 좋아한 인물들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고, 이들 모두 경계선에 위치한 인물들이라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요. (참고로, 영국 루틀리지 출판사에서 석학들의 이론을 알기 쉽게 정리한 인문학 입문서 시리즈를 펴냈는데, 그걸 최근에 국내의 앨피라는 출판사에서 하나씩 번역, 출간하고 있습니다. 그 시리즈 아홉 번째에 있는 줄리아 크리스테바 편의 제목이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입니다) 이들은 모압 여인 룻과, <아가>의 여주인공입니다. (...)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보아스는 신혼 초야에 죽고, 룻은 아이를 잉태하여 유대의 역사에 길이 남습니다. 그러나 룻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최근 편지에서 하신 말처럼, 오직 계보만이 중요한 것이지요. 혹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룻은 후계자의 탄생을 통해 구원받았으며, 따라서 여기서 여인은 퇴장했다고 말입니다. 즉 이방에서 온 ‘혈통 운반자로서의 어머니’는 퇴장한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좀더 복잡합니다. 성서의 다른 ‘위대한 어머니들’처럼 룻 역시 아주 긴 수명을 누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후손 솔로몬이 왕좌에 오르는 것까지 보거든요. (....) 카트린 당신은 ‘세례’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을 아버지의 상징적 혈통 속에 끼워넣는 의식들에 대해 분개하지만, 그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룻이 당신보다 더 지혜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매개자로서의 그녀의 역할이 내가 보기에 이방인으로서 유대 사회에 공헌했다는 의미를 뛰어넘는 것 같아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매개자라는 역할이 어머니라는 존재가 지닌 매개적 기능, 이 성스러운 기능의 심오한 의미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생물학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며, 출산에 상징적 선택을 더하는 것입니다. 룻의 이야기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에서 ‘분만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여성이 출산 자체를 행하는 능력과 성서 속 여인들처럼 출산으로 어떤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현실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에서...)

    (....) 내가 강조하는 매자자로서의 역할, 즉 ‘비천한 것’(이방 민족, 실체, 육신)에서 ‘저 높은 것’(야훼, 부계 혈통, 율법의 전수)으로 옮겨가는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은 <아가>의 여주인공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솔로몬의 연인이지만, 그것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 왕입니다. 즉 말하는 사람,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람, 사랑한 사람은 ‘그녀’입니다. 반면 솔로몬 그는 슬쩍 빠져나가고 있지요. (....) <아가>의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자연의 재생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 나타나는 연정의 주된 기조가 사랑하는 여인의 우수라는 점에서(이러한 우수 이면에는 남성의 공격성이 있지요), 이 작품이 인도의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합니다. 솔로몬의 시와 타밀 문학의 교류가 가능했던 것일까요? <아가>와 <기타 고빈다>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는 말일까요?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신 크리슈나와 <아가>의 여주인공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 생각에 <아가>는 명백히 새로운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가>의 여성 화자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며, 존엄한 인물입니다. 매혹적이건 비천하건 간에 어쨌든 우주적인 확산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세계에서 최초로 연애 문학에, 자신의 욕망 - 욕망의 힘, 목적, 난관 -에 이름을 붙인 자율적 주체가 나타난 것이며, 또한 이 주체는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아가>를 알레고리로 읽으면 선택받은 민족(아내)이 하느님에게 바치는 노래로 보입니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이 작품을 신에 대한 교회의 열정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모 마리아적 사랑의 예고편은 아니지요. 지적할 점은 <아가>의 사랑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 사랑을 기원하는 원이자 주체는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아가>는 성서 가운데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내용 속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다산 기원 의식과 더불어 그리스 극과 서정시의 영향을 흘러들어 세속적인 정조를 노출합니다. 유대의 제사장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AD100년 경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때부터 유보적 결정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노래를 경전 안에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에 빠진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성스러움의 전근대적 변형일까요?

    (...) 솔로몬이 노래하고 있는 것은 성(性)과 신(神), 육체적 열정과 이상의 교차로로서의 사랑입니. 이 시편이 지어진 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우리에게 이 사랑은 특별한 경험으로, 탁월한 성스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아가>에는 유대의 ‘믿음’도 ‘교의’(크레도)도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사랑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체 <아가>의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요? “밤에, 침상에서 나는 내 마음의 연인을 찾으려 했다. 나는 내 연인을 찾으려 했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하였다”(<아가> 3장 1정, 5장 6절). 벌어진 틈, 도약, 사랑의 약동. 이것은 다시 말해 존재와 부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적 세계와 피안 사이의 균열이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동이지요. 관능적인 사랑과 차연된 사랑, 육신과 힘, 정념과 이상, 유대주의에 내포되어 있는 이 모든 긴장이 이 사랑의 경험에 녹아 있습니다. 이 사랑의 경험에서 여자와 남자는 둘 다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띠게 됩니다.

    (....) 사랑에 병든 그러나 전혀 신경이 곤두서 있지 않은, 비극적이지도 비장하지도 않은 이 육체가 보여주는 약동. 투명하고 강렬하고, 분열돼 있으며, 빠르고, 곧으며, 고통받고 희망을 품은 육체. 이것이 여성의 성스러운 사랑의 교차로에 위치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육체입니다.

    (....) 검은 더러움을 건너와 거식증을 떨쳐버린 <아가>의 여주인공은 입 안 가득 먹고 마십니다. 남녀의 분리를 넘어서서, 둘을 잇는 끈, 즉 사랑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사랑에 빠진 여인입니다. “나는 검지만 아름다우니, 예루살렘의 여인들이여, 세다르의 장막 같고, 솔로몬의 휘장 같도다 (....)/ 그가 나를 인도하여 술이 넘치는 잔칫집으로 들어갔으니, 내 위로 펄럭이는 그 집의 깃발은 사랑이었다. 과자로 내 힘을 돋우고 사과로 나를 청량하게 하라. 나는 사랑하여 병이 났기 때문이라,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아가> 1장 5절, 2장 4-6절)

    -----------------
    <사랑의 역사>에는 12세기에 활동한 성 베르나르라는 신학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아가>만 20년인가 30년인가를 연구하고는 <아가서 강론>이라는 책을 펴냈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아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난폭하고, 게걸스럽고, 격렬한 사랑일까!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을 생각하고, 다른 모든 것은 흥미없고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사랑은 모든 서열을 뒤섞고, 관습들을 동요시키며, 어떠한 규칙도 모른다. 안이함, 이성, 수치, 조심, 판단은 황홀 속에 힘을 잃는다!”

    <여성과 성스러움>에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다림선’이라는 것을, 정말 너무나 멋진 비유로 사용한 부분도 있는데, 그건 팔이 아파서...^^

  • 21. 프리댄서
    '09.9.6 2:39 PM (218.235.xxx.134)

    저는 원래 혼자 막 댓글달기를 잘 하니까, 하나 더 써볼게요.--;
    국내에 번역된 카트린 클레망의 책 중에 제가 제일 먼저 읽은 것이 <마르틴과 한나>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사랑'을, 하이데거의 아내와 아렌트의 입장에서 쓴 소설입니다.

    하이데거는 잘 알려졌다시피 촉망받는 철학 교수이자 나치당원이었구요, 35세 때 총명함으로 반짝이는 18세의 제자 아렌트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독일주부'라는 관용적 표현을 몸소 보여주는, 검소하며 정숙하고 강인한,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믿는 아내 엘프리데가 있었죠.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었구요. 그것도 시오니즘을 신봉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투철한.

    <마르틴과 한나>에서는 그런 세 사람 간에 펼쳐지는 사랑과 팽팽한 긴장, 사상적 대립과 허무할 정도의 화해 등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헌데 그 소설을 읽을 때는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막상 뭘 좀 떠올려보려고 하니... 별로 기억에 남은 게 없네요. 하하. 하지만 클레망의 작품으로는 <테오의 여행>과 함께 읽어볼 만한 것 같아서 살짝이 언급해봅니다.

  • 22. faye
    '09.9.6 9:15 PM (209.240.xxx.149)

    얘기가 인도까지 옆길로 쭉 새버렸네요...
    제가 주어들은 얘기를 좀 말하면...

    인도의 힌두교사상 - 온갖 다신주의 - 이 그리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그노시스이고, 그 영지주의가 댄서님이 말했듯 정교회쪽에는 많이 남아있죠.
    인도사상은 어떤분이 볼것도 없다고 하셨어요.
    지구상 가장 전형적인 지배, 피지배 관계에서 지배민족이 피지배 민족에게 강요한 사상들입니다.
    아리안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생각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희생','자기만족','내세' 이 세가지 키로 인도사상을 보면 거의 다 수용될겁니다.

    로마는 비교적 발달해서, 이 다신주의를 없애고, 유일신주의로 갑니다.
    제국의 통치를 위해서요. 유일신 주의로 가는 것은 정치적 통일을 의미하고, 한편으론 지방봉건제, 계급주의, 선민주의, 혈통성을 어느정도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전 책을 보지 못했지만, 저자가 언급한 '사랑'이라는 것은 그노시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최근의 뉴에이지운동이나, 인도열풍 등등 결국은 새로운 것을 찾는게 아니라, 원래 고향을 찾는거랍니다. 로마기독교에 대한 반발로 인도교의 힌두교로 회귀하는 거죠.

    조금 다른 딴지를 하자면...
    위에서 사랑이라고 말한 것, 흔히들 아가페, 에로스, 로고스 혹은 필리아 는 영어식 어법에서 모두 'love'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인데, 그 세가지는 동양적 단어로 '애'라는 단어에 모두 들어가지 않습니다. 서양식은 강력한 신본주의에 입각하여 남녀간의 사랑(에로스)까지도 신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지요. 결국 에로스나 아가페나 별개의 단어 의미임에도 'love'라는 단어로 섞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아가페나 에로스를 같이 엮어서 어떤 연관성이나 역사적 흐름을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섞어서 혼동한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본문글 처음에 실린 남녀간의 불타는 애틋한 사랑이 왜 마리아의 로고스나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하고 연결되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둘은 엄연히 별개인데요...

    한창때 누군가를 만나서 열병과도 같은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신에 대한 감정하고 같을수 있는건지......

  • 23. faye
    '09.9.6 9:47 PM (209.240.xxx.149)

    '아리안'족에 대해 부연하면...
    인도를 점령한 아리안족이 서쪽으로 이동해서 중동지역까지 확장합니다.
    (그 후예들이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고, 현재 이란지역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과 타밀문화는 당연히 접촉이 있을수 밖에요.
    예수역시 그런 인도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구요.
    종교쪽으로는 그노시스들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로마는 철저하게 그들을 배격합니다.
    베드로를 직계로 교황체제를 성립하는데 (교황은 베드로의 직계제자라고 뻥침), 그외의 모든 다른 예수와 관련된 것을 삭제합니다. 대표적인게 막달라 마리아(부인)
    그리고 예수를 신성화 => 교황은 신의 직계제자....

    그노시스는 개인의 깨달음 그런것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실제는 혈통을 중시합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혈통만이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하죠. (현재 이스라엘의 그 후예들에게 직접 들은 예기입니다.) 당연히 그노시스는 예수하고 막달라 마리아하고 자손들을 중요히 했겠죠.

    그러면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죠....

    최근에 기독교가 천주교(로마기독교)에 대한 대비로 기독교(개신교)를 로마이전의 초기 기독교로 천주교를 타락해서 만들어진 로마 기독교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영지주의 운동같은게 생기고, 뉴에이지 그런게 생깁니다.
    다르게 보면 주인 바꾸기인데...

  • 24. 프리댄서
    '09.9.7 12:57 AM (218.235.xxx.134)

    아유, faye님. 정말 댓글 잘 읽었습니다. 크리스테바가 <아가>와 인도 타밀문학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바람에, 그걸 또 제가 올리는 바람에 얘기가 또 인도로까지 뻗어버렸네요. (뭐하시는 분일까, 궁금하지만 사적인 궁금증은 쓰잘데기 없는 것이니만큼 스킵하기로 하구요... ㅋㅋ) 우선 제가 <사랑의 역사>와 <여성과 성스러움>에서 부분부분 발췌하여, 여기에 올렸기 때문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아가페와 에로스, 기타 ‘사랑’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들을 뭉뚱그려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역사>에서 그 각각의 것들을 구분지어서 고찰하고 있는 걸요. 제가 올린 원글 첫머리에서 인용한 대목은, 크리스테바가 <사랑의 역사>를 시작하면서, 일단 자기가 왜 사랑에 대한 주제로 책을 쓰게 됐는지, 그 충동의 근원적 계기는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말들을 열정으로 변화시키고, 그 열정으로 변한 말들은 쉽게 형상화시킬 수가 없다, 오직 그것은 문학을 통해서만 근접하게 형상화될 수 있다, 하여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을 통해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그 본질에 대해 논해보겠다... 뭐 이렇게요. 그걸 제가 젤 앞부분만 뚝, 잘라서 올리는 바람에 혼동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또한 이것도 미리 밝혔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제가 타이핑해서 올린 크리스테바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그녀가 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 그것을 룻이나 성모 마리아, 기타 자기가 상담했던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들에 대해서는 좀 냉소적입니다. 오히려 ‘주장’ 자체만 놓고 보자면 카트린 클레망 쪽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죠. (아웅, 저만 읽은 책을 두고 얘기를 하려니 왠지 모래밭에 빠져서 공회전 하는 차바퀴가 떠오르네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크리스테바에게는 많이 끌려요. 우선 그녀의 문장들, 그녀가 사유를 전개시키는 방식 때문에 저는 아직도 크리스테바에게 콩깍지가 씌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순간에도 말이죠. (룻의 해석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 그 해석을 풀어놓은 문장들은 참 매력적이죠. 적어도 저에게는요...) 그걸 같이 맛보고자 짚이는 대로 올려본 것인데... 뭐 그건 그렇구요.^^

    이거 잘 모르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려니 긴장되네요.^^ 기독교나 인도철학이나, 다 잘 모르는 것들인데. 말씀하신 대로 인도사상의 기본은 ‘지구상 가장 전형적인 지배, 피지배 관계에서 지배민족이 피지배 민족에게 강요한 사상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싶어요. 그것은 어쨌든 윤회를 근간으로 하여 현실의 상황들을 숙명론으로 고착화시켜버렸으니까요. 전에 어떤 책에서 인도에 카니발이 많은 까닭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반항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는 내용을 읽은 게 떠오릅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 속에서 알게 모르게 피지배계급(하층 카스트)의 내부에 쌓여간 분노가 지배계급(상층 카스트)에 대한 저항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으므로, 그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게 주기적으로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다는 거죠. 하루쯤 일상의 궤를 벗어날 수 있는 카니발의 형식으로.

    그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숙명론으로 고착화시킨 주류 사상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바로 불교라고 알고 있구요. 즉, 불교는 윤회사상을 역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현실의 상황이 결코 숙명이 아님을 설파하고 있죠. 업의 결과가 현세의 우리 모습이지만 진리를 탐구하고 그 진리를 깨우쳤을 때 도달하게 되는 지점, 해탈의 가능성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합니다. 다시 말해 현세의 업으로부터는 누구나 초탈할 수 있다고 주창했던 게 바로 불교인 것이죠.

    하지만, 잘은 모르겠지만요, 그냥 제 생각에는 그렇다고 해서 힌두교 자체를 단 한 마디로 폄훼하고 말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걍 단순하게 생각해서, 하나의 문명을 창조하고 깊이 있게 발전시켜온 데에는 그만한 창조성과 깊이가 있기 때문일 테니까요.--;

  • 25. 프리댄서
    '09.9.7 1:07 AM (218.235.xxx.134)

    그리고 예, 뉴 에이지에 대해서도 faye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의 생각이 그노시스파에 가깝다는 점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제가 두 책에서 부분부분 뚝, 떼어내서 올리다 보니 생긴 오해인 것 같구요... 물론 그리스정교회(+러시아정교회)가 로마의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로마가톨릭에 비해 신비주의적 전통이 강한 측면이 있기는 하나, 제가 정교회문화권 운운한 이유는 어쨌든 로마가톨릭이나 정교회나 ‘성모 마리아’를 배격하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성모 마리아’를 중시(?)하는 전통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크리스테바가 성모 마리아에 대해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사랑의 역사>에서도, <여성과 성스러움>에서도 크리스테바는 성모 마리아를 적극적으로, 매우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려 애씁니다. 단지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혈통 운반자’이기 때문에 숭상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교회 속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했으며, 그건 현대 여성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고, 또한 그녀가 있었기에 가톨릭신앙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이죠.

    저는 그녀의 그런 주장을 걍 제 식대로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체험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인데요, 제가 자란 동네에는 성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읍에서 유일하게 있던 성당이었죠. 저희 동네 애들을 어렸을 때 다 그 성당 마당에서 뛰어놀곤 했었어요. 나무에도 올라가고 겨울에 눈이 쌓였을 땐 거기서 눈싸움도 하고... (그런데도 쫓아내지도, 단 한 번도 성당에 나오라고 꼬드기지도 않았던 수녀님들께 경의를!) 신부님은 파란 눈동자를 지닌 외국인이었구요.^^ 암튼 그때 성당 마당에서 막 뛰어놀다가 한 번씩 고개를 돌려보면 문득 거기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습니다. 항상. 참 이상하게도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럼 우린, 참 생각이 없는 어린아이들이었는데 불구하고 성모상 앞으로 가서 가만히 서있기도 하고, 뭔가를 빌기도 했었어요. 그때의 그 포근하고 뭔가 뭉클했던 기억. 저는 그걸 죄‘와’ 벌. 즉, 죄하고 벌 사이에 있는 ‘와’라는 완충지대라고 이해합니다.

    언젠가 TV채널을 돌리다 EBS에서 해주는 <세계의 명화>에서 잉마르 베리만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처녀의 샘>이라고, 그걸 한 중간부터 본 것 같은데요, 그때 그걸 보며 죄와 벌의 선명한 대비, 죄에서 벌로의 직하를 느꼈습니다.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비에 있는 점성(粘性) 때문이죠. 그런데 거기에는 점성 따위란 없어서 빗물이 유리창을 타지도 않고 곧바로 바닥에 떨어지고 만달까요?

    하지만 성모 마리아를 수긍하는 쪽에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죄가 벌로 떨어져내릴 때 성모 마리아가 빗물에 깃들어있는 점성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하는 듯합니다. 한번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흐느낄 기회, 죄‘와’ 벌, 그 ‘와’에서 한번은 돌이킬 수도 있는 기회. 바로 ‘성모 마리아의 구멍’이라고 일컬어질 수도 있는 것. ‘말씀의 엄숙한 여정’에서 ‘언어 밖 형상들을 한 덩어리로 달라붙게 만드는’ 어떤 힘.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성모의 그런 지위는 수동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쟁취한 것이라고까지 해석하고 있구요. (이 부분을 더 정확히 전달하려면 <사랑의 역사>에서 성모 관련 챕터를 다시 뒤적여봐야 할 것 같군요...)

    바로 그 지점에서 크리스테바는 ‘말들을 열정으로 변화시키는 사랑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 같구요, 거기에 강하게 감응하는 크리스테바의 문장들 역시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이를(어쩌면 저 같은 독자만) 도취시키는 매력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크리스테바에 끌리는 데에는 제가 이십대 후반에 도스토예프스키에 푸욱~ 빠졌던 탓도 있는 듯하네요.^^ 그때는 정말이지 더 이상 도스토예프스키는 읽지 않겠어, 라고 다짐할 정도로 빠져 있었으니가요.--; 죄에서 벌로 직하하기 전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인간의 어두운 미로 속을 굽이굽이 돌고 도는 그 여정. 마침 크리스테바도 <여성과 성스러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나중에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내 깨달음을 요약해주는 글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완전히 소멸될 것이며 부활은 없으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는 당당하고 평화롭게, 마치 신처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만약 이 구절이 악마가 이반 카라마조프에게 한 말이 아니라, 어떤 명석한 정신의 소유자가 한 말이었더라면, 즉 이 구절에 담긴 당당함이라는 단어를 ‘신’과 관련해 이해할 필요가 없다면, 나는 이것을 내 묘비명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암튼 faye님. 좋은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26. 프리댄서
    '09.9.7 11:03 AM (218.235.xxx.134)

    저는 내일부터 뒤늦은 휴가를 떠납니다. 다들(몇 분이나 보실지 모르겠지만^^;;) 좋은 하루 되시고 풍요로운 9월이 되시길.

    그리고 이건 엉뚱한 말이지만, 이 댓글을 보신다면 faye님. 제가 Faye Dunaway라는 여배우를 좋아해요. 지적으로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퇴폐적이고 나른한, 그 묘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어서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도 그렇지만, <차이나타운>에서도 정말 잘 하더라구요.^^ faye님 닉네임을 뵐 때마다 한 번쯤 말씀드리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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