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文字인가? 우리 모두 속았다-孫元日
孫元日
『글자의 혁명』(최현배, 1946)이라는 ‘한글전용’이 실행된 지 60년이 지났다. 이 革命은 정부가 줄곧 성공했다고 하며 밀어붙였고 드디어 國語基本法이라는 무서운 法을 만들어 한국어를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事態에 이르게 했다. 성공했다고 하면서 이 법을 왜 만들었는지 통 이해할 수 없다. 작은 실패에서 본격적 실패를 하기로 한 것 같아 國防 만큼이나 不安하다. 도대체 "글자의 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 모두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1. 文字가 교육할 대상이 아니라는 國語敎育
문자혁명의 열쇠는 國語敎育에 달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국어교육의 대상에서 文字가 빠져 있다. 농담 같은 사실이다. 국어교과서가 그렇고 국어학자의 槪論書가 거의 다 그렇다. “언어는 음성으로 된 기호이다.”라는 정의가 언어의 大門을 꽉 막고 있다. 이 定義가 자연과학의 公理와 같이 움직일 수 없는 眞理라는 것이다.
이렇게 문자의 존재를 완전히 否認해놓은 다음에 “다만 문자가 언어를 직접 표기하지 않고 음성을 표기할 때는 기호로서 인정할 수 있다.”, 즉 “문자는 音聲의 그림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漢字가 두 단계에서, 첫 단계에서는 음성만이 언어의 기호라는 데서 빠지고, 둘째 단계에서는 음성의 그림자일 뿐이라 해서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한글은 표음문자라 2단계 정의에서는 포함되었다.
자연스러운 논리 흐름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현실에 맞지 않는다. 틀린 것이다. 뿌리부터 말하면 우선 言語의 本質에 대한 합의가 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偏向된 정의다. 언어에 대한 정의는 이 밖에도 수많이 나와 있는데 위의 것은 서구의 主流라고 할 수 있는 構造主義學派의 것이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글전용을 정당화하는데 결정적 몫을 하였다. 뒤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은 이유로 이 정의는 언어현실에 反하며 여러 모로 矛盾된 것이며 漢字사용 환경에서는 수용될 수가 없다. 다음의 국내에서 사용 중인 정의 넷을 보자.
#1. [고등문법. 1. 언어의 본질.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수단으로 말이나, 글, 곧 언어가 있는데, 이 역시 기호 중의 하나이다. 모든 기호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고 그 것을 실어 나르는 '형식'이 있다. 언어의 경우, 내용은 '의미'이며 형식은 '말소리'이다.](p.12)
#2. [言語에 대한 정의는 '恣意的인 音聲記號의 체계로서 사회 구성원 간의 意思疏通을 위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국어를 위한 언어학, 맨 앞줄)
#3. [1. 언어와 인간. 문자는 음성언어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이를 통해 음성 언어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극복됨으로써 인간은 지식을 전수하고 이를 축적할 수 있다. 문자 언어는 음성 언어를 발전시켜 주기도 한다. 문자의 발달단계: 그림문자→표의문자→음절문자→음운문자](고교문법자습서, 고영근, 남기심,p.2)
#4. [언어는 자의적인 음성 기호의 체계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언어학의 기본 公理인데 이 원리를 도외시한 주장, 직관이나 관습적 사고의 틀에 얽매인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漢字敎育과 漢字政策에 대한 국제회의, 남기심)
#1, 문자를 완전히 무시했다. 말이나 글이 곧 언어라고 한 것도 틀렸고, 언어의 형식이라면서 '말소리'만을 언어라고 했다. 말과 글이 의미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은 있을 수 없다.
#2, 문자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3, 문자는 음성언어를 기록하는 수단으로만 보았다. 문자의 발전 단계는 틀렸다. 한글의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한 억지다.
#4, "언어는 恣意的인 음성의 체계이다", "특정한 의미와 특정한 소리가 연결되어야 할 필연성이 없다"는 것인데 언어는 萬有引力과 같은 법칙, 자연과학의 公理가 적용될 수 없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2. 文字에 대한 錯覺의 뿌리
이상과 같은 가르침이 이 땅에 꽉 차 있다. 그러니 거의 모든 국민이 교육을 통하여 "문자의 역할을 무시하고, 문자가 꼭 필요하다면 音聲을 옮겨 적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언어의 세계적 현상에 반대되고 잘못된 원칙이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착각의 뿌리가 있다.
첫째, 서구사회는 26자의 알파벳 중심사회로서 문자를 무시해도 될 것이다. 歷史言語學과 比較言語學의 오랜 정통과 기독교의 言語觀에다가 東아시아의 漢字사용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착각이다. 다른 言語觀도 많이 있는데 하필이면 이 착각을 한글존중 정신에 무조건 接木시킨 "교육"은 옳지 않다. 착각이다.
둘째, 音聲ㆍ文字ㆍ音韻ㆍ字體ㆍ統語ㆍ文法 등 부분에 대한 연구에 비하여 原論에 대한 연구가 통 이루어져 있지 못한 것은 연구해야 할 本山이 腦이기 때문이다. "한글전용을 민족의 이상 실현"이라는 목표 역시 확고한 과학적 이론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착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셋째, 압도적으로 많고 한국어 문장의 自立語(內容語) 역할의 거의 다를 맡고 있는 漢字語를 漢字로 배우지 않고도 한글로 표현할 수 있고 또 漢字를 배우지 못한 수신자가 그 의미를 다 안다는 생각은 희망이요 착각이다. 한글전용을 主唱한 분들은 중국과 일본 또는 월남과 터키 등에서의 진행사항을 바로 보지 않고 我田引水格으로 해석, 전파하였다.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에 의하여 교육부는 지금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한 漢文敎育 병행]을 기본방침으로 세워 용감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설명(국어교육과정의 변천, 정준섭, p.254)이다.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한문교육을 병행한다"는 문자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은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이다. 이는 한글전용이라는 민족의 이상 실현과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그리고 국한혼용이라는 일부 현실을 고려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철저히 우롱한 소리다. 한글전용을 언어에는 영향을 안 주거나 주더라도 아주 미미하다는 "文字敎育政策"이라고 보고 있다. 漢文을 조금 슬쩍 얹어서 한글과 漢字와의 混用이라고 포장하고 "最善의 방책"이라고 주장한다. 방대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할, 착각을 넘은 속임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한글전용이 어째서 "민족의 理想 실현"인가? 알파벳 문자 사용국가가 많으나 그들의 평균 지식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 도대체 문자에 따라 민족의 盛衰가 결정된다는 생각 자체가 荒唐하다. 또 한글전용이 어떻게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이 되는가? "國漢混用이라는 일부 현실을 고려한 정책" 등 설명은 모두 사실과 반대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억지다.
② 한글전용이 그렇게도 좋은 일이라면 왜 강제로 하는가? 强行을 60년이나 했으면 이제 당연히 定着되었어야 하는데 왜 국어기본법을 만들어 한국어를 완벽하게 침몰시키려 하는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③ 한글은 분명히 訓民正音의 다른 이름이고 글자(文字)의 이름이지 글(文)의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 한글이 "글자"이기도 하고 "글"이기도 하며 "언어"이기도 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속임수다. 訓民正音은 訓(가르칠 훈), 民(백성 민), 正(바를 정), 音(소리 음)이라는 네 글자로 된 熟語인데 한글의 '한'은 고유어로서 크다, 많다는 뜻이고 '글'은 文이라는 뜻이다. 의미가 전혀 다르다.
④ "한글과 고유어만 쓰자"는 목표는 실현될 수 없는 목표다. 한글은 漢字를 대신할 수 없으며, 한국어의 24%인 固有語로는 한국어의 역할을 다 할 수 없다.
3. 文字의 性格
현대의 文字는 表意文字, 表語文字, 表音文字의 셋 뿐인데 문자를 사용하는 目的에 비추어 보면 表音文字가 우리의 이상이 될 수 없다. 表意文字는 하나의 형태가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아라비아 숫자 하나 뿐이다. 이 숫자는 거의 모든 언어에서 이용하고 있는데 읽는 소리는 다 다르나 의미하는 개념은 다 같기 때문에 表意文字다. ‘1’을 제외하고는 象形性을 느끼지 못한다.
表語文字는 漢字 뿐이다. 하나의 형태에 소리와 意味를 함께 나타낸다. 漢字를 表意文字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表意만 하는 것이 아니라 表音도 같이 하는 단어를 적기 때문에 表語文字라고 해야 옳다. 다시 말해 漢字는 音價가 엄밀히 결정되어 있고 하나 하나가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인데 單語문자라고도 한다. 單音節로 읽는다.
表音문자는 나머지 다 이에 속한다. 하나의 형태에 소리만 나타내는 문자다. 音節文字와 音素文字의 둘로 나누어진다. 音節文字는 구체적인 語音을 직접 표기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그대로 음성으로 나타낼 수 있다. 音素文字는 음성의 최소 단위인 音素로 구성된 것이며 다시 子音 알파벳과 母音 알파벳으로 나누어진다.
한글은 音素를 나타내는 字素로서 구성하나 音節문자로서 사용한다. 그 중 대다수, 10,773字가 받침을 가진 閉音節이다. 받침 없는 開音節은 399字다. 일본의 가나는 音節文字이며 전부가 받침이 없는 開音節인데 114字다. 음절문자는 음소문자보다 더 많다고 한다.
文字의 사용목적은 음성을 적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의미를 파악, 전달함"에 있다. 따라서 表語文字가 언어의 사용목적에 가장 적합하다. 본래 중국의 ‘文’은 文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日과 月과 같이 物의 모양과 형태를 나타낸 單體字였다. ‘字’는 日과 月과 같은 단체자를 합친 ‘明’과 같은 合體字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던 ‘文’과 ‘字’를 합쳐서 ‘文字’라고 하게 되었다. 문자 중 ‘文’에 해당하는 것이 약 1할, ‘字’에 해당하는 것이 약 9할이다.
국어교과서가 漢字의 수가 방대하고 얼마 가지 아니하여 없어질 성질의 글자라고 가르치고 있다. 수가 많은 것은 하나의 개념에 하나의 字形을 제공해야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214개의 部首 등 單體字로서 여러 合體字(會意, 形聲)를 만들기 때문에 기본자형의 수를 적당한 수로 제한할 수가 있다. 사전에 약4만 字가 있지만 3분의 2 정도는 필요가 없는 것이며 나머지의 반수도 사용 예가 극히 드문 것이다. 중국의 常用漢字는 常用字 2,500자, 次常用字 1,000자, 합계 3,500자이다. 한글은 음절문자이면서 11,172字나 된다.
분류 표기되는 내용 예
表意문자 =形+意味, 개념에 對應 아라비아 숫자
表語문자 =形+音+意味, 하나로 결합 漢字
表音문자 =形+音
音節문자 音節에 대응 한글, 가나, 티벳트문자
音素문자 音素에 대응
子音 알파벳 子音만 아라비아 문자
母音 알파벳 母音+子音 영어, 키릴 알파벳
4. 發話와 書字
發話(utterance)와 書字(writing)의 특징을 적으면 아래와 같다. 音聲이 입에서 나온 공기의 波動인데 대하여 發話는 소리를 내는 行爲를 가리킨다. 또한 文字가 일단 손을 움직여서 쓰여진 상태, 잉크가 지나간 자국과 같은 것인데 대하여, 書字는 손으로 쓰는 行爲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발화와 서자는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문자가 음성을 적기 위해 있다"는 구조주의언어학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發 話 書 字
힘들이지 않고 배우며 사용 많은 노력을 해야 함
계속 이어져 나감 토막으로 끊어서 적는다
발화할 때만 유효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음
상황에 따라 左右됨 상황에 독립적임
곧 사라진다 永久적으로 남는다
귀로 듣는다 눈으로 본다
소리로 낸다 손으로 썬다
無自覺的 표현 自覺的 표현
5. 文字와 言語
언어와 문자의 관계를 정리해보자. 表意文字, 表語文字, 表音文字 등의 모든 문자 사이에는 "質의 上下"와 "進化의 앞뒤의 단계"와 같은 優劣이 없다. 문자는 해당된 언어를 잘 표현하기만 하면 다 훌륭한 문자다. 형태의 簡便함보다도 해당된 언어를 正確, 명석, 세밀하게 표기하여 수신자로 하여금 意味 파악을 잘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文盲이 많다면 대개 文字의 형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교육지원이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으로 문자와 언어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바란다.
① 腦가 정보처리의 중심이며 言語知能과 一般知能의 두 체계가 있고 각 지능이 認知, 判斷, 記憶, 表現의 4과정을 거친다고 추정하며 뇌에 대한 入力과 出力을 음성, 문자, 그림/몸짓의 셋으로 정했다. 이 셋은 각각 물리적인 정보 媒體이므로 直線으로 표시하고 이에 따른 音韻과 말(言), 문체와 글(文) 등 추상적 요소는 點線으로 연결했다.
② 국어교과서에서 말(言)은 의미를 음성에 실려서 전달한다고 설명하나 아주 기초적인 인식의 부족이다. 이유는 不可能하기 때문이다. 의미의 전달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신자의 뇌가 가지고 있는 主觀的 기억이 발신자가 표현한 음성 등으로 발신자의 주관적 기억을 짐작해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서로의 기억이 다르므로 대충대충 넘어 갈 수밖에 없다. "말(言)"은 뇌 속의 언어가 음성이라는 공기의 진동으로 밖으로 발함에 따른 추상적 內容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글(文)도 뇌의 언어가 문자로 표현된 것이다. 文 속에 의미가 담겨 있을 수는 절대로 없다.
③ 뇌의 언어가 밖으로 표현한 3개의 물리적 표현인 음성, 문자, 그림/몸짓은 聽覺, 視覺, 體性知覺, 運動知覺 등을 통하여 처리되나 일반지능체계와 언어지능체계의 2重 體系로 분리되어 진행된다.
④ 국어교과서와 참고서에서 뇌 속의 언어와 밖으로 물리적으로 실현된 음성과 문자를 구분하지 않아 큰 混亂을 일으키고 있다.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⑤ 말(言)을 ‘입말’, 글(文)을 ‘글말’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뇌 속의 언어와 뇌 밖으로 나간 말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⑥ ‘우리말’은 固有語를 가리킬 때만 사실대로 사용하여 혼란을 없애야 한다. 자연언어의 하나인 국어는 ‘우리말’이 아니라 ‘한국어’라고 불러야 옳다.
⑦ 한글로 배운(入力) 단어의 意味가 腦 속에 기억되어 있다가 文을 구성하여 표현(出力)될 때 漢字로 구성된 漢字語와 같은 표현이 된다는 국어교과서의 가르침은 희망에 불과하다. 漢字語는 漢字로 입력해야 제대로 처리, 표현된다. 입력하는 문자의 형태가 쉽다고 해서 뇌 처리가 쉽게 될 리가 없다.
여기서 널리 알려진 R교수의 책의 첫 장 첫 줄의 다음 설명을 보자.
1.1. 文字의 表記法, 文字의 字
文字(writing)는 청각적인 음성언어(spoken language)를 시각적으로 바꾸어 주는 書寫記號(graphic symbol)의 체계다. 한글은 한국어라는 말을 시각적으로 바꾸어 쓰는 기호로서 종이에 쓰기(표기하기) 위한 기호들이므로 문자의 한 종류이며, 漢字는 중국말을 표기하기 위한 書寫記號들이므로 역시 문자의 한 종류다.(國語表記法硏究, p.11)
이 책은 이렇게 "한글과 漢字 등 文字는 모두 음성을 표기한 기호"라는 설명으로 시작하였다. 음성으로 표현한 단어를 전부 눈으로 볼 수 있게 적은 것이 문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책의 설명을 포함한 모든 文書가 다 음성으로 먼저 만들어진 것이어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文字가 音聲을 적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音聲과 文字는 기본적으로 다른 종류다. 또 국어 속의 漢字가 중국말을 표기한 것이라는 해석도 이상하다. 그런 것이 있기는 하지만 국어의 많은 漢字語는 中國語와 관계없이 西洋의 熟語를 飜譯한 것이거나 漢字를 사용하되 우리 식으로 의미와 소리를 정하고 사용하고 있다.
이상의 설명만으로도 "글자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임이 분명하다. 지난 60년간 한글이라는 문자에는 단 한 줄, 단 한 점의 改善이 없었다. 한국어의 70%에 달하는 漢字語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고 固有語만 쓰게 督勵함으로써 韓國語를 급속히 침몰시킨 것 밖에 없다. 한글을 ‘글자’이며 ‘글’이며 ‘언어’라는 착각을 널리 퍼지게 하였다. 글자로 인한 쇄국에 열을 올렸다. 과거 개화기에 힘을 키울 노력은 하지 아니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앞세워 언어의 鎖國을 되풀이하던 잘못을 다시 하고 있다.
自尊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自閉, 自害해서 國力을 虛弱하게 하는 결과가 되는 주장에 속지 말아야 한다. 공부의 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통한 지식을 쌓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언어, 국어, 말, 민족, 우리의 것 등의 막연한 개념, 虛構, 虛像에 대하여 무슨 具象적인 실체가 있는 것처럼 높이 쳐들어 정신을 잃은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孫元日
高麗大學校 經濟學部, 동 大學院(경제정책전공)卒. 經濟企劃院 경제조사과장, 경제기획관. 대한항공 상무. 아시아나항공 상임고문. 액톤컴퓨터 창립사장. 저서 「시스팀 경영」「정보이야기」「정보화 사회의 길목에서(공저)」「새 世代 새 文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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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文字인가? 우리 모두 속았다-孫元日
펌 조회수 : 423
작성일 : 2009-08-10 23:02:02
IP : 58.75.xxx.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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