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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아기의 힘

caffreys 조회수 : 1,001
작성일 : 2009-03-04 01:09:40
저희 엄마가 쓰신 수필이에요.
몇년전 70 나이로 수필시대에 수필가로 등단하셔서...
무명의 수필가가 되었네요. 어려운(not economically) 환경에서 글을 쓰시면서
글쓸 때를 항상 행복해 하세요
집안식구와 아는 사람끼리 나누어 가지긴 했지만 책도 두 권 내시고...
글이 너무 다듬어진듯 고와 제 취향은 아니지만(쉿 엄마껜 비밀)
늘 글 쓰시면 제게 전화해서 가족 카페에 올려놨으니
읽어봐라 하십니다.
늘 답글만 달고 신문에서 본거만 퍼오다가
문득 뭔가 읽을거리를 올릴 수 있을 거 같아
허락없이 퍼왔어여~~
=====================================================

                       갓난아기의 힘 / 한인자

   갓난아기의 힘은 위대하다.
   막내딸이 아기를 낳아서 산후조리를 하러 왔다. 아기가 보채서 아기를 안고 토닥이며
<섬집아기>를 불러준다. 아기는 보채다가도 그 노래만 불러주면 나를 빤히 바라본다.
맑은 눈에 퐁당 뛰어들고 싶다. 그 눈에 내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는데 딸이
  “엄마, 아까 내가 이 노래를 불러주는데 눈물이 났어. 이렇게 귀한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니! 그런 아기가 가여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그랬니? 나도 그랬어. 혼자 남은 아기도 가엾지만, 요렇게 귀한 아기를 혼자 두고
굴 따러 가는 엄마의 마음 이 찡 울리더라.”
  초등학교에서 이 노래를 가르칠 때도, 그 후에 수없이 이 노래를 부를 때도 그냥 가
락이 좋아서 불렀다. 아기가 혼자 남아 불쌍하다든가, 혼자 두고 간 엄마가 안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손자를 안고 보니, 내 아기 때나 큰 손자 때
와는 다르다. 어찌나 소중하고 귀한지 그 노랫말이 가슴에 닿아 눈물까지 흘리게 된
것이다.

  내 품에 안겨있는 아기는 감동 그 자체다. ‘불면 날세라, 쥐면 꺼질세라’ 라는 말을
건성으로 써 먹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그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인 양, 아기를 돌
볼 때면 ‘불면 날세라, 쥐면 꺼질세라’ 한다.

  아기는 배가 고프면 작은 입을 제비처럼 벌리고 좌우로 돌리면서 젖을 찾는다. 입
가에 손끝이나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입을 그쪽으로 재빨리 돌린다. 그리고는 입맛
을 짝짝 다시며 칭얼거린다.
  불현듯 기아로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난민 아기가 떠오른다. 이렇게 먹고 싶어
하는 아기의 입에 넣어줄 우유가 없다니!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의 후원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솟구쳤다.
  당장 인터넷에서 월드비전 강원지부를 찾아 들어가서 한 아이의 후원자가 되었다.
이제 어딘가에서 내가 후원한 돈으로 한 아이는 굶지 않고 먹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큰일을 해 낸 듯 뿌듯했다.

  나는 유난히 우리나라, 우리고장,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 우리나라
아이도 불쌍한 아이가 많은데 왜 먼 나라 아이의 후원자가 되겠느냐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한 달에 이만 원이면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
이 한 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한비야의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를 감명 깊게 읽었다. 하지만 그 책도 먼 나라
아이에 대한 내 닫힌 마음을 열지는 못했다. 김혜자씨와 오드리헵번의 아프리카 난
민 구제활동을 사진과 텔레비전에서 감동으로 지켜보았지만, 그들 또한 나를 아프
리카 어린이의 후원자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한달도 채 안 된 갓난아기, 우리 손자가 그 유명인들이 해 내지
못한 일을 해 낸 것이다. 작은 입을 휘두르며 먹을 것을 찾는 아기의 입은 그들이
책으로, 사진으로, 텔레비전으로 후원을 호소하는 강력한 힘보다 강했다. 내 나라
아이 후원만을 고집하던 외할머니의 굳게 닫힌 마음을 단번에 열어버린 것이다.
  이 아기가 아니었으면 굶어서 죽어가는 빈국의 난민 어린이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일에 나는 아직도 뒷짐만 진 채 먼 산 보듯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다.

  갓난아기 손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다. 보고 또 보고,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싫증나지 않는다. 갓난아기의 얼굴에서 번져 나는 순수의
힘이 나에게 감전되었는가. 나도 갓난아기 같이 한없이 착해진다. 그 앞에선 감히
남을 미워할 마음이 자리 잡지 못한다. 먼 나라 아이라고 후원자가 되는 걸 외면
할 수도 없게 한다.
  갓난아기 손자는 맑은 눈빛과 앵두 빛 입으로 나에게 가만가만 일러준다. 내
아기가 귀하면 세상의 어느 아기도 똑같이 귀한 것이라고, 인종이나 지역을 떠나
갓난아기는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IP : 219.250.xxx.12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프리댄서
    '09.3.4 1:22 AM (219.241.xxx.222)

    어, 어, 어머님께서 글을 정말 너무나 잘 쓰시네요.
    와.. 문장들이 하나같이 진솔하고 정갈합니다.
    그러면서 중심내용을 잃지 않으시구요.
    등단 작가의 글답습니다.^^

  • 2. 좋아요.
    '09.3.4 1:22 AM (210.117.xxx.17)

    글이 참 곱고 선하네요. 따뜻하기도 하구요.
    글쓰신 분의 심성이 담겨 그러하겠지요.
    덕분에 제 마음도 좋아졌습니다.

    저희 집에는 4개월을 넘어 5개월로 가는 아기가 있어서
    저희 부부도 섬집 아이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주곤 해요.
    얼마전 신랑이 섬집아기 2절 가사를 알아내서 불러주는데
    정말 뭉클하더라구요. 이글을 보니 그 생각이 나 2절 가사를 소개합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는데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아기를 낳고 보니 그 흔한 섬집아기 노래 가사도 예사로 들리지 않고
    갈매기 울음소리에 아기 생각이 나서
    다 못 찬 굴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달려오는 엄마의 마음도 너무 짠하게 다가옵니다.

    아기를 낳고 제가 사는 세상은 더 넓고 깊어진 듯합니다.

  • 3. 프리댄서
    '09.3.4 1:23 AM (219.241.xxx.222)

    음... 어머님 존함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어느 지면에서 뵙게 되면
    "앗, caffreys님 엄마!' 하면서 주의 깊게 읽어야겠어요.^^

  • 4. 은혜강산다요
    '09.3.4 1:48 AM (121.152.xxx.40)

    사랑의 경험은 똑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도 제각기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은혜를 낳고 아기가 예쁘고 소중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였던 것 같애요.강사니를 가슴으로 낳으면서 아기가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란걸 절절히 느꼈으닌깐요..어머님 말씀대로 보고또보고싶은 느낌을 알았답니다. 내 옆에 있는 아기 내 무릎에 있는 아기를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느낌 사랑 참 소중한 사랑의 발견이지요...
    어머님 자녀들 키울땐 그리 모르다 손주키우시면서 발견하신 사랑이 아름다운 글까지 쓰게 만들었군요...인생의 곰삭은 맛을 알 나이가 되면....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다지요....
    저도 어머님 나이가 되면 연필을 쥐고 글 한줄 쓸 마음이 있을런지....어머님 참으로 아름다운분이십니다..^^

  • 5. ^^
    '09.3.4 2:28 AM (113.10.xxx.186)

    지금 둘째가 2개월됬는데, 너무 가슴에 와닿네요.
    저도 섬집아기 불러줄땐 꼭 2절까지 불러줘요~ ^^
    첫아이때랑 다르게 더 여유있게 아기를 바라볼수 있어서 가슴이 늘 벅찹니다.
    울 친정엄마도 더하시겠죠..

  • 6. 하늘을 날자
    '09.3.4 10:00 AM (124.194.xxx.146)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7. leelord
    '09.3.5 4:19 PM (118.47.xxx.28)

    좋은생각이나...샘터에...원고를 한번 내어보심이 어떨런지...
    좋은글은 많이 읽혀야겠지요..
    추천한방 놓고 갑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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