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심부름
작성일 : 2008-08-21 21:16:27
628795
여름 어느 날에는
토요일 오후 정도였을까?
도까리 종이에 싼 개고기를 들고 할아버지께 갔다.
시외 버스 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신작로에서 내려야 하는 그 길을 갔다.
대문 앞 우물가에는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백일을 흐드러지고
나무 쐐기로 물구멍을 막던 돌 대야 옆 두레박에는
따가운 볕에
물방울 하나도 없었다.
삽짝 가까이 자리한 사랑에서
할아버지는 높은 방문에서
나와 눈을 맞추고
반가운 마음을
말 한마디로도 만들지 못하고
아버지가 물려 받은 그 큰눈을 껌벅이며
기침을 하시고
저 안채 부엌에서
종부인 사촌 올케언니
종종 걸음으로 반가이 달려온다.
언제 보아도
처음 본 듯 안아 줄 듯 환하게 웃는 그 새댁이......
할아버지께 문안을 여쭈고 나오면
언니는 그 사이 가마솥에 고기를 넣고 불을 지피고
다시 나를 위해 칼국수를 밀어주었다.
지금은 어디서도 못 먹는
누런 밀국수.
식구들 북적대던 명절에나 보던
그 너른 마당에는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고
온 동네가 여름 뙤약볕에
고요함을 삼키던 날.
고향의 그 지루한 여름에
아버지는 또 아버지를 위해
딸에게 짧은 여름 여행을 시키셨다.
가끔은
도까리 종이에 싼 짐을 들고
가슴 두근대며
혼자여서 길을 찾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집을 나서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오늘처럼
그 본향집 모습이 정지된 화면처럼 내 마음에 떠 오르는 날은 말이다.
IP : 121.167.xxx.183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어머나...
'08.8.21 9:24 PM
(121.140.xxx.107)
동심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읽은듯 합니다.
2. ^^
'08.8.21 9:25 PM
(222.111.xxx.108)
오랫만에 듣는 단어 도까리
고향이 경상도 이신가 봐요'~^^
3. 돌까리
'08.8.21 10:00 PM
(222.237.xxx.167)
누런 시멘트 푸대를 말씀하시는거지요
이젠 옛날 단어가 되어버린 돌까리(돌가루)종이
그말한마디가 이렇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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