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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검머 이야기 - 광우병이야기
. 조회수 : 535
작성일 : 2008-04-30 01:38:03
광우병 - 영국 농림부 장관 존 검머
이 사건의 본질은 존 검머가 인간광우병 위험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쇠고기의 안전성을 확신하고 국민을 상대로 이를 극적으로 세일즈했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그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든지, 자기 딸이 인간광우병으로 죽은 그의 친구가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사건의 본질과 관계 없는 곁다리고 낙수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검머의 친구의 딸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참혹한 투병을 하다 죽었나가 사건의 본질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영국의 인간광우병 희생자 가족들이 존 검머를 (점잖게 이야기해서) 비난한다(Families of CJD victims accused him)는 것이 사건의 본질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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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여 국민의 불안이 높아가자, 1990년 5월 당시 농림부장관이었던 검머는 네 살배기 딸을 데리고 텔레비전에 나와, 햄버거를 먹는 장면을 선보였다.
여기서 그는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을 국민 여러분에게 확신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정부는 전문가들로부터 모든 조언을 듣고 있으며, 그들의 결론은 쇠고기가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것입니다"(I can assure the public there is no cause for concern. The Government has taken all the advice it can from the experts. Their conclusion is that beef is perfectly safe.)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틀렸으며 쇠고기는 완벽하게 안전하지 못했다. 그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났으며, 결과적으로 대중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되었다. 쇠고기와 인간광우병의 관계가 입증된 것은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햄버거를 물어뜯은 뒤 6년이 지나서였다. 그 희생자 중에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검머의 친구의 딸인 엘리자베스 스미스도 있었다.
이 사례의 핵심은 존 검머가 위험이 채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부 과학자들의 조언에 근거해 대중에게 쇠고기의 안전을 세일즈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광우병의 희생자 중에는 검머를 비롯한 낙관주의자들이 행한 안전 마케팅을 듣고 아무런 경계 없이 쇠고기를 먹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의심스럽다면 왜 마케팅을 하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상식적 교훈은, 현재 실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진행중인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I can assure 할 수 없으며, 누구도 자만할 수 없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란 현재적 지식일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실험실 안에서도 그래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발언에서는 훨씬 더 보수적이어야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판단과 세일즈는 바로 불필요한 희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BSE 사태가 벌어진 뒤,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2년 반 동안의 조사를 거쳐 2000년에 발표한 필립스 보고서는, 검머를 포함한 영국 관료들이 BSE 쇠고기와 vCJD와의 관계를 경시했으며 광우병으로 인한 위험과 관련해 대중을 잘못 이끌었다고 결론내렸다. (보고서 전문, 검머와 햄버거 해프닝)
왜 정부 관리들은 그 같은 잘못된 확신을 국민에게 세일즈했을까. 보고서는 이들이 소비자의 두려움이 확산되면 쇠고기 수출길이 막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검머가 보건복지부장관이 아니라 농림부장관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대목이다. 하긴 다른 부서도 위험을 깎아내리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정부 부처간에 이견이 제대로 조정되지 못했다는 정도다. 결국 정부는 경제 논리에 빠져 일부 과학자들의 잘못된 판단에 근거하여, 광우병 위기에 대한 경계론을 과장된 위기라고 주장하며 재갈을 물리기 바빴으며, 이 때문에 위기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쇠고기의 안전성을 주장한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대중에게 잘못된 확신을 줄 수도 있는 발언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의 의료책임자였던 도널드 아치슨은 BSE가 인간에게 옮아 갈 위험성에 대해 대중을 호도한 혐의를 받았다.
'과장된 공포' 못지 않은 '과장된 안전'의 위험
199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는 축산업계의 후원을 받아 대대적인 쇠고기 안전 캠페인이 벌어졌다. 그리고 관련부처 정부 관료들도 이 캠페인에 적극 참여했다. 소비자에게 쇠고기의 안전성을 각인시키려는 이들 캠페인은 위험 가능성을 부정하고 안전만을 강조하였으며, 이로 인해 대중은 쇠고기에 대한 불안을 점차 떨쳐버리게 되었다. 겉으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지만, 물론 이러한 상황은 영국 국민에게 불행이었다. 경제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과학의 허울을 쓴 맹신적 낙관주의 분위기에서 필요한 조처들이 무시되거나 뒤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안전성에 대한) "과장이 정확성을 대치하는(hyperbole replaced accuracy)" 상황이 벌어졌다. 이들 캠페인에 대해, 2000년의 필립스 보고서가 "터무니없는 과장(absurd exaggerations)"이라고 평가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과장된 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장된 안전도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똑같이 나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위험한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통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1종 오류와 제2종 오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시고.
자, 이런 모든 사태와 평가를 놓고,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라고 말할 수 있다. 필립스 보고서도 정부 관료와 과학자들을 비판하긴 하지만 죄가 있다고까지 보지는 않았다. 보고서는 개개 관료들에게 최종적으로 면죄부를 주었는데, 그것은 "악의는 없었다"는 것 때문이다. 검머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은 국민을 해치겠다는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잘못 인도되었다(misguided)"는 것이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현재 인간광우병은 그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조차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알려지지 않은 실체를 놓고 조금씩 그림 맞추기를 하며 전체 모습을 파악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견해, 다른 주장들이 혼재되어 있다. 의료과학계에서도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가 자명하지 않은가. 제2의 존 검머들이 나와,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냐,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뒤늦게 일삼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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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존 검머 사례와 관련한 주요 부분이고, 이제부터는 맨 위에서 이야기한 곁다리, 낙수거리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맨 위에 링크한 글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존 검머가 아무 잘못이 없으며 영국 국민이 그를 변함없이 좋아하는 것처럼 오독할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존 검머는 지금도 자기가 1990년에 텔레비전에서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쇠고기가 싸서 더 잘 먹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지금 그가, 내가 그 때 그런 일을 한 것은 정말 잘못이었고 후회한다고 말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기대다. 인지일관성이나 인지부조화론 같은 것은 교과서에서만 쓰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가, 내가 잘못했소, 라고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다고 쳐보자. 인간광우병 희생자 가족들로부터 천문학적 금액의 줄소송을 처맞을 수 있다. 그저, 자신은 그 때 멍청한 과학자들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 그랬을 뿐이며, 지금도 숫자로 보아 별 문제 아니지 않느냐 하고 주장하는 것만이 살 길인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아이들에게 쇠고기를 안전하다고 먹이려 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인정하긴 한다.
존 검머에게 면죄부를 주는 엘리자베스 스미스의 부모. 인간광우병이 희귀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증거처럼 인용되었다. 알려진대로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로저 스미스는 존 검머의 오랜 친구다. 친구도 그냥 친구가 아니다. 로저 스미스는 은퇴한 목사고, 존 검머는 바로 로저 스미스의 교회를 다니던 신자며,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그 자신이 유명한 성직자의 아들이기도 하다.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과 이경숙쯤 되려나.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햄버거 같은 것을 즐겨 먹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딸의 죽음을 놓고 오랜 친구이자 지역과 교회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정치인 존 검머를 매도할 필요도, 동기도 없을 수 있다.
내가 여기까지 쓴 글은 필립스 보고서 부분만 제외하면, 맨 위에 링크한 글이 인용한 것과 똑같은 외신 기사들을 출처로 하고 있다. 같은 기사를 놓고 매우 다른 시각을 뒷받침하고 정당화하는 사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보아 주시면 좋겠다. 그 점을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표현해 보자. 맨 위에 링크한 글은 Times 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만 골라내 인용되어 있다. 꼭같은 기사를 다음과 같이 전혀 다른 부분만 골라내 인용할 수 있다. 조금 다른 느낌이 나는 것에 주목해 보시기 바란다. 대저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여기저기서 끌어다 대는 기사나 논문이 자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라서, 원 기사나 논문에 유지되어 있는 최소한의 유보나 균형조차 기대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 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보시는 분들은 각종 자료나 기사가 인용자의 필요에 따라(= 인용자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미스 스미스(엘리자베스)는 2005년 3월 vCJD로 진단받을 당시 버밍엄 대학에 재학중이었다. 아버지 스미스씨에 따르면, 엘리자베스의 증상은 다른 병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에 vCJD로 진단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처음에 딸애의 증상은 우울증인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지 않고 얼굴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발성 경화증(MS)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시적 기억 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젊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텨나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대학 생활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공부를 중단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쯤에는 음식조차 삼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곧 아무런 음식물도 넘길 수 없게 되어, 죽기 전까지 2년 반 동안 오로지 튜브에 의존하여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병은 가차없이 딸애를 괴롭혀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딸은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돌봐 주어야 겨우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애가 투병하던 2년간은 처음 태어난 갓난애기 때보다 훨씬 더 무력한 상태였습니다."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었던 엘리자베스는 10월4일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사건에 대해 존 검머의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IP : 222.117.xxx.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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