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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동경미 조회수 : 911
작성일 : 2004-06-28 12:02:42
얼마전에 모처럼 시간이 나서 친한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지요. 모두들 나이들이 사십을 넘어가다보니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는 한 생각이 대체로 평준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젊어서는 만나면 남편 흉보고 시댁 흉보느라 시간이 모자랐는데, 이제는 그것도 시들해져서 남편은 안쓰러운 존재, 시어머니도 연세가 많아지시니 측은한 존재가 되어가네요. 그만큼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모든 어렵고 힘들었던 관계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수월한 관계가 되거나 무게중심이 달라지는 관계가 된다는 걸 느낍니다. 첫아이를 늦게 낳고 아이가 많은 탓에 저도 집안 일 분담을 가지고 남편과 부딪쳤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이것저것 줄인다고 도우미 아줌마도 없이 아이 넷에 집안 일 하면서 바깥 일까지 하려니 만만치 않더군요. 저희 남편이 그래도 많이 깨인 사람이라서 나름대로 도와주는 데도 늘 내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하루를 시작해서 밤 열 두시가 다되도록 종종걸음을 해도 늘 밀린 일들이 산재하고...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별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했고요. 그럴 때면 남편에게 화살이 날아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무슨 얘기든지 조금이라도 심각한 얘기를 하려고 하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어요. 억지로라도 말을 하다보면 논쟁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신문을 들고 못들은 척하곤 했지요.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저와 심각한 얘기는 질색인 남편의 차이점때문에 우리 부부는 참 많이도 싸웠던 것같아요. 처음에는 그야말로 이혼도 생각했고 미워해보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나아질 게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부관계에 관한 수많은 책들,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에 관한 각종 책들, 무슨 학위라도 딸 것처럼 열심히 읽었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아무리 좋은 책이 있고 조언이 있어도 직접 적용하고 실천 할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음고생하면서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아니면 개선을 위해 내가 먼저 변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야했지요. 내가 먼저 변하자니 억울하고, 계속 그렇게 살자니 미칠 것같고...고민하는 시간도 길었지요.

결국 더 아쉬운 사람인 제가 먼저 마음과 행동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남편의 단점들을 가급적이면 인정해주고, 장점을 하루에 세가지씩 칭찬해주는 방법을 제일 먼저 실천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더군요. 어떤 날에는 하도 칭찬할 것이 없어서 키가 작으니 바지를 다릴 때 수월하다는 얘기까지 했답니다. 특히 싸우고 난 다음날에는 정말 칭찬을 하느니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았어요. 세월이 가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로 남편의 좋은 점, 나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데 남편이기에 잘 해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편의 미운 점이 가려지고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하니 우리 둘 다 싸울 기운도 별로 없을 나이가 되었다는 거지요.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남편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이 문제였다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나의 지혜롭지 못한 반응이 더 큰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스스로 내가 상처받을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갔다고 해야지요. 그리고는 그 책임을 남편에게 고스란히 뒤집어씌웠던 거고요.

제가 요즈음 가장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겁니다. 내 남편이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근사한 남자들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달래주고 게다가 돈까지 많아서 내가 하고싶은 모든 것을 다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일은 절대로 없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남편도 내가 김정은처럼 무슨 일에나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반응하고 얼굴과 몸매가 빼어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하고요(대체로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이런 식의 비현실적인 기대를 많이 하지 않지요).

내 남편에 대한 환상이 빨리 깨질수록 결혼생활이 안정된다는 것을 참 뒤늦게 깨달은 거지요. 얼마 전에 남편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는 좀 다정다감한 게 부족한 사람인데 끝까지 자기를 포기하지 않아주어서 고맙다고요. 그래서 그나마 많이 변하게 되었다고요. 사실은 제가 포기를 하지않았다기보다는 오기를 부린 부분도 있었을텐데 그래도 잘 봐주더군요.

예전에 읽었던 부부관계에 관한 서적 중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책을 권합니다. 방송매체를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필립 맥그로의 "관계회복"이라는 책이에요. 아주 명쾌한 내용이라 읽기도 쉬웠구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14일간의 프로그램은 저희 부부도 실행해보았는데 처음에는 어색한 점도 많았지만 아주 좋았습니다.

IP : 221.147.xxx.75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임오케이
    '04.6.28 1:19 PM (222.99.xxx.141)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네요.
    그렇게 밉던 남편이 안쓰러운 존재로 보이고...

    칭찬이야말로 상대를 변하게 하고 우리 관계를 변화시키는 묘약임을 알면서도 참 실천하기가 어렵지요.

    필립 맥그로의 관계회복이라는 책,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2. 여름
    '04.6.28 3:47 PM (211.178.xxx.102)

    동경미님 글 기다렸습니다.
    많이 바쁘세요?

  • 3. champlain
    '04.6.29 4:30 AM (69.194.xxx.234)

    남편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이 문제였다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나의 지혜롭지 못한 반응이 더 큰 문제였다는..부분 정말 공감이 갑니다.

    늘 좋은 글 감사 드려요~~

  • 4. 리디아
    '04.6.29 8:55 AM (203.253.xxx.27)

    아...맞아요....
    요즘들어 왜 그리 남편의 단점만 보이는지요..이게 바로 제 시각의 문제란걸 마음 속으로
    어렴풋하게 깨닫고 있는데...동경미 님께서 이렇게 제 마음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해주셨어요.
    칭찬...이 묘수를 써보려 노력 또 노력하겠습니다!!!!!

  • 5. 예은맘
    '04.6.29 11:05 AM (218.148.xxx.9)

    동경미님 글 기다렸어요. 안녕하시죠?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까 아래에 익명님께서 쓰신고민에 도움이 되었음좋겠네요.
    저에게도 큰 도움입니다. 또뵈요. *^^*

  • 6. peony
    '04.6.29 12:15 PM (69.5.xxx.107)

    동경미님..엄마들을 위해서 PAT 나 아니면 같이 심리 여행이나..그런 수업을 하시면 안될까요?
    일주일에 한번씩 강좌를 해주시면..너무 좋을거 같은데..제 욕심이 너무 과했죠?
    바쁘시지 않다면 너무 유익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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