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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만삼천원-아래있던 글 끌어올립니다.

.. 조회수 : 1,667
작성일 : 2011-06-17 10:59:02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축의금 만 삼천원 - 이철환
IP : 221.138.xxx.215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1.6.17 11:02 AM (211.110.xxx.100)

    아침부터 눈물이 왈칵 나네요............

  • 2. ...
    '11.6.17 11:02 AM (123.109.xxx.203)

    아래 부부끼리와서 5만원 냈다고 억울해하던 분이
    꼭 이글을 봤으면 좋겠네요

  • 3. 이 글은
    '11.6.17 11:08 AM (203.226.xxx.53)

    다시 읽어도 좋아요ㅠ

  • 4. ...
    '11.6.17 11:09 AM (119.201.xxx.154)

    좋은 글 고맙습니다...

  • 5. 2000원
    '11.6.17 11:10 AM (58.145.xxx.42)

    이십삼년전 학생시절 제 결혼식에
    이천원을 축의금으로 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천원이 그친구 일주일 용돈인걸 알기에
    지금까지도 그 축의금이 고맙습니다

    항상 그친구가 성공했기를 기원합니다

  • 6. 항상
    '11.6.17 11:11 AM (211.172.xxx.76)

    눈물나게 하는 .....

  • 7. ...
    '11.6.17 11:13 AM (186.12.xxx.92)

    저도 제 결혼식에 와주는 것도 감사하더군요.

  • 8. 마음만은
    '11.6.17 11:18 AM (59.7.xxx.51)

    백만원의 축의금보다 값진 금액입니다
    눈물을 쏟는 아침
    그런데 기분이 훈훈하네요

  • 9. 햇볕쬐자.
    '11.6.17 11:26 AM (121.155.xxx.143)

    마음이 훈훈해 지네요...마음이 부자인 사람들 제가 제일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에요...좋은글 읽는데...자꾸 눈물이....

  • 10. 헐..
    '11.6.17 11:36 AM (58.239.xxx.91)

    아무생각없이 읽다가 펑펑 울었네요..
    어유.. 어떡해요.. 눈물이 멈춰야하는데.. 아이고.. ㅜㅜ

  • 11. ㅠㅠㅠ
    '11.6.17 12:20 PM (115.22.xxx.172)

    넘 따뜻하고 맘 아픈글이네요
    저런 좋은친구 있어 행복한 사람입니다
    울컥하고 울고 있네요ㅠㅠ
    앙...어떻해요

  • 12. ㅁㅁ
    '11.6.17 1:27 PM (14.55.xxx.62)

    오늘 왜 이렇게 눈물 나는 글들이 많은 거에요...
    근무중이라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안 멈춰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요...

  • 13. .
    '11.6.17 5:49 PM (122.101.xxx.138)

    엉엉~ 너무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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