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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폰 종결자로 효도했네요 ^^

마고 조회수 : 1,495
작성일 : 2011-04-21 14:33:23
부모님 두 분 모두 한달 넘게 감기를 앓으시면서
입맛을 완전히 잃으셨다며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특히 아빠가 더욱 심하셔서 식사를 거의 입에도 안 대신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2주간 요리에 잼병인 무능한 딸은
82에서 폭풍검색을 하며 이것 저것 해서 나르느라  
오늘은 다시 도저버린 허리 통증에 오전 내내 침대에서 끙끙 댔네요.

어제는 우여곡절 끝에 오이 40개 사서 꼴랑 20개 건진
겨우 만든 오이 소박이를 이고 지고
부모님댁에 갔더니 엄마가 갑자기 핸펀을 꺼내놓으시며
요즘 어디 가서 핸펀 꺼내놓기가 창피하시다는 겁니다.

올해 저희 엄마 연세가 70이십니다.
할머니들은 핸펀 모델 따위 신경 안 쓰시고
그저 어디 한의원 침이 용한지,
요즘 봄나물은 뭐가 맛있는지 이런 얘기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부모님 연배의 분들이 모이셔서
넌 무슨 요금제 쓰니?
이번에 기변하려고 하는데 번호이동이 나을까?
이건 몇 기가야?
테더링이랑 에그 중에 뭐가 나을까?

뭐 요따위 대화를 나누실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제가 그동안 늠 무심했었나 봅니다.

며칠 전 친구모임에 다녀 오셨는데
그 중 한분이 이번에 사위가 바꿔줬다며
내껀 핸펀으로 성경도 보고 찬송가도 나온다~~~
막 이럼서 자랑하시는데 그게 글케 부러울 수가 없으셨다네요.

부모님들의 자식 자랑 레퍼토리는 참으로 다양한 사회상을 반영하는군요 ;;;;;

아마도 스마트폰으로 바꿔주며 어플을 깔아준 모양인데
엄마에게 아이폰이냐, 갤스였냐 여쭤보니
당근 그게 뭐냐며 제게 되물으십니다.
아마 울 엄마 기를 팍 죽여놓으신 그 할머니도
자기 핸펀 제조사는 물론 모델명도 모르실꺼라는데
500원 겁니다. ;;;;;

얘야.......나 오이 소박이 안 먹어도 좋으니 내 핸펀으로도 성경 보게 해다오.....
하시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쏟아질 뻔 했습니다.

엄마........
그 오이 소박이는 엄마가 평생 드셔오시던 그런 오이 소박이가 아냐 ㅜㅜ
딸래미가 오이 도둑 누명까지 써가면서
꼬박 10시간동안 만든거란 말이야 ㅜㅜㅜㅜ

오이 소박이가 김장도 아니고 무신 10시간이나 걸리는지
다신 안 만들고 사먹을랍니다 ㅡㅡ;;

하긴 엄마 핸펀 바꿔드린지가 5년이 넘었더군요.
그 당시엔 나름 효도폰 이라며 큼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딱 우표 2개만한 액정때문에
글자도 쬐그맣고 게다가 2G폰이어서 어차피 이번 6월엔
KT에서 보상을 해주던 그 전에 바꾸던
바꾸긴 바꿔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울 엄마는 문자도 못 보내신다는거 ㅜㅜ
지난 세월동안 자식 셋이 부모님께 문자 보내기
족집게 과외를 수도 없이 해드리고
폰트 30에 굵은 글씨로 큼직하게 출력해서 코팅까지 해서
벽에 붙여드렸으나 소용 없었습니다.

부모님댁 갈때 마다 제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그동안 핸펀에 쌓인 수십개의 문자 삭제해드리는겁니다. -_-;;;;

사용법을 잘 모르시니 뻑하면 핸펀 안 갖고 외출하셔서
연락두절 상태로 만들어버리시곤 하는 엄마에게
스마트 폰이라니...........-0-

일단 터치폰인 제 핸펀을 보여드리며 간단히 설명을 하고
한번 다이얼 눌러보시라고 했습니다.

물론 다이얼 화면 띄우지도 못 하시더군요 ㅜㅜ
스마트폰은 이것보다 정확히 100배 더 복잡하다고 딱 잘라 설명드리고
스마트폰은 포기시켰습니다.

당장 호기롭게 핸펀 바꾸러 나가자고 큰소리 쳐서
갑자기 눈빛이 반짝반짝해지신 엄마를 모시고
동네 핸펀 대리점으로 갔습니다.

부모님 폰 바꿀꺼라며 효도폰 몇 개 추천해달라니
대 여섯개를 꺼내놓으며 주섬주섬 설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울 엄마.......
단박에 한 폰에 꽂히시더군요.
뭐길래 샵에 들어온지 30초도 안되서 결정을 하시나 하고 봤더니
버튼 크기가 거의 바둑알만하더군요.
효도폰 답게 DMB따위는 아예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SK로 번호이동하고 이걸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엄마가 사장님께 이걸로 성경도 볼 수 있나요?
라고 물어 보십니다.

아.....내가 늠 방심했어 ㅜㅜㅜㅜ

제 나이또래 사장님이 갑자기 급친절해지시면서
엄마에게 교회 다니세요? 라고 묻더니
전 성령을 두번 체험한 이후에.....어쩌고 저쩌고...............;;;;;;;;;;;;;;;;;;;;;;

거의 10분 넘게 두 분이 서로 진열장 너머로 손을 맞잡으시고
대화를 나누시는 걸 기다리고 있자니
무교인 저로써는 몹시 견디기 힘들더군요.

핸펀을 바꾸러 온건지 수요 저녁 예배에 온건지 ;;;;;

할 일도 없고 뻘쭘해서 거기 알바 직원에게 조용히 물어봤습니다.

"여기 원래 일케 은혜 충만한 분위기 인가요?
"저..........그만 두려구요......;;"

순간 직원 등짝을 토닥토닥 해줄뻔 했습니다.

기다리며 엄마가 꽂히신 핸펀을 이리저리 보는데.....으응??
만보기라고 쓰여 있는 이상한 버튼이 하나 있더군요.

알바 직원에게 뭐에 쓰이는 버튼이냐고 물었더니
큭~ 하고 웃으며 만보계랍니다.

핸펀에 만보계!!!!!!!!!!
이것이 진정 효도폰 종결자!!!!

IT강국 한국 기술력의 화룡점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찌 핸펀에 만보계를 달 생각을 ㄷㄷㄷㄷㄷ

걍 이거다 싶어 빛의 속도로 서류작성하고 개통해서
엄마 등 떠밀어 후다닥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사장이 달아준 분홍색 하트 쿠션모양의 핸펀 고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어르신들이라도 핸펀 하나 바꿔드리면
공짜폰에도 이렇게 좋아하고 뿌듯해하시는데
비용도 안 드는 걸 왜 진작 안 바꿔드렸을까.......
몹시 죄송하고도 왠지 마음이 아려옵니다.

문자 기능은 다음에 날 잡아서 총정리 과외를 하기로 하고
일단 만보계 기능이라도 확실하게 알려 달라시기에
꼼꼼히 알려드리고 직접 실행하시는거 시험도 보고 왔습니다.

부모님 즐겁고 흐믓하게 만들어 드리는 방법이
다달이 드리는 용돈이나 별미 음식 말고도
일상 속에도 얼마든지 있구나......생각하니
좀 더 부모님께 마음 쓰고 불편하신건 없는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번엔 뭘 바꿔 드려야 하나.......
LED 티비 이런거면 몹시 곤란한데 ㅜㅜㅜㅜ
IP : 125.178.xxx.158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하하하
    '11.4.21 2:46 PM (222.107.xxx.18)

    그냥 읽어 내려오다가
    글 쓰신 분이 누구신가 다시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정말 유쾌한 글이네요~~

    "여기 원래 일케 은혜 충만한 분위기 인가요?
    "저..........그만 두려구요......;;"

    순간 직원 등짝을 토닥토닥 해줄뻔 했습니다.

    ㅎㅎㅎㅎㅎ 커피 마시던 중이었으면 뿜었겠습니다.

  • 2. 별사탕
    '11.4.21 2:48 PM (110.15.xxx.248)

    미소지으면서 읽은 글이네요
    사소한걸로 효도하시면 좋죠~~ ㅎㅎ

  • 3. 답답아
    '11.4.21 2:56 PM (118.217.xxx.12)

    효도도 하시고...ㅎㅎ
    재밌는 글도 써주시고...ㅎㅎ
    좋은 일 많이 하셨어요^^
    오이소박이는 사서 드세요 ㅋ

  • 4. 죄송하지만
    '11.4.21 3:02 PM (125.142.xxx.139)

    폰 모델명 정확히 좀!!!! 써주세요!!!!

  • 5. ..
    '11.4.21 3:03 PM (203.234.xxx.3)

    저도.. 사무실에서 웃느라..

    IT강국 한국 기술력의 화룡점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찌 핸펀에 만보계를 달 생각을 ㄷㄷㄷㄷㄷ

    진짜 대단하지 않습니까?

  • 6. 원글님
    '11.4.21 3:05 PM (119.64.xxx.158)

    글 넘 재밌게 쓰셨네요.
    읽으면서 내내 상황이 그려져서...... 사는 재미가 이런거 같아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참고로 젊은 저도 효도폰 씁니다.
    단순한 기능이 최고여요.ㅎㅎㅎㅎㅎ

  • 7. ...
    '11.4.21 3:05 PM (203.234.xxx.3)

    아참, 저도 비슷한 상황인데요, 전 좀 돈 들여서 아이패드2 사드리려고 해요.

    아이패드2에 성경/찬송가(악보 있는) 어플을 깔면 성경책보다 더 크게 잘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그 어플이 유료..)

    그리고 저도 교회다니는 사람으로서(별로 은혜충만하진 않아요..)
    요즘 젊은 분들 보면 성경책 무겁게 안 갖고 다니고요, 예배중에 쓱 스마트폰 꺼내요.

    거기에서 성경책 어플 열어서 성경보고, 찬송가 열어서 찬송하고..
    (저는 찬송가 악보 있는 어플은 유료라서 성경책 어플만 다운받았습니다.)

  • 8. ^^
    '11.4.21 3:06 PM (112.153.xxx.37)

    폰 모델명 정확히 좀 써주세요!!!22222222

  • 9. 마고
    '11.4.21 3:09 PM (125.178.xxx.158)

    제가 아이패드 쓰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엄마에게 아이패드로 성경을 깔아드릴까 해서
    어제 시연해보여드렸다가.............
    걍 접었습니다. ㅜㅜ

    애니콜인데 모델명이 머냐고 물었더니
    이런건 무슨폰 그런 닉넴은 없고 걍 효도폰이라며 ;;;
    엄마에게 전화해서 모델명 알려달라고 해봐도
    그닥 큰 기대는 되지 않기에......죄송합니다 ;;

    근데 머 만보계 달린 효도폰이 얼마나 되겠어요? ㅎㅎㅎ

  • 10. ^^
    '11.4.21 4:11 PM (202.30.xxx.226)

    글 정말 재밌게 쓰셨네요.
    전 아직 은혜충만한 대리점은 못봤는데 말이죠.. ㅎㅎㅎ

    전 효도폰 종결자는 아니구요,
    일반 3G폰인데,

    대신 메모리카드 추가로 넣은 다음,
    트로트 기본 100곡 넣어드리고,
    엄마가 매일 매일 가요무대 보시면서,
    곡이랑 가수 적어주시면
    제가 멜론 들어가서(앗~ 멜론?) 암튼..
    곡 다운 받아서 넣어드리는게..
    작은 효도중 하나입니다. ^^

  • 11. 제가
    '11.4.21 4:35 PM (96.3.xxx.146)

    찾았습니다. 원글님은 아니지만.
    삼성 애니콜 SHW-A240S WISE MODERN(와이즈 모던폰) 이래요
    아래 사이트로 가보세요. 누가 글 올렸더군요.
    http://danbis.net/10614

  • 12. 마고
    '11.4.21 4:56 PM (125.178.xxx.158)

    윗님 대단하세요~~
    이 폰 맞아요 ㅎㅎ
    이거 키패드가 핑크색도 있는데 엄만 걍 실버가 낫다고
    사진에 나와있는 모델로 하셨어요 ^^
    대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온지 한달밖에 안된 신형이라고 무쟈게 강조하던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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