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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때 그 오빠

깍뚜기 조회수 : 955
작성일 : 2011-02-27 16:31:25
영동은 폭설이라니 걱정인데...
서울은 봄비가 땅을 적시네요. 지금은 빗줄기가 조금 잦아 들었어요.

수봉 언니는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잊어서 울던 그 사람 (...)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 때 그 사람" 이 생각난다고 했는데요... 어린 나이에 가사의 의미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아빠 친구들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키시면 인간 주크 박스도 아니고, 심수봉이나 남진의 노래를 불러 박수받던 재미에 불렀댔던 유아기 18번;;;;

그런데 이 노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때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고학년.
지금도 정체 불명의 봄방학! (그러니까 아예 쭉 이어서 겨울방학을 하던지, 아님 쿨하게 2월에 개학을 하던지, 잠깐 개학 했다가 며칠 뒤 방학을 하는 봄방학이 전 참 이상했어요. 뭘 해야할지 알 수 없고, 또 새학년이 되는 설레임도 방학 때문에 좀 식는 것 같고...)에 우연한 기회에 겨울 캠프에 가게 되었지요. 당시 강북 서민 동네에 사는 저로서는 동네 애들과는 다소 차별되는 경험이었던 게 분명해요.

당시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자면, 저는 그저 주산학원이랑 피아노 학원만 다니던 시절이고, 방학이면 미친듯 고무줄을 하느라 하루를 탕진했던 전형적인 '골목 키드' (?) 였지요.
그런데 유난히 치맛바람이 셌던 **동 사는 엄마 친구가 "어머, 그 집 애는 백화점 겨울 캠프도 안 보내나봐? 요즘 스키 캠프 안 가는 애가 어딨다구..."  도발하는 바람에 저는 졸지에 모모 백화점 어린이 겨울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거여요. -.-;;;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등 2학년 정도까지가 대상이었구, 강원도 어드매인가 리조트로 가게 됩니다. 우리 반에 스키장에 다녀왔던 애들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스키복이며 장갑을 사러다닐 때도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어요. 글쎄...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막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우리 반에 점심 못 싸오는 애도 있는데 묘한 죄책감도 들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좀 생각이 많았던 것 같구요.
암튼 그래서 친구들한테 그저 겨울 캠프에 간다고만 하거나, 친하지 않은 애들한테는 교회 수련회를 간다고 둘러댔던 거 같기두 하고... 하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설레긴 설렜어요.

암튼 낯선 동네 백화점 분점에서 모여서 낯선 애들과 언니 오빠들과 역시 낯선 리조트에서 여장을 풀고
낮에는 스키 기초를 배우고,  오후와 저녁 때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거였지요. 이건 뭐 학교 아람단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뭔가 세련된 문화체험 ㅋㅋ 각 반마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담임 선생님 역할을 했는데, 그 나이 때 으레 그렇듯 대학생들은 정말 멋져 보였음 ㅎㅎ 지금 생각하면 '천국이 어디갔늬~' 하고 인터넷 알바 사이트에서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거나 인생 경험 차원에서 알바를 지원해서 온 대딩들이었겠지요.
T바라고 가랑이에 바를 끼고 슬로프를 올라가는 기구를 탄 기억. 괄약근에 무리가 가는 기구~
같은 조 중 1 언니들이 유난히 보이시하고 멋져서 이것저것 막 물어보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주소도 땄던 기억. 실제로 한 동안은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지요.

3박 4일 여정의 백미는 3박 째 저녁 문화제, 즉 장기자랑이었지요.
내가 무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마침 비가 좀 부슬부슬 내려서 저러다 눈이 녹는 게 아닌가
겨울 스키장이 꽤나 스산했는데.
장기 자랑의 하이라이트!

까만 테를 쓰고 얼굴을 조금 갸름, 똘똘해보이면서도 살짝 우울기가 도는 표정의 중 2 오빠였어요. 그러나 피부도 뽀얗고 절대 느끼하지는 않은 새초롬함도 간직한.... 크하.그러더니 부른 곡은 바로 김광석의 <거리에서> 였지요. 오앙! 안 그래도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여자애들은 같은 나이 남자애들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들인지 자주 느끼는데요 ㅎ 갸들은 쉬는 시간에 소방차 앞구르기나 흉내내드만 (물론 다시 생각해보면 소방차는 꽤나 전위적인 댄스 그룹~) 이 오빠는 프로필을 살짝 드러내고 앞머리는 내린 채 손 관절이 두드러지게 마이크를 잡고는 나즈막한 (아마도 변성기 즈음?)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어젯밤엔, 난 네가 미워졌어! 음빠! 음빠! 랑 너무 비교된다 아입니까;;;;)


그 나이 때 음악 좀 듣는다고 자뻑하던 또래 여자애들 무리에 속해 있었고, 유재하니 여행 스케치이니 가요라면 최소한 이 정도? '재즈'란 말도 알아갈 즈음이라서 이 오빠의 <거리에서>는 진짜 센세이셔널 했지요.
이 순간 김광석을 알게 되었구요.
중 2 오빠가 노래를 정말 잘 불렀는지 어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왜 하이라이트 부분인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린 후" 이 대목에서 고 김광석 특유의 '머나 머허어어언~' 은 제대로 불렀던 게 분명해요. 그 다음 성량 확 줄여서 고개 떨구고  '떠. 나. 버. 린 . 후우....'

<위대한 탄생> 에서였다면 방식혁이 꼴아보는 표정으로;;; '그건 모창이잖아요.' 이은미는 '있잖아요... 지금 누구씨는 목으로만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그래서는 절대 노래 오래 못해요...' 이랬을 법한 우울한 열정이 폭발하는 곡! 아. 태원옹이라면 '하아~ 어린 학생이.... 인생을 알아. 과하지 않은 진실된 '비브라토!!!' 라고 했을테죠.

제가 좀 더 발랑 까진 여학생이었다면 우리조 언니 뿐 아니라, 이 오빠의 주소는 꼭 알아내고 싶었는데 후후

새로운 경험을 마치고 3일 전 출발했던 백화점으로 버스가 도착하고, 약속대로 엄마, 아빠를 기다렸는데
어찌어찌 길이 어긋나서 서로 한참을 헤매이다가 상봉을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기다리라는데서 안 기다렸다고
엄청 화를 내시고, 지하 스낵 코너에서 만두인가? 를 우걱우걱 먹고 집으로 돌아왔던 봄방학의 어느 날이 기억나요. 사실 <거리에서>는 가을에서 스산한 겨울로 가는 계절에 더 어울리는 곡인데,
그 때 그 오빠 덕분에 저는 어중간한 계절 2월에도 종종 생각이 나더군요.

그 때 그 오빠는 지금은 어데서 무얼 할까요?
어쩌면 82님들이 흉보는 누구네 집 애 아빠일지도요 ^^;;;;

IP : 59.10.xxx.142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깍뚜기
    '11.2.27 4:32 PM (59.10.xxx.142)

    김광석, <거리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0og_yeZxX6E

  • 2.
    '11.2.27 4:38 PM (211.44.xxx.91)

    그때 조숙했다 보여지므로 지금도 묵묵히 잘 살고 있을것같어요

  • 3. 하악
    '11.2.27 4:45 PM (121.130.xxx.42)

    깍뚜기님과 추억의 책장을 함께 넘겨 봅니다.
    깍뚜기님이 저보단 한 10년 어릴텐데요.
    전 대학교때 갔던 스키캠프에서 저한테 마지막밤 엄청 대시했던 남학생이 있었으니..
    암튼 결혼할 남자 아니면 절대 안사귄다던 맹추 중의 맹추였던 전
    그애가 싫지는 않았지만 결혼할 정도로 멋져보이진 않았던지
    전화번호도 안알려주었고 함께 타고 오던 관광버스 안에선
    겨울빠~다로~~~ 그대와 달려가고파하~~
    파도가 숨쉬는 곳에~ 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넘치는 기쁨을 안고
    푸른하늘의 겨울바다가 흘러나왔고요.
    지금도 겨울바다 노래 들으면 그때의 추억이 스쳐지나갑니다.

  • 4.
    '11.2.27 4:50 PM (211.192.xxx.78)

    비 라는게 묘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도해주구요..
    깍뚜기님 좋은 시간 보내셔요...

  • 5. 깍뚜기
    '11.2.27 5:18 PM (59.10.xxx.142)

    음님 / ㅋㅋ 현실적인 답변... 아마 그렇겄지요. 아~

    하악 / 그 때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주지 그러셨어요~ 아쉽네요 ㅎㅎ

    비 / 맞아요. 맘까지 적셔질라 그래요 ㅠ

  • 6. 앰버크로니클
    '11.2.28 2:06 AM (222.120.xxx.106)

    오,거리에서와 겨울바다가 다 추억의 노래인 저.. 그리고 추억좋아하는 저.......혼자 추억에 젖네요.
    위에 비님.^^ 비 라는게 묘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도해주구요... 이 말, 좋네요...ㅠㅠ

  • 7. 깍뚜기
    '11.2.28 3:17 PM (122.46.xxx.130)

    앰버님에게도 추억의 노래셨군요 반갑긔~
    허나 팬밋에 가신다니 그게 더부럽네요~~~

  • 8. 앰버크로니클
    '11.2.28 6:53 PM (222.120.xxx.106)

    나이대나 지역대를 보면 절대로 울 동방이는 그님이 아니겠지만 울 동방생이 김광석의 몹시 팬이네요..^^ 현재는 샤퐈로 제가 세뇌중;; 팬밋은 일찍?끝나니, 문득, 그날 저녁 파뤼 번개라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ㅎㅎ(한번 나가서 많은 볼일?을 보고자 하는 하드보일드;감성의 건어물녀 앰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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