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역전승
2004년 재선에 성공했을 때 어렵게 역전을 했는데요.
그로부터 10년 뒤 또 한차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옵니다.
2014년 남편은 4선 의원에서 전남 도지사에 도전했어요.
고향인 전라도에서 국회의원을 해왔고,
도지사 역시 같은 지역인데 뭐가 어렵겠냐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 번도 쉬운 선거는 없었습니다.
도지사 선거의 경우에는 상대 후보가 워낙 오래 터를 다져왔기 때문에 전망이 좋지 않았어요.
여론조사에서도 계속 지는 걸로 나왔고요.
경선을 두 달 앞두고 남편은 의원직 사퇴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는 초인적으로 현장을 다녔어요.
저도 함께 현장을 다녔는데요.
그 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집에 와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손 편지를 800장 정도 썼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으니,
정성이 지극하면 유권자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를 쓰고 다녔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좌진들 얘기를 듣자 하니 남편이 차에 들어와 울기도 했다네요.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남편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 시내 싸구려 원룸에서 지냈어요.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그게 피부에 달라붙어요.
안 그래도 곰팡이 같은 내 인생.
여론조사에서 졌고 현장 투표에서도 무지하게 불리했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뒤집혔습니다.
경선 결과가 발표된 2014년 5월 10일,
이낙연 후보는 47.6% 주승용 후보는 44.2%로 3.2% 차로 누르고 선출됐지요."
그리고 남편은 승리에 취해선 안 된다면서 더 열심히 주민들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 결과 본선에 가서는 77.95% 전국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됐지요.
당선 소감에서는 이런 포부를 밝혔습니다.
"좌우명이 근청원견(近聽遠見), 즉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입니다.
도민 여러분의 말씀을 가까이 듣고,
그 말씀을 정책에 반영할 때는 멀리 보면서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건, 근청원견의 자세로 하겠습니다.
당선 첫날의 마음이 임기 내내 이어지도록 저 자신을 채찍질하겠습니다."
초심을 잊지 않는 사람, 바로 제 남편입니다.
41년을 살면서 어쩌면 저렇게 변함이 없을까 해요.
어렵던 도지사 선거에서 역전승할 수 있던 힘도 한결같은 태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만의 착각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