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오늘 쑥 가래떡을 할 쑥과 쌀을 준비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끝내고
이제 방앗간에 떡을 맡기러 갈 시간인데
참으로 오랫만에 만사가 귀찮아 지고 움직이기 싫어
집에서 25km 거리에 있는 읍내 떡방앗간에 가는 일을 미적거리디가
오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없이 읍내 방앗간에 가서
준비한 삶은 쑥과 불린 쌀을 맡기고 왔다.
그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거거릴 정도로 오래 전에도
오늘 아침과 같이
만사가 귀찮아 지면서
손발을 움직이기조차 싫을 정도로 귀찮던 때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이 귀찮아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에 들기도 했었다.
쑥과 쌀을 가지고 읍내 방앗간에 가는 동안에도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거지?"
이번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한진 조중훈회장의 죽음이 생각나면서
재산이 수 십조 라는 국내 굴지의 재벌가 회장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가는데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이처럼 억척을 떨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재산이 넘치는 사람들이야 죽으면 묘역을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갖은 석물을 세워 죽은 후 에도 자신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죽어 땅 속에 묻힌 시체에게 그런들 어떤 의미가 있을가?
소수 부가 넘치는 사람들을 빼고
대부분 다수의 사람들이
전에는 죽어도 몇 평 땅을 차지하고 누워서
해마다 철이 되면 후손들이 벌초를 해주는 보살침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 평 땅도 차지하는 것도 사치여서
죽으면 불에 태워져 작은 용기에 담아져
생전 한번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닭장처럼 만들어진 작은 칸에 넣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화장후 한줌의 재가 되어
이름도 모르는 산야나 흐르는 물에 뿌려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사람이 살다가 갈 때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빈손으로 가는 것을
마치 생전에 얻은 것들을 모두 가지고 가기라도 할 것 처럼
그리 욕심에 쩔어 한시도 쉬지 못하고
억척을 떨어대며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지
세상 모든 일이 참으로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삶은 쑥과 불린 쌀을 방앗간에 맡기도 돌아 오니
오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이 무슨 변덕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