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께. 이거 정말 재밌어. 아마 웃다가 턱이 빠질지 몰라."
하지만 잔뜩 기대만 부풀려놓고 웃기지 못했을 때의 비참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 같은 썰렁함이 반복되면 나중엔 아예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어 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유머는 늘 닌자처럼 아무도 모르게 숨어들어야하고, 깨끗이 뒷마무리를 하고 재빨리 사라져야 매력적인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종종 한 유머 한다는 강사들조차도 정말 맛없게 유머를 구사하는 걸 보곤한다.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이는 맥주의 김 빠지듯 유머의 김도 빠지는 소리다. 이 같은 헤프닝 멘트는 반전의 효과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듣는 사람의 과도한 기대심리를 부추기거나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야구경기를 할 때 "내가 인코스로 약하게 던질 거니까 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상대가 예측 가능하게 하는 유머, 내가 던질 거라고 미리 다 알려주고 시작하는 유머는 이미 생명력을 잃은 유머다.
아울러 유머를 마치고 나서 다음과 같은 뒷북도 절대 치지마라.
"재밌죠?"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재미를 짜내는 이 말도 하수가 쓰는 전형적인 멘트다. 유머의 문을 열고 닫는 데는 경험이 필요하다.
앞북과 뒤북을 치지 않고 즐겁게 유머를 쓰는 방법을 살펴보자.
첫째, 유머의 도입은 슬며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유머는 상대의 판단하는 뇌가 작동하기 이전에 치고 빠져야 한다.
둘째, 짧게 하라.
제발 군더더기의 유머는 버려라. 그리고 유머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듣는 사람이 듣고 있는 건지, 이해하고 있는 건지 확인하지 마라. 상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머를 설명하는 사람을 만나면 갑갑해진다.
셋째, 혼자서 뒤집어지지 마라.
유머를 한다고 하면서, 혼자서 뒤집어지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유머를 생각만 해도 고꾸라지는 사람들 중에는 감성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유머의 전략을 상대에게 완벽하게 노출하는 것과 같다. 거울을 보면서 유머 연습을 하면 최소한 혼자만 웃고 마는 김빠진 유머를 피 할 수 있다. 내게는 죽고 못사는 히트곡이라 할지라도 상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유머 스타일 최규상 지음 중에서
유머
전주 김씨 김정일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생전에 김 대통령을 모시고 민주화 운동을 했고. 감옥에도 갔으며, 또 그분이 집권한 정부에서 공직을 맡았던 나로서는 이번의 <김대중 자서전>출간이 여간 반갑지가 않았다. 내가 잠시나마 그 간행위원장으로 기획, 검토에 참여를 하고 줄곧 어깨너머로 그 진행을 지켜봤던 터라 더욱 그러하다.
한 지도자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그처럼 주인공 자신의 방대한 자료 확보와 치밀한 구술, 그리고 여러 번에 걸친 직접 검토, 수정을 거치는 예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면밀한 과정을 거쳐서 책이 상재 되었다. 준비에 착수한 지 6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만큼 내용의 정확성도 담보되었다고 할 것이다. 자서전이 나오자 언론에서는 미처 그 방대한 내용을 다 파악할 겨를이 없어서인지 화젯거리 중심의 기사를 실었다. 그중에는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 때 김 대통령께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오간 입씨름이 소개되었다.
김 위원장이 '대통령께서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라고 말하자 김대통령은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라고 농담으로 응수를 하였다는 것 매우 유쾌한 반격이었다. 생전에 그 말씀을 직접 들었을 때, 나는 김대통령의 수준 높은 유머 센스에 다시금 놀랐다. 그리고 "전주 김씨"와 관련된 방북 전의 작은 일 하나가 생각났다.
내가 전주 쪽에 부탁해 전북 김제 모악산에 있는 김정일 위원장 조부의 묘(사람들은 "김일성 주석의 시조 묘" 라고 했다) 의 사진과 자료를 챙겨 가지고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께 직접 드리면서 "혹시 평양에 가셔서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하시는 가운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 혹여 내가 드린 그 자료가 김 대통령의 유머성 공방(?)에 일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훗날 나도 기분이 좋았다.
김대통령은 해학이나 유머 센스가 대단하신 분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거의 타성적 언어 수준에 안주하고 있는데 비하면, 김 대통령의 언어 구사는 직구 일변도를 벗어난 노련함과 묘미를 담고 있다. 그 분은 대중연설에서나 공사 간의 좌중에서 가끔 사람을 편하게 웃기시곤 했다. 나도 거기에 화답할 겸 또 분위기를 생각해서 가끔 우스갯말을 하곤 했다.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한 변호사, 오늘은 뭐 좀 없느냐?" 라고 나의 유머를 유도하신 적도 있다.
내가 감사원장에 지명되자 여러 언론에서 김 대통령과 나와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몇 시간이고 터놓고 토론을 하는 사이"라느니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라느니 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천하에 '불경하고 무엄한 "오보였다. 그 분 앞에서 사람들이 굳어 있거나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 되어 있을 때에도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말을 하고, 그러는 가운데 우수갯말도 자연스레 하는 편이긴 했지만, 결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론의 과장벽은 그것이 호의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폐단은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김 대통령 내외분께서 전북 새만금 지역을 방문하셨을 때 나도 수행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 한 지역신문에 두 분께서 쌍안경으로 먼 데를 보시는 사진이 크게 실렸다. 그런데 사진 설명이 가관이었다.
"새만금을 시청하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부인 권양숙 여사"
미처 그 오보를 모르고 있던 인사들이 내 "족집게"에 깜짝 놀라며 파안대소를 했다. 나는 말했다. " 이 오식으로 두 분 아닌 네 분이 언짢으시게 되었다." 웃고 넘어가면 그 뿐인 이야기 이지만 나는 전주 일정 내내 내외분께 그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전주에 머무르시는 동안 대통령 내외분께서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셨고,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환하게 웃으시곤 했다. 이제 우리 지도자의 그런 웃음을 영상이니 사진에서 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그 어른에 대한 악담에 딱 한 번 그럴 듯한 반격을 가한 일이 있다.
"김대중이가 노벨 평화상을 탄 것은 개도 웃을 일이다"
라고 어떤 거물급 인사가 악담을 했다. 이 말을 놓고 여러 사람들이 격분한 좌중에서 내가 말했다.
"웬만한 일이면 사람들만 웃었을 텐데, 얼마나 기쁜 일이면 개까지도 웃었겠느냐?"
그 자리에 있던 한 분이 그날 밤 집에 돌아가서 자기 집 개에게 이렇게 물었더란다.
"그 때 너도 기뻐서 웃었냐?"
유머 수첩 한승헌 변호사 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