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지났지만 얼마전에야 알았어요.
추석 며칠전, 직장동료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한복이 필요하니 초3인 우리 아들 한복있으면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7살인 그 아이는 나이에 비해 많이 뚱뚱하고 덩치가 커서 초2~3 사이즈가 맞을만도 했거든요.
그런데, 원래 제가 그런거 좀 가리는 성격이라서 사실 남에게 뭐 빌려쓰는 것도 안 좋아하고 빌려주는 것도 좀 꺼리는 편이
어서 내키지 않았지만 거짓말도 못하는 성격에다 둘러대지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알았다고 했어요.
금요일 오전 유치원 추석 행사에 입힐건데 제가 토요일에 지방에 있는 시댁에 갈거라서 그냥 당일날 바로 달라고 했어요.
평소의 그 직장동료를 봤을 때 빌려입은 한복을 드라이해서 돌려줄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아서(사람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
라 금전적으로 좀.. 많이... 아끼려는) 그냥 내가 하더라도 바로 받는게 낫겠다 싶었어요. 혹, 드라이라도 해서 돌려주지 않
을까하는 기대를 하고 천천히 돌려줘도 좋다고 얘기할까 생각도 해 봤는데 추석때도 또 집에서 입힐 것 같아 그것도 내키지
않더라구요. 그냥 드라이 해줄거라는 기대는 포기하고 당일날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당일날 오후에 돌려받고 울 아들 추석 때는 한복을 안입고 설에만 입어서 받은 그대로 쇼핑백을 옷방 구석에 놓아두
고 시댁에 내려가 추석을 지내고 왔습니다.
그러고도 여러 날이 흘렀죠. 2주전엔가 계절옷을 정리를 하다가 방 한쪽 구석에 놓아둔 쇼핑백에서 한복을 꺼내 드라이는 맡
겨야 할지 그냥 걸어둬도 될지 보려는 순간~! 옷은 전체적으로 심하게 구겨져 있고 앞판과 바지에 얼룩덜룩 기름기가 막 묻
어있더라구요. 직장동료의 아들과 울 딸이 같은 유치원을 다녀서 딸에게 추석날 한복입고 뭘 먹었는지 물었습니다. 기름이
번지지르르하게 묻어있는 송편을 먹었답니다.
속상해서 드라이 맡겨야겠네 하며 다시 보는데 고무밴드처리된 한복바지허리가 밴드의 기능을 상실하고 그냥 일반 띠처럼
탄력성을 잃고 끊어져 있어 허리부분이 어른허리만큼 쫘악 펼쳐져 있었습니다. 황당하고 화가 조금 나기도 해서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복바지를 보여주는데 또~! 바지 가랑이가 십자로 10센치 이상 완전 쫘악 뜯어져 있었어요.
완전 3단콤보로 충격!!! 옆에서 남편은 어쩌겠냐면서 할 수 없지라고 하는데 저는 기분이 누그러지지 않더라구요.
역시 빌려주는게 아니었어요..... 후회, 또 후회하며 한복 한 벌 버린셈 치자하는데도 소심한 이 마음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
네요. 수선해달라고 말할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직장동료에게 말해 뭐할까 싶기도 하고, 남의 물건 빌리고 확인도 안하고 돌
려준 그 직장동료가 참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냥 한복 한벌 버렸다 생각하고 말 안하는게 낫겠죠? 2주가 지났는데도 그 직장동료만 보면 망가진 한복이 생각납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