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대학 연설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늘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과연 오늘 하려는 일을 하고 싶어 할까?' 그리고 너무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때는 뭔가 달라져야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제가 곧 죽을 거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기대, 자부심, 좌절, 실패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일 테니까요. 죽음은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에 길을 내어줍니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자기 삶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결과에 맞춰 살아야한다는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파묻혀,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잃지 마십시오.
용기를 갖고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스스로가 진정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스티븐잡스 스탠포드 연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세계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졸업식을 맞게 되어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대학 졸업식에 이렇게 가까이 와본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오늘 저는 인생을 살며 격었던 세가지의 이야기를 여러분꼐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단지 세가지 그뿐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는 점(the dots) 을 잇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대학을 6개월 다니다 자퇴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18개월 정도를 청강생으로 지내기는
했습니다만, 그 후엔 정말로 관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ve got an
unexpe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이것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입니다. 저의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죠. 저의 생모는 제가 학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입양되기를 너무나도 강렬히
바랬기때문에, 모든 상황은 제가 어느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될것처럼 맞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타난 그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여자아이였다는 결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래서 대기하고 있던 저의 부모님은 한밤중에 이렇게 묻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우리는 기대하지
못했던 남자아이를 가졌습니다. 혹시 생각 있으신가요?" 부모님은 대답하였습니다. "물론이죠"
저의 생모는 후에 저의 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과, 저의 아버지가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입양계약서의 마지막 사인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녀는 몇달이 지나 저의 부모님께서 저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았을 떄, 마침내 동의하게 되었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그리고 17년 후에는 저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거의 스탠포드만큼이나
학비가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그래서 노동자셨던 부모님의 모든 저축은 저의 등록금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여섯 달 뒤에, 저는 그곳에서 아무런 가치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고, 어떻게 대학이 이를 알수 있게 도움을 줄지에 대해서도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제 부모님이 평생을 모아둔 돈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고,
모든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겁이 났지만, 돌아보면 이는 제가 해왔던 최고의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대학을 그만두자마자 저는 흥미가 없던 필수 과목을 듣지 않을수 있었고, 훨씬 더 흥미롭게 보이는 강의들을 청강할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s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친구방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음식을 사기 위해 5센트짜리 빈명을 모아 파는가 하면, Hare Krishna 교회에서 주말마다 주는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도시를 지나 7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곤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많은 것들이 매우 값진 것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리드 대학은 그 당시에 아마도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수업을 제공했던것 같습니다. 캠퍼스 곳곳의
모든 포스터와 서랍의 붙어있는 모든 라벨들은 아름답게 손수 서도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자퇴를 하였기 때문에 정규 강의를 들어서는 안되었지만 어떻게 이런것을 할수 있는지 배우기 위해
서예 강의드를 들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serif와 san serif 서체에 대해, 상이한 글자 조합사이에서
변하는 공간의 양에 대해, 그리고 무엇이 훌륭한 조판을 만드는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흉내낼수 없다는 점에서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오묘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이것들 중 제 인생에 어떤 실용적인 응용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가망이 없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십년 후에,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하고 있을 떄, 이 모든것은 제게 되돌아 왔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것을 맥안에 설계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활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그 과정을 도강하지 않았다면, 맥은 결코 다양한 활자체나 비례적인 간격의 폰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윈도우는 단지 맥을 카피했을 뿐이기 때문에, 어떤 PC도 지금 같지는 않았겠죠. 제가 자퇴하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그 서체 수업을 도강할 수 없었을 것이고, PC는 아마도 지금 가지고 있는 놀라운 활자조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때는 미래를 바라보며 그 점들(the dots)을 이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년뒤에 뒤를 돌아보니 이는 너무나, 너무나도 명료하였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ould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
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결코 앞을 내다보며 그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보며 그것들을
연결할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 점들이 미래의 언젠가는 이어질것이라고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배짱, 운명, 인생, 업, 그 무엇이든, 무언가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점들이 길을 이어줄 것이라는 믿음은, 심지어 그것이 낡은 길로 시작할 때에도,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의 가슴을 따르는데 있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영향도 끼치게 될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제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t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제가 사랑하는 일을 일찍 찾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워즈니악과 저는 20살 때 제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하였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십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단 둘 뿐이던 회사에서
4000여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20억 달러짜리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떄는 우리 최고의 창작물인
매킨토시를 막 출시하기 일년 전이었고, 저는 겨우 30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전 해고되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가 될수 있을까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할 떄 우리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하는데
아주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고용하였고, 일년여 동안은 모든것이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곧 우리가 가진 미래의 버전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이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어주었죠. 그래서 전 서른에 쫏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말이죠. 이렇게 되자,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제 모든 사람의 초점은 사라졌고, 파괴되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몇 달 간 저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정말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선배 세대의 기업인들을 실망시켰다고 느꼈고,
제게로 넘어온 바통을 놓쳤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이렇게 까지 일을
망쳐 논 것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저는 아주 공적인 실패자여서, 심지어 실리콘 벨리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천천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사건의 전환은 그것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되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결정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제게 일어난 일 중에서도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의 무게는
초심자의 가벼움으로 다시 대체되었고, 모든것을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저를 제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던 것입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r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다음 5년동안 저는 넥스트라는 회사와 픽사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된
아주 놀라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죠. 픽사는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건의 전환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했습니다. 저는 애플로 돌아갔고,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심장부에 있습니다.그리고 로렌과 저는 아주 멋진 가족이 되었죠.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rient needed it. Sometimes lifes can hit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Don't settle.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 모든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주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인생에서 한방 크게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믿음을 잃지 마세요. 저는 저를 지탱해준 유일한 이유가 제가했던 일을 사랑한 것뿐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때처럼 일에 대해서도 진실입니다.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죠.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안주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이, 찾게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관계라는 게 그렇듯이,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좋아지게 됩니다. 그러니 찾으세요,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do t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ce something.
17살 때, 저는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옮게 될 것이다." 저는 이 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33년 동안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과연 오늘 하려는 이 일을 하게 될까?"
너무 많은 날을 연달아 "아니"라고 대답하게 될때면, 저는 무언가 바뀔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f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내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결정의 순간에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거의 모든것들, 외부의 기대, 자존심, 실패의 두려움과 같은 것들은 죽음의 순간에서는 사라지고 진정 중요한 것들만이 남게 됩니다. 죽게 될 것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제가 아는한, 무언가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의 덫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노출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따르지 말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and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일년전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30분에 초음파 검사를 받았죠. 췌장에 분명히 종양이 있는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췌장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치유할 수 없는 암이 거의 확실하다며,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제 주치의는 집에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는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사들의 표현입니다. 이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주어야 할 말을 단 몇 달안에 끝내라는 뜻입니다. 또한 가족들이 가능한 쉽게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나아가 작별인사를 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were from of pancreatin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gery and thankully I'm fine now.
저는 하루 종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이 지나고 저는 생체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제 목에 내시경을 넣고 위와 내장을 통해 췌장에 바늘을 꽃아 조직을 때어냈습니다. 저는 침착했지만,
거기 있던 제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을 통해 조직을 검사했을 때, 환호를 질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암은 수술로 치유가 가능한 아주 드문 종류의 췌장암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이제는 좋아졌습니다.
This was the close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 십년간 이 이상 더 가까이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일을 겪으며, 죽음이 유용하지만 순수하게 지적인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 입니다. 누구도 이를 벗어날 수 없었죠. 죽음은 훌륭합니다. 죽음은 삶 유일의 최고 발명품이기 떄문입니다. 이는 삶을 바꾸어주는 매개입니다.
이는 새 것을 위해 헌 것을 정리해줍니다. 지금 당장은 그 새 것은 여러분이지만, 언젠가 오래 지나지 않아 점차 헌 것으로 될 것이고, 정리될 것입니다.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 죄송하지만 이는 분명한 진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결과를 수용하는 도그마의 덫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의 소음이 여러분 내분의 목소리를 잠식하게 놔두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정말로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밖에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rom, 35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때, 제 세대에게 성경과도 같은 '전 지구 카탈로그' 라는 아주 굉장한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학자가 만든것인데, 그 분은 여기 멘로 공원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십니다. 그는 이 책을 그의 시적인 감성으로 소생시켰습니다. 이는 개인용 컴퓨터와 컴퓨터출판도 없던 1960년 후반이어서, 타자기와,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어 졌죠.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
종이로 만든 구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책은 이상적이었고, 깔끔한 도구들과 훌륭한 개념들로 넘쳐흘렀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s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ng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전 지구 카탈로그'를 여러 판으로 내 놓았고, 모든것이 완성되었을 때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이때가 1970년 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최종판의 뒤에는, 모험을 즐긴다면 히치하이킹을 할 것만 같은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이렇게 문구가 있었죠. "늘 배고프게, 늘 어리석게.(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책을 끝맺기 위한 그들의 고별사 였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을 위해 항상 이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바라겠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