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의 봄.
나는 재수끝에 대학생이 되었다.
겨울의 묵은 옷들을 벗고 상큼한 색의 외투로 갈아입고 신입생이 되었다.
아직은 친구도 없고 수업시작 전 그저 혼자 교정을 거닐다가 시간이 많이 남아 학생회관 2층 매점 창가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었다.
첫번째로 핀 목련이 너무 아름다왔던 봄날 .. 나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곳에서 4년동안 나는 누구보다 멋진 연애도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나갈 꿈을 꾸었다.
훨훨 자유롭게 살고싶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걸 느꼈었다.
그런데 그날 그 아침에 한무리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학생회관 밑으로 집결했다.
독재타도 농민해방 노동자세상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건 기억하지 못하겠다.
하여간 이것조차 대학의 낭만 같아서 열심히 창밖을 들여다 보고있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한 2~30분 떠들고 떠난 자리가 신문지와 유인물로 엉망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FM의 대명사였던 나는 그들이 좀 이해가 안되었었다. 아니 자기자리에 있던거 들고가면 될것을 왜 저렇게 엉망으로 만들고 가나.. 대학생이 왜저러지? 이해가 안되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늘상 있는 일인양 그 자리를 치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이드신 청소하시는 아저씨 아주머니셨다.
나는 정말 너무 당황스러웠다.
뭐지? 가난한 노동자의 편에 서겠다던 대학생들이 싼똥을 지금 누가 치우고 있는거야?
말만 저렇게 하지 깊은 내면에는 우월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건 아닐까?
안그래도 우리집도 운동권 언니때문에 온집안이 엄청 힘들어하고 있었던때여서 그런지 난 도무지 저 모습이 좋게 보여지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한쪽만 보았던 것이 맞다.
그들의 희생과 아픔을 하나도 몰랐다.
인생에는 답이 없는 순간이 참 많더라.. 하지만 내가 본 그 순간은 그냥 내 기억에 오래 오래 남게 되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그날 아침에 내가 꿈꾸던 그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4년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던건 맞는것 같다.
그때의 내속에는 늘 몽글몽글 사랑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내눈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필터가 씌워져 있었기에 그 시절만큼 사랑으로 가득찼던 시간은 없는것 같다. 자식을 낳아서 키울때도 행복하고 사랑으로 가득찼다고 느꼈지만 색깔이 다른 시간들인것 같다.
핑크색과 병아리색으로 구분된달까...ㅎㅎ
지금의 내 생활이 너무 회색같아서 용기를 내 밖으로 나가봤다.
아.. 세상은 어느새 벚꽃이 점령한것 같이 보였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에게도 잊지않고 찾아와주는 봄이 너무너무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