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선생님을 보내며,
-국민주권정부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축하보다 성찰이 많아야 오래간다.
승리의 순간보다 권력을 쥔 이후의 태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사이 김병기, 강선우의 모습과 정청래 대표의 일방적 합당논의 등은 민주진영을 상당히 불편하게 한다.
이해찬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니라, 민주진영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해찬은 민주주의를 낭만으로 말하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박수받는 개혁보다 욕을 먹는 제도를 택했고, 순간의 인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작동하는 구조를 고민했다.
그의 정치가 때로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민주주의를 감정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민주주의의 계보는 분명하다.
김대중이 민주주의를 목숨으로 지켜냈고,
노무현이 민주주의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번역했다면, 이해찬은 민주주의가 사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 안에 고정시키려 했다.
이재명 정부는 혹독한 조건 속에서 출범했다.
검찰권의 정치화, 언론의 불균형, 극단화된 사회 갈등 속에서 민주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개혁을 요구받고, 동시에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이 지점에서 이해찬의 정치가 남긴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민주정부는 무엇으로 스스로를 절제할 것인가.
개혁의 명분인가, 절차의 정당성인가.
속도의 정의인가, 지속 가능성의 정의인가.
이해찬은 늘 후자를 선택했다. 그는 개혁이 옳다는 확신보다, 개혁이 무너질 때 남길 상처를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의 통치가 아니라, 그 의지가 사라진 이후에도 작동하는 불편한 장치들의 집합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 민주진영 내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다..“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우리는 예외다”라는 착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민주정부가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때,
민주주의는 가장 빠르게 신뢰를 잃는다.
이해찬의 정치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것이다. 민주진영은 언제나 자기 내부를 먼저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언어가 거칠어질 때,
비판을 배신으로 오해할 때,
성과를 이유로 절차를 생략하려 할 때,
그는 늘 “그렇게 하면 민주주의가 상처받는다”고 경고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추모는 눈물이나 찬사가 아니다. 그가 불편하게 만들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 드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는 강해야 한다.
이해찬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성공을 축하하기보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부터가 더 어렵다.”
민주주의는 혁명으로 시작되지만,
제도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제도는 언제나 권력을 쥔 이들 스스로의 자기 제한 위에서만 살아남는다. 이해찬은 그 불편한 자기 제한을 평생 실천한 정치인이었다.
그를 보내며 민주진영은 다시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기준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찬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의 마침표이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 페북에서 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