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정호승]
당신은 축하해줘야 한다
나는 이제 내리막길을 내려가게 되었다
늘 오르막길만 오르던 나를
단 한번도 축하해주지 않은 당신은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는지 잊어버리고
다정히 내 손을 잡아줘야 한다
오르막길은 결국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을 굳이 올려다볼 필요는 없다
오르막길은 숨 가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빨리 올라갔지만
내리막길은 천천히 길가의 꽃을 보며 걸어가야 한다
내리막길에도 오솔길이 있고
산새가 날아가는 작은 암자도 있어
공양미로 갓지은 쌀밥 한그릇
부처님과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람은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가 가장 아름답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내리막길을 감사하며 천천히 내려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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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에서 잠깐, 창비,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