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넘어가니 약속이 없다는게 두려움보다는 자유로움입니다. 처음에는 만들어 놓은 관계들이 사라지는게 두려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좋은데요
오늘은 감기 기운이 있어 하루를 늦게 시작합니다. 보통은 아침에 8시쯤 일어나, 안마의자에 누어 음악 들으며 따뜻한 차 한잔 마십니다. 요즘은 80-90년대 가요가 귀에 감기네요. 정작 80-90년대 중고등 시절에는 스킵하던 다섯손가락도 좋고, 조덕배도 좋습니다.
30분 쯤 누워 안마의자로 근육 풀고, 커피 내려서 거실이나, 데크에 앉아 주식 확인 좀 하고, 뉴스 좀 봅니다. 그리고 소소한 취미로 잔뜩 주문한 중고 서적을 뒤적 뒤적 합니다. 오늘은 렌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11시 정도에 운동을 가야하는데 오늘은 몸이 안좋아 건너뛸듯 합니다. 최근에는 1년 정도 수영하다가, 1년 정도 복싱하다가, 올해는 피트니스를 합니다. 관계들이 사라질 무렵, 요리에 빠져 점심은 항상 제가 만들어서 아내와 와인 한 잔씩 하곤 했는데, 요즘은 다시 먹고 사는 일을 좀 해야해서 많이 소홀하네요. 오늘 점심은 강아지를 무릎에 앉혀놓고 책 보고 있는 유일한 술 친구인 아내에게 불린 홍합을 넣은 미역국으로 부탁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커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대학생인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 대학 때 이야기로 빠졌다가, 돌아 돌아 나옵니다. 둘이 30년 가까이 했던 수다를 또 떨어도 재밌습니다. 식후 나르한 오후, 햇살이 좋건, 비가 오건, 쇼파에 누워 사르르 잠깐 졸다가 일어나 샤워하고 동네로 잠깐 일을 좀 보러 나갑니다.
저녁입니다. 7시쯤 아내를 동네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합니다. 어제는 숯불에 와규 한 점씩 구워가며 참이슬 한 잔씩 했습니다. 이러면 우리의 하루는 오늘도 다 갑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의 시간을 관계를 위해 썼으니, 이제 남은 모든 시간들은 '나와 가족을 지키는 것'에 쓸 듯 합니다. 82는 아내 아이디입니다. 이렇게 가끔 아내 아이디로 글 씁니다. 전업 주부인 아내가 제 잡글을 좋아해서요. 좋은 하루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