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윤, 양부남 의원 등이 발의한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의 취지는 좋은 것이지만 완벽하진 못하다. 119에서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하면 거의 모든 응급실에서 거부당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지금 아주 많은 것들이 개선돼야 하는데, 그 중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법안은 병원마다 응급실의 수용 가능 여부를 중앙 재난센터에 실시간 보고하고 그에 따라 119차가 병원을 찾아가도록 하겠다는 것. 이에 응급의학과 의사회는 가열차게 반대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데 무지하게 여러 이유가 있는데 대충만 써보련다.
1) 응급실 방문 환자가 다 응급 환자가 아님. 절반 이상이 비응급 환자이다. 예컨대 내가 인턴때, 눈에 티눈이 들어간 거땜에 응급실 온 노인이 있었다. 국민들이, 조금만 몸이 아프다 느껴도 응급실을 자가로 방문해 버리는 경향이 예로부터 큰 문제였다. (응급실 = 야간 진료 병원으로 인식) 이건 캠페인과 여러 가지 방책으로 인식을 점진 개선해야 할 문제다.
2) 응급실을 입원하기 위한 경로로 인식하는 노인 환자들이 아주 많다. 특히 여러 지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상급 종합병원에, 빨리 입원하고 싶어서 (패스트 트랙으로) 응급실을 활용하는 례가 줄지 않는다. (응급실 = 입원 패스트 트랙) 왜 이런 '얌체' 환자를 돌려보내지 못할까? 응급실에서 환자가 방문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퇴원, 귀가하게 될 경우 그 후에 생기는 문제를 전부 '퇴원시킨 의사'가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들은 (짜증나도) 그냥 입원시켜버리는 것이다.
위 2개 항목을 해결하려면 비응급으로 판단한 환자를 응급실의가 귀가시킨 후 의료적 책임을 제한하는 면책 법안이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같은 환경에서, 경증환자 가라 환자 줄이고 응급실 병상 및 인력을 진짜 응급 환자를 위해 보존시킬 수 있으니.
근데 그게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왜일까? 응급인지 아닌지를 현장에서 판단하는 게 굉장히 사실 어렵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오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 법원은 이런 경우에 의사에게 꼭 무거운 형사 책임을 지우는 경향이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형사상 유죄 확정된 의사는 해당기간 면허가 정지돼 버린다.
이러니 응급실에 야간에 들어온 가라 환자 경증 환자를 단 한 명도 못 돌려보내는 것이고 진짜 응급 환자는 뺑뺑이하다 길에서 죽는 것이다.
3) 응급의료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다. 병원 입장에서 별로 돈은 안 되고 맨날 사고나 잡음은 끊이지 않아 시끄럽고, 야간 근무를 시킬 의사와 의료 인력을 상주시키는 게 언제나 쉽지 않다. 이게 서울도 그럴진대 지방쪽은 더 말할 이유조차 없다. 지방일수록 야간 응급의료가 중요하다. 근데 안 그래도 재정이 빈약한 지방 의료기관들이 어떻게 야간 응급의료 인력을 과마다 죄다 상주시킬까? 지방일수록, 그리고 지방 중에서도 소도시나 농어촌일수록, 그리고 재정이 빈약한 곳일수록 사람 목숨은 쉽게 떨어진다. 말을 뒤집으면, 서울일수록, 돈이 풍족한 곳에서 살수록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뜻이 된다. 이건 국가 의료의 운영 행정이라는 면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응급의료가 24시간 팽팽하게 잘 돌아가는 나라는 그럼 어디에 있을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영국이나 독일같은 데는 이젠 많이들 들어서 알겠지만 응급실 가면 미친듯이 오래 기다려야 한다. 당장 쓰러져 죽을 꺼같아도 얄짜리가 없다. 거기는 무조건 순서 기다려야 한다. 한국같으면 "환자가 죽어가는데 안 봐주느냐"고 고래고래 호통이 터졌을 것이지만 그런 나라들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 날 샐 때까지 앉아 기다려도 자기 차례 안 와서 그냥 집에 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민원은 많다.
미국? 다들 알다시피, 진료비가 이건 뭐 쌩 날강도 수준이다. 강도가 아니라 아예 조폭 마피아 이상이다. 무서워서 119 못 탄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그냥 집에서 죽는다. 임종을 병원에서 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즉, 응급의료는 절대 완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걸 모두 인정해야 한다. TV 드라마에서처럼 모든 환자를 완벽히 타이밍 맞춰서 기가막히게 CT찍고 수술방 열고 마취팀도 다 준비돼 있고 이런 셋팅에서 백프로 환자를 살리는 그건, 현실과는 아주 아주 거리가 멀다. CT도 수술방도 병상도 다 엉뚱한 사람들이 쓰고 있는 게 한국의 종특 현실이다.
어느 나라도 어느 국민도 자기네 응급의료가 100점이라고 치켜세우지 못한다. 이게 정말로 잘 구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왜냐 하면 응급의료에 대한 문화와 시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응급실 = 야간 진료 + 입원 패스트 트랙 이라는 이 시각이 빨리 바뀌어야 한다. 그런 국민들의 인식만 바뀌어도 뺑뺑이 엄청 줄일 수 있다. 둘째는 지금 김윤 의원 법안도 물론 필요하다고 보지만, 응급 환자 귀가 처리시 형사 처벌을 면책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이게 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응급의학과 지원자가 갈수록 외면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특별법으로라도 상정시켜야 한다고 본다.
의원들도 판사들도 이에 대한 바탕 인식들이 필요하다. 그들 자신들도 응급실 뺑뺑이 돌다 죽을 수 있다. 인식과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중앙 관제센터에서 이걸 데이타화하고 119차 시스템망 완성한다 해도, 그래도 사람들은 길에서 계속 죽을 것이다.
※ 이주혁 키스유성형외과의원 페북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