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세미나에 다녀와서
어제는 울산 자재병원 호스피스 역량강화 교육과 봉사활동, 오후에는 호스피스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다.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어제도 예외 없이 12시 30분경에 35세 젊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병원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420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루에 한 명 이상이 죽음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법을 전수한 용수보살이라는 성인에 따르면 첫째 수명을 다해서 천수를 누리는 경우, 두 번째는 악업과 악업이 만나는 경우, 세 번째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입니다.
이곳에서 수 천 명의 임종을 돌보고 있는 능행 스님의 말에 의하여 요즘은 천수를 누리는 자연사의 경우는 극히 드물고 두 번째 죽음인 악업과 악업이 만나 몸이 감당하지 못하여 질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잘 살았던 사람이 잘 죽는다. 는 말은 진리입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보면 죽을 때는 성직자나,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이나 일반인들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느냐만이 죽음의 터널을 건너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게 되고, 잘 죽어야 다음 차원으로 잘 이어지게 되는 서로 깊은 연관이 되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세상을 떠난 어느 스님들의 죽음의 과정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유명 사찰에 있던 스님 두 분(도반스님) 이 같이 말기 암 환자로 입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분은 3층 병실에 있었고, 한 분은 1층 병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3층 도반 스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1층에 입원해 있던 호스피스 환자 스님이 죽는 것이 두려워 다른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더 받겠다고 퇴원을 했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30년이 넘는 동안 선방에서 수행만 했던 수행승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찰에서는 최고의 수행력을 가진 스님으로 알려진 분들인데도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일반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는 승속이 따로 없습니다. 이 우주는 철저한 인과의 세계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이 법칙에 순응하며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만이 그 자유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좋은 사람과 좋은 기운을 나누고, 서로 힘이 되는 관계 속에서 살다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꿈이 아닐까요.
선종(仙終)은 먼저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선하게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선(仙)하게 죽는다는 것은 하늘은 뜻에 따라 자연의 순리에 맞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죽은 것을 말합니다. 다시 한번 깊이 새겨 보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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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블로거의 글이 인상 깊어서 여기에 올려봐요. 평생 선방에서 수행만 해왔던 조계종 스님도 죽음 앞에서는 솔직해지네요. 두려움에 떨고 나약해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스님들이 일반인들과는 다를 줄 알았거든요. 절집에서 흔히 ‘생사불이’를 수학 공식처럼 말하지만, 막상 죽음이 닥치면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인 것 같아요. 수행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죽음 앞에서의 차이가 정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언론에서 큰 스님들의 죽음을 미화해서 보도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