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 / 무념스님
한 친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가래가 끓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이런 젠장! 나는 20년 전부터 가래가 끓고 있습니다.”
은행알이나 도라지 스프를 먹기는 하지만,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지는 않는다.
또 한 친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이명이 생겨서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척추 교정으로 이명을 치료하는 유명한 분에게도 일주일에 한 번 가고 있어요.”
“이런 젠장! 나는 25년 전부터 귀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하더니,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40대에 암자에서 2년 정진하고 살았는데, 그때 김치하고 밥만 먹어서 영양실조가 와 이명이 생긴 이후로 지금도 그런 상태다. 그래도 아직 듣는 데는 지장이 없다. 물론 잘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고요?”라는 되물음에 상대방이 답답해하긴 하지만, 그게 뭐 나의 답답함인가? 상대방이 답답할 뿐이지.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어도 알아들은 체한다.
어차피 대부분의 말들이 별 쓸데없기 때문이다.
또 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갑자기 시력이 떨어진 것이 노안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민생지원금으로 안경을 맞췄어요.”
“이런 젠장! 나는 15년 전부터 돋보기를 쓰기 시작해서 자꾸 초점이 멀어져, 안경을 두 번이나 바꿨네. 그리고 나도 이번 민생지원금으로 안경을 다시 맞췄네.”
눈이 흐려지고 침침해져도 아직 걷는 데 지장은 없고, 안경을 쓰면 글을 읽을 수 있으니 나름 나쁘지 않다.
“한 손에 몽둥이 잡고 한 손에 대검을 들고
오는 늙음 몽둥이로 치고, 오는 백발 대검으로 치랬더니
늙음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런 시를 예전에 읽은 것 같던데….
늙어가는 것에 저항하고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대 의학을 빌려가면서까지 발악한다고 몇 년 더 사는 것도 아니고, 더 산다고 뭐가 더 좋을 일이 있겠는가?
더 산다고 뭐 특별한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오래 살면 추해 보인다.
쭈그러진 면상을 보면서 한숨만 더 나올 것이 아닌가?
난 병원 검진도 안 받은 지 십 년이 넘었다.
병원 검진하다가 암이라도 발견되면 그게 더 골치 아파진다.
늙으면 세포는 변이를 일으키고, 육체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닌가.
오줌발도 약해져 찔찔 나오고, 하수통을 자주 비워야 하는 통에 어디를 가든지 먼저 화장실 위치 파악이 전쟁터의 적 위치 파악보다 더 중요해졌다.
그래도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서 삶은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삶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봉급쟁이가 월급을 기다리듯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는 어느 성인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