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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많이 늙으셨어요

까칠마눌 조회수 : 4,185
작성일 : 2025-10-09 19:17:05

가끔 여기에 음식 솜씨 없는 양가 어머니 이야기로 웃음을 주었더랬죠. 

멀리 살다보니 그런 글은 늘상 명절에 만나고 온 뒤로 쓰게 되던.

욕하려는 거 아닌 거 아시죠?

 

양가 어머니들이 음식을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타고난 손맛을 탓할 수만은 없는, 너무도 가난했던 삶이

다양한 식재료를 구매해 이런 저런 요리를 하며 솜씨를 갈고 닦을 수가 없는 삶이었어요. 

무능한 남편들을 대신해 가정경제를 이끌어가자니 음식을 할 시간도 없었구요. 

한정된 재료로라도 뭘 해먹어볼까 이런저런 궁리를 할만한 여유가 없는 삶이었음을 제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애잔하고 애틋해서 웃을 뿐, 적어도 제게 있어 두분의 음식은 흉거리가 아니에요. 그분들의 치열한 삶에대한 증거니까요. 

 

그런 두 분이 키워낸 아들과 딸은, 그 치열했던 삶 덕분에 온갖 식재료 다 사다가 이것저것 요리할 수 있는 돈도, 시간도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네, 제가 요리 좀 합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도 없이 내려온 아들과 손주들을 거둬 먹이느라 진을 뺀 나머지, 

도저히 해 줄 음식이 없어 혼자 고민 끝에 카레를 하셨던가 봅니다. (미리 말씀드려요, 저 음식 해서 보냈습니다. 어머님이 애들 추가로 뭘 해 먹이고 싶으셨던 거죠.) 고기 감자 양파 당근 애호박;;;; 넣고 카레를 하기는 했는데, 

시판 카레 가루가 아니고, 어디 그 있잖아요, 할머니들 모아놓고 건강식품 파는 체험관? 그런데서 파는 100% 강황가루를 들이부은 거지요.....;;;; 시어머니의 언니분이 그 강황가루가 카레가루라고 이야기 해 주셨더랍니다.................. 뭐... 이후는 얘기가. 

 

아들과 손주들을 서울로 보낸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본인이 한 카레를 애들이 손도 안대는데, 너는 카레를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래서, 아, 어머님 저희 애들이 돼지고기 카레를 안먹어요, 했더니 소고기 넣었다, 양지! 하시더라고요. 아니 그럼 뭐 이상할 게 없는데... 했더니 강황가루. 그 강황가루.  카레가 걸쭉해 지지가 않던데, 갈분을 안넣어 그런거냐? 이러시는데 하하하, 어머니 그게 그게 아니고... 설명을 해 드렸더니 어머니도 웃고 마시고. 뭐 그랬죠.

 

남편은 처가에 들러 서울로 복귀했고, 애들이 우당탕탕 할머니집 카레 이야기를 하고, 저도 그냥 웃고,

친정엄마가, 돈 버느라 명절도 못내려온 딸 안쓰러워 명절 나물을 몇가지 싸서 보냈더라고요. 

일단 시어머니가 싸서 보낸 음식을 풀어 남편이랑 둘이 밥을 먹으면서 어머님 음식솜씨도 참.... 하고 웃는데, 남편이 그러는 겁니다. 난 그래도 있잖아, 나물 하나를 먹어도 울 엄마 나물이 맛있어. 장모님 나물보다. 

 

그 말에 그냥 웃었어요. 울 엄마가 그래도 제사를 40년 지낸 내공인데, 나물은 잘 하시거든요. 

제가 혼자 속으로 나물을 이만치 하는 사람이면 손맛이 영 없는 사람은 아닌건데, 쩝. 했으니까요, 예전부터.

(울 엄마, 갈비찜 엄두가 안나서, 명절 되면 갈비만 사 놓고, 제가 친정와서 조리하기만 기다리는 분이세요. 하하하)

그냥 입맛이라는 게 원래 자기 엄마한테 길들여 지는 거지, 우리애들 봐라, 돼지고기 카레 기겁하는 거. 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오늘, 엄마가 보낸 나물들 풀어헤쳐서 밥하고 먹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어요. 

나물들 간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안맞아요. 콩나물 하나 간이 딱 맞아서, 나머지 나물들이 더....

도라지는 혀가 아릴정도로 쓴데 짠맛은 하나도 없고,

고사리는 제대로 불려지지 않아 뻣뻣한데 짜기는 겁나 짜고

시금치와 초록나물은 어떤게 시금치고 어떤게 초록나물인지 모르게 둘 다 너무 푹 삶아 니맛도 내맛도 아닌데 음식을 짜게 한다는 강박때문에 소금을 너무 적게 넣어서 맛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그 나물들 먹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우리 엄마가 이제 정말 늙었구나, 간을 하나도 볼 수 없을만큼 늙었구나.

나물 하나를 먹어도 울엄마(시어머니) 나물이 맛있더라 하던 남편 말이 그냥 자기 집 입맛 말이 아니었구나 싶은게...

 

그냥. 

슬프네요. 

IP : 58.231.xxx.46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5.10.9 7:24 PM (218.52.xxx.55) - 삭제된댓글

    슬프네요.
    그래도 까칠마눌님의 예쁜 마음이 글의 결마다 스며있네요.

  • 2. 소망
    '25.10.9 7:37 PM (122.46.xxx.99)

    어머니 살아 계실제 같이 행복한 시간이 많으시길 빕니다.. 멀리 소풍 가 계시는 엄마 보고 싶네요.

  • 3. 그러게요
    '25.10.9 7:51 PM (125.178.xxx.170)

    전라도 출신 엄마
    진짜 모든 음식이 맛있었는데요.
    80넘어가는 어느 날부터
    맛이 예전과 많이 달라요.
    이번에도 반찬 몇 가지 싸줬는데
    그 좋아하던 것들이 맛이 없어요.
    슬프죠.

  • 4. 님.
    '25.10.9 9:33 PM (125.132.xxx.115) - 삭제된댓글

    글도 마음도 예쁘세요. 행복하세요!^^

  • 5. 님.
    '25.10.9 9:35 PM (125.132.xxx.115)

    글도 마음도 예쁘시네요..슬픈 글인데 글을 읽은 제 마음은 따숩습니다.

  • 6. ooooo
    '25.10.9 10:28 PM (211.243.xxx.169)

    그렇게 한 세대가 저물고 흘러가는가봐요

    원글님 글 사이사이 고운 마음이 느껴져서
    더 슬프네요

  • 7. 슬퍼요
    '25.10.10 1:57 PM (121.65.xxx.180)

    친정엄마 연세 82세, 몇 년 전부터 허리 때문에 힘들어하시다, 결국 허리 시술을 하셨더랬어요.
    그 후 좋아지기는커녕 계속 골절이 있는 거예요. 두 달 전에 두 번의 골절로 아무것도 못하시고 종일 누워만 있어야 그나마 회복이 빠르다고 해서 거의 종일 누워만 계세요.
    올 추석에 엄마가 한탄을 하시네요. 명절에는 유과, 강정, 김부각, 팥, 호박 양갱, 청포묵, 도토리묵도 직접 하고 하셨는데, 올 추석에는 손가락 하나를 까닥 못하시니 본인 스스로가 다 됐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런 엄마를 보고 있자니 저도 마음이 짠하고 그러네요.
    추석에는 손수 농사지은 고춧가루, 직접 짠 참기름, 볶음 깨 등등 한 보따리씩 가져왔는데, 앞으로 엄마가 해준 거 영영 못 받지 싶습니다.ㅠㅠ
    늙음이, 병듦이 현실인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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