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우주에는 내가 없었어요.
첫째딸인 언니는 엄청 예뻐하셨지만 둘째딸인 나는 아빠의 다정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아들 낳으려고 마지막으로 낳은 아이가 또 딸이었지만 막내는 또 어느정도 나이가 들은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었어요.
어릴때를 기억해보면 집에서 늘 신문을 펴놓고 읽으시는 아빠가 기억나요.
옆에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면 "저리 가. 네 엄마한테 가서 말해" 하는 아빠였어요.
가족끼리 외출을 해도 늘 한참 앞에서 일행이 없는 사람인 양 앞장서서 가는 아빠였어요.
아빠의 등을 보며 아빠도 우리 옆에서 손잡고 가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만 했었어요.
요 몇주 사이 급격히 쇠약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84세 아빠와 이제 헤어짐을 눈앞에 두고 있는것 같아요.
밤새 간병하면서 실컷 아빠 손을 잡고 있어요.
이제 목소리도 잘 안나오는 연약한 아빠가 저리 가라고 한번도 안하시고 간호사가 와서 옆에 있는 사람 누구예요? 하고 물어보는데 "귀여운 딸"하고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대답 하시네요.
아빠.. 어릴때 좀 귀여워해주시지 그러셨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엄마가 애들 좀 교문앞까지 태워다주고 일나가요 해도 들은척도 안하시던 딸천재 아빠.
평생 성실함으로 엄마에게 번 돈을 모두 주고 집 명의도 엄마 이름으로 해주신 가난한 아빠.
아빠가 이제 지구에서의 숙제를 끝내시려나봐요.
부디 마지막까지 평안하게 이별하게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큰 통증은 없으셨는데 부디 떠나실때까지 그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