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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된장찌개

그린 조회수 : 1,034
작성일 : 2025-05-27 17:24:15

 

나는 서른다섯살 봄에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할지말지 더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수 없는 나이었지만

그래도 그 남자가 마음에 꼭 들지 않았다

그 남자는 얼굴에서부터 모든게 둥글둥글했다

그 남자의 둥글둥글한 외모가 내 이상과는 맞지 않았다

 

 

그때 나는 너무 심한 생리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생리통이 나에게는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의 생리통은 너무 심해서

아무리 무딘 나라도 이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마음을 먹고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는 나에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 말은 살면서 처음 들어서 나는 너무 무서워서 병원을 나와서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갔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엉엉 울었다

나는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다

얼굴이 동그란 남자는 중국에 출장중이었다

남자가 없는 동안 나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나는 큰 병원에 갔고 난생 처음으로 산부인과 검사를 받았다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산부인과에 다니지 않았다 어리석었다

의사는 나에게 당신의 난소에는 혹이 막 엉켜있고 수술을 받아야하고

수술을 해도 이 병은 자주 재발할 수 있고 어쩌면 임신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안해도 좋을 말까지 모두 다 하는 의사의 말을 고스란히

들으며 앉아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였다

그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그 남자와는 정확하게 결혼을 하자고 약속을 하거나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 남자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울었다

 

 

 

얼굴이 동그란 남자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공항에 마중을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중을 나갈 마음이 아니었지만

연락할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마중을 나갔다

언니가 나에게 <그 사람에게 아직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남자가, 얼굴이 동그란 남자가 그래서 나와 결혼할 수 없다 하면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보내지 못하게

아픈 남자도 아니었다.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공항에 나가는 마음은 이미 비련의 주인공이었다.

 

 

공항에서 나온 남자에게 그다지 시간을 주지 않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남자를 데리고 커피숍으로 가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고

병원에서는 나에게 임신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굴이 동그란. 소박한 옷을 입은.

그 남자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더니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떠나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이 자리에 왔는데

갑자기 이 남자가 엄마처럼 느껴졌다. 길거리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아이처럼

그 순간에 이 남자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날 먼 거리를 날아와서 갑작스런 이야기에 놀랐던 그 남자를 처음으로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고 짐을 던져놓고 장을 보러 갔다. 

밥을 해주겠다고 하더니 쌀을 씻고 반찬으로는 된장찌개를 끓여주었다

 

 

된장은 어머니가 주신 거라고 했다. 중간정도의 냄비에 물을 붓고 된장과 한스푼정도의

고추장을 넣었다. 양파정도가 들어간 정말 아무것도 없는 된장찌개였다. 숟가락을 넣어

휘휘 저어도 냄비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 그래도 금방한 따뜻한 밥.

그 밥위에 고추장이 들어간 국물뿐인 된장찌개.

나는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그 남자도 맛있게 먹었다.

 

 

 

스무살부터 서른다섯살.

부모님은 두 분 다 편찮으셨다. 다른 형제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세월을 병약한 부모님의

보호자로 살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십대의 주말의 대부분을 병원의 대기실이나

화장실에서 수건을 빨며 보냈다. 창밖으로 떠가는 구름을 병원의 네모난 창문을 통해

바라 보았다

부모님은 늘 편찮으셨고 나는 늘 불안했다

부모님이 떠나실까봐 늘 불안하고 고단했다

 

 

그 날 그 남자가 차려준 상에서 밥을 먹으며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차려본 게 틀림없는 그 허술한 상 앞에서

나는 이제 이 남자와 나머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로소 어른이 되는 느낌이었다

엄마의 딸이 아닌, 아버지의 딸이 아닌

어른인 여자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어른으로 살고 싶었다

이 남자와 살면서 어른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 날 그 자리에서 결혼을 결심했다

이 남자와 결혼해서 이렇게 작은 방에서 이런 작은 상에 밥을 하고

반찬을 해서 놓고 해가 뉘엿하게 지는 저녁 무렵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리라 결심했다

어쩌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를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 날 그 남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당황했다고 했다

그 사람도 나를 놓을 수 없을 만큼 사랑해서는 아니었을 거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낼 수 없어서 그렇다고 울면서 밖에서 밥을 먹기도 그래서

집으로 데려와 도무지 엄마가 어떻게 끓여주셨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된장찌개를

일단 된장이 들어갔겠거니. 아 너무 이상하니 고추장을 넣으면 좀 나아질까 해서

한숟가락 넣고 맛을 보니 이도저도 아니어서 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너무 늦어져 버렸으니 차려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밥을 먹으며 그도 진정되었고 나도 진정되었다

아주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도 낳았다

건강하고 착하고 예쁜 아이가 태어났다

 

 

그게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그 날의 된장찌개

 

IP : 211.203.xxx.17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오모나
    '25.5.27 5:44 PM (175.112.xxx.206)

    이건 실화인가요?
    아님 소설?
    잼나네요
    남자가 진국이네요

  • 2.
    '25.5.27 5:45 PM (118.235.xxx.227)

    재밌게 잘 읽었어요
    맘이 따뜻해지네요

  • 3. ...
    '25.5.27 5:50 PM (210.222.xxx.1)

    좋아요 추천!

  • 4. 하루맘
    '25.5.27 6:08 PM (61.105.xxx.124)

    와 실시간으로 글을 읽었어요.
    소박한데 마음이 꽉찬 기분이에요.
    님의 글 에세이로 나온다면 꼭 살거에요.
    감사합니다.

  • 5. 아.....
    '25.5.27 8:24 PM (175.197.xxx.229)

    아름다워요,,,
    저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 6. ..
    '25.5.27 10:41 PM (61.79.xxx.64)

    동그란 얼굴의 남편분과 언제나 행복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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