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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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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폭설의 기억

... 조회수 : 1,653
작성일 : 2025-03-04 15:52:26

주말 끝나고 3월 첫 출근날 눈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맞벌이 주말부부로 남편도 없이 시댁 가까이 살면서 큰 아이 낳아 돌까지 동냥 육아 했어요.

그러다 돌 조금 지나 구립 어린이집을 신청해 보냈네요.  시설도 낡고 좁은 이 어린이집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이른 제 출근 시간 맞춰 아이를 받아주시고 제가 도시락 준비해 보내면 다른 아이들 등원전 먹게 해주신다는 방침 때문이었어요.

 

드디어 3월 등원 첫날

아이 낮잠 이불이랑 기타 준비물이 있더라고요.

아이는 쿨쿨 자고 있고요.

아침에 아이 손 잡고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어린이집 앞에서 빠이빠이 손 흔들 상상을 했는데 아이는 전혀 일어날 생각이 없었어요.

마침 창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구요.

요즘 습설습설 하시는데 그날도 주먹만한 눈송이가 소담지고도 무겁게 내렸어요.

 

아이를 깨우다 어쩔수 없이 업었어요.

제가 평소에 아이를 거의 안업어서 업는 장비가 포대기 밖에 없어 포대기로 없었네요.

저는 정장에 힐을 신고 가방들고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어린이집 가방이랑 낮잠 이불 보따리를 들고 

눈이 너무 와서 우산도 가장 큰 우산을 들고 어린이집으로 갔어요.

어린이집이 저희 집부터 걸어서15분~20분 거리인데요 그날은 느낌상 1시간은 걸은것 같아요.

 

구두는 눈에 푹푹 빠지고

조그만 아기 이불보따리가 왜 이렇게 크고 무거운지

바람까지 불어 눈보라가 날리는데 등에 아이 젖을까봐 우산 아이한테 바싹 받쳐들고

양 손에 가방 두개 이불 우산들고 가는데

집에서 나서자마자 포대기가 줄줄 흘러내리는데 아이 받칠 손이 없는거에요.

어찌어찌 기다시피 해서 어린이집에 아이 넣고 나니 출근용 정장은 다 젖고 구겨지고 머리 얼굴도 다 젖은데다 추위와 땀이 범벅이 된  얼굴은 벌겋게 부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눈이 오는데

이불은 다음에 갖다드리고

아이도 유모차에 커버 씌워 데리고 가면 서로 좋았을걸 제가 그 미련을 떨었어요.

 

겨울이면 난방도 안된 어린이집에 1등으로 문열고 등원하던 큰아이가 오늘 대학원 첫 수업 들으러 갔습니다.

기억이라는게 참 신기한게 그날 자는채로 차가운 어린이집 마루에 눕히고 나오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네요.

 

 

 

IP : 219.255.xxx.142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5.3.4 3:57 PM (182.209.xxx.171)

    그런 기억들은 어제처럼 생생한것 같아요.
    일 끝나고 놀이방에 애 찾으러 가면
    모두 다 가고 항상 우리애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
    그 장면은 생생해서 20후반이 된 지금도
    마음 아파요.

  • 2. ㅎㅎㅎ
    '25.3.4 3:59 PM (112.146.xxx.207) - 삭제된댓글

    키 큰 성인 자녀의 얼굴과 뒷모습 위로
    너무나 생생히 겹쳐지는
    어린 아가의 작은 몸, 통통한 얼굴…

    저는 미혼이지만 엄마들의 그런 마음은 조금~ 알 것 같아요.
    아이는 자기가 그런 돌봄 속에서 자라난 걸 알까요.

    원글님, 수고하셨어요,

  • 3. ㅎㅎㅎ
    '25.3.4 4:00 PM (112.146.xxx.207)

    키 큰 성인 자녀의 얼굴과 뒷모습 위로
    너무나 생생히 겹쳐지는
    어린 아가의 작은 몸, 통통한 얼굴…

    저는 미혼이지만 엄마들의 그런 마음은 조금~ 알 것 같아요.
    아이는 자기가 그런 돌봄 속에서 자라난 걸 알까요.

    원글님, 수고하셨어요.

  • 4. 풍경
    '25.3.4 4:07 PM (175.196.xxx.15) - 삭제된댓글

    그림 그려지듯 묘사되는 예쁜 눈과 원글님과 아이가 눈 속을 헤치고 우산을 들고 뾰족구두를 신고 눈 속을 푹푹 빠지는 상상을 하며 글을 단숨에 읽었어요.

    저도 생각해보니 아이가 어릴때 영화의 한장면 처럼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네요.

    전 제가 아파 며칠을 누웠을 때 딸아이가 엄마가 밥을 안 먹었을 거라며 용돈 받은 돈으로 계란 한 판을 사가지고 조심조심 다 와서 엘리베이터에서 힘에 겨워 손잡이에 부딪혀 계란이 바닥에 쏟아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는 걸 같은 라인 아주머니가 데리고 온 적이 있었어요.
    따뜻하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가슴이 먹먹한 기억이네요.

    좋은 기억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 5. 에구
    '25.3.4 4:08 PM (222.108.xxx.61)

    그모습이 그려져서 그당시 젊은 아기엄마가 너무 짠하네요 .... 저도 돌 안된 큰아이 시부모님께서 아파트 가정 어린이집에 보내 놓으면 퇴근시 제가 데려왔거든요, 어느날은 가보니 놀이방 거실에 놓여 있던 정글짐 그 높은곳에 아이가 올려져 있던거에요 ㅠㅠㅠ 자칫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 하... 힘든시절이었네요 저도 그런 아이가 석사마지막 학기 하고있어요 다 컸어도 아직도 아기같아요 저의 첫번째 아기잖아요

  • 6. 원글맘
    '25.3.4 4:15 PM (219.255.xxx.142)

    에구님 맞아요 저의 첫번째 아기
    저도 암것도 모르고 포대기에 아기 업을줄도 모르는 미숙한 엄마였구요.
    아침에 아이가 우산 챙기며 3월에 무슨 눈이야~ 하는데 저는 속으로 너 어린이집 첫 등원날이 꼭 오늘 같았다 생각했네요.
    원글 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댓글 읽으니 눈물이 나요. 참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기인데 잘 지나온게 감사 합니다.
    댓글님들도 모두 애쓰셨어요.

  • 7. 아이고...
    '25.3.4 4:23 PM (1.249.xxx.14)

    그 시절 짠했던 원글님 안아주고싶네요
    전 애들 키울 때는 전업이었고 다 큰 뒤에 일을 하게되었지만
    육아와 직장 병행하는 워킹맘들 정말로 정말로 존경합니다

  • 8. ..
    '25.3.4 4:24 PM (211.235.xxx.253)

    글 읽는데 왜이리 눈믈이. ㅠㅠ
    원글님이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상황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제 기억으로 아이가 세살쯤이었나. 3월 들어섰는데 한밤중이 눈이 펑펑 내렸어요. 30평생 살면서 3월에 눈을 보는게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너무 신기하다면서 아이데리고 내려가서 사진 찍었어요.
    그 이후론 3월에 눈을 종종보고 추위도 한겨울 추위 못지않은 날씨가 지속되네요.
    제가 겪었던 그 날이 원글님이 기억하는 그때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9. 저도 워킹맘
    '25.3.4 4:32 PM (211.114.xxx.75)

    그 고단함(회사에 도착해서 젖은 옷과 신발을 마침내 봤을대 현타가 왔을)이 눈에 그려져서 사무실에서 주책맞게 눈물이 흐르네요.
    그런 순간들이 참 기억에 남고 애틋한 것 같아요.
    저는 추운 겨울 제일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가 잡은 손이 너무 따뜻해서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오늘 집에가서 아이에게 말 따뜻하게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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