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살림만 하면서 살고싶었다는 엄마

목요일 조회수 : 3,307
작성일 : 2025-02-13 21:09:27

집에 있을때면 제일 많이 하는일이

설거지예요,

힘들이지않고도 잘 닦여지는 물컵도 있는가하면

힘써서 닦아야하는 밥솥도 있어요.

스텐수세미가 닳고 그 찬란한 빛을 잃은댓가로

거듭 깨끗해진 우리집 냄비들, 컵들, 접시들.

그 단촐하고 평범한 일상이

엄마에겐 이루기 힘들었던 삶이었어요.

 

어쩌다, 한동네 살던 이모네 가면

다들 외출했는지 빈집인경우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어지럽혀진 소파위의 옷가지를 치우고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수건을 삶고, 이불홑청을 빨아, 옥상위 빨래줄에 널면

바람결에 나부끼며 펄럭이는 청결한 냄새들.

냉장고를 정리하고, 꽃무늬 식탁보로 깔고 

온집안 청소를 한뒤 말간 유리창너머 보이는 마당의 꽃들.

청결한 꽃무늬식탁보와, 

뽀얗게 말라가는 빨랫줄의 수건들이

바람결에 나부끼며 흔들리는 그 일상의 잔잔한 그림들이

엄마에겐 평생을 이루지못한 꿈이고, 가보지못한 노스텔지어였구나.

 

유년시절, 인상깊은 성경구절이 있어요.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오소서 주님하고

군중들이 반겨맞으며 기다렸다는 내용이

저는 종종 생각나요.

사람들마다, 손에 들고 흔드는 바램이 있을텐데

주님을 바라는 사람들은 종려나무일테고.

우리 엄마는 빨랫줄위의 하얀 수건들일테고

게다가 언젠가

평생을 가장의역할을 하지못한채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언니에게 기대며 살았던 형부가 누군가와 채팅하면서

쓴 편지도 발견이 된적있었어요.

그대를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손엔 하얀 손수건을 흔들고

입엔 빨강 양말을 흔들고 서있을까요.

언니말로는, 평생 이런 다정한 말을 해준적이 없는 사람이

채팅창에선 이런 근사한 시를 썼대요.

늘 술만 마시고,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아빠는

평생을 그렇게 살다갔어요.

그런 아빠덕분에 엄마는 몸으로 할수있는 모든 중노동은 다 해야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채를 잡혀 밤새도록 잠못자는 고통도 겪어야 했어요.

가끔, 온몸에 암이 퍼져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쓸수가 없이 무섭게

고통당하고 간 아빠가 생각나요.

엄마의 일상에 단한번도 놓여보지못한 꽃무늬 커피잔,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 삶이 저물듯, 저물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깨끗이 정리된 엄마의 싱크대와 꽃들. 저는 알아요.

치열하게 살아낸 오늘의 흔적이라는것을요.

 

IP : 58.29.xxx.183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탄핵인용기원)영통
    '25.2.13 9:14 PM (116.43.xxx.7)

    님 글 읽고 눈물이 살짝 맺히네요.

    어머니 존경스럽네요..
    그 일상의 전투를 이겨내신 분.

    님과 님 어머니에게 이제 행복이 가득하면 좋겠어요.

  • 2. 이렇게 글로
    '25.2.13 9:16 PM (211.185.xxx.35)

    풀어 놓으니 엄마의 삶도 아빠도 언니도 형부도..모두 영화속 등장인물 같애요
    지금은 살림만 하고 계시겠죠?
    엄마 인연으로 아빠를 만났고 귀한 자식 얻었으니 힘들어도 살 힘이 생겼을거예요
    아빠는 이승에서 엄마를 더 훌륭한 존재로 만들어주기 위한 역할이었나 봐요
    글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우리 모두 다 행복합니다

  • 3.
    '25.2.13 10:54 PM (119.193.xxx.110)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그 잔잔한 일상이
    엄마의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이라니
    슬프네요
    오늘도 투덜거림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는데
    반성하고 갑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86193 주1~2일은 저녁에 밖에나가서 먹어야겠어요 1 2025/02/13 2,165
1686192 나름급)충북대 기숙사신청 잘아시는분~ 2 땅지맘 2025/02/13 749
1686191 클론 한창 인기 있을때 강원래는 여자친구가 있어도상관이??? 7 .... 2025/02/13 4,588
1686190 수거 리스트가 우리가 지켜야할 리스트네요 4 그렇군 2025/02/13 1,146
1686189 노상원 수첩 체포명단 영상 보고 명단 정리해옴 14 MBC 2025/02/13 3,441
1686188 좋아하는 모임 소개해봐요 12 모여 2025/02/13 2,819
1686187 강주은 두아들 말인데요 57 ㅇㅇ 2025/02/13 13,123
1686186 자녀 결혼식에 올 사람 없어요 14 As 2025/02/13 6,870
1686185 남녀피겨 오늘 다 역전시킨거죠? 5 ㅇㅇ 2025/02/13 2,764
1686184 아이가 내성발톱인데 네일샵관리랑 병원수술이랑 뭐를 10 내성발톱 2025/02/13 1,016
1686183 차준환 금~~~ 13 금메달~!!.. 2025/02/13 4,748
1686182 인싸가 아닌 내 아이 2 Fis 2025/02/13 1,588
1686181 상속세땜에 부자들 떠나면? 40 ㅇ.ㅣㄱ 2025/02/13 3,718
1686180 명신이가 저러는 이유 2 ㄱㄴ 2025/02/13 3,297
1686179 피겨 남녀 모두 금 19 2025/02/13 3,033
1686178 살해 교사, 휴직 권고받자 학교 이탈…흉기 사러 갔다 10 ... 2025/02/13 3,950
1686177 전국민 출국금지 7 .. 2025/02/13 2,669
1686176 조성현 경비단장님 감사합니다 12 .. 2025/02/13 2,957
1686175 김경수 사면 딜이 분탕 내각제 인가요? 46 .... 2025/02/13 1,641
1686174 살림만 하면서 살고싶었다는 엄마 3 목요일 2025/02/13 3,307
1686173 차준환 금메달 딸거 같어요 10 hafoom.. 2025/02/13 2,922
1686172 ABCD수거 끝나면 82쿡에서 윤명신 비난 한 우리차례네요. 25 인용 2025/02/13 1,965
1686171 그릇장을 닦아준 아이 36 청소 2025/02/13 5,771
1686170 후추 어떤게 좋나요? 4 ㄱㄱ 2025/02/13 1,198
1686169 90대 엄니 신규 핸드폰 개통해드려야하는데요 4 꼬맹이 2025/02/13 1,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