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구복적이고 기도 내용 대부분이 자신과 가족의 안위, 합격, 돈에 관한 내용이더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그 점이 교회를 떠나게 한 실망스러운 점으로 느껴졌다는 글을 보면서
반론이라고 하긴 그런데 다른 측면으로는 그 점은
무엇에나 열심인 한국인 특성이 반영된 거 아닐까 싶어요.
우리 나라 사람 중 40대는 모르겠고 50대 60대가 받은 교육은 항상 열심히 하라는 거 였어요.
뭘 해도 열심히 해야 하고 게으른 건 부끄러운 일이고 뭐든 잘되는 건 내가 열심히 해서이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죠.
그래서 기도 내용에서 가족의 안위, 합격, 집안 일 중에는 매매든 집을 사는 거든, 장사든
사업이든 뭐든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 기도가 될텐데
뭐가 됐든 내가 원하는 걸 일도 열심히 하지만 기도할 때도 그걸 가지고 열심히 구하고
심지어 성경에도 두드리라고 했으니 열심을 가지고
심지어 새벽에 교회를 찾아가는 정성까지 보이며
열심히 정성을 들여서 하는 행동이 열심히 사는 삶이라는 생각 속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되고 예를 들어 아들이 변호사 시험 합격하고 번듯한 결과 나오면 그걸 축복이라고
믿고 자랑 겸 기도에 대한 응답 내지는 자기가 열심히 산 것에 대한 결과로 생각하는 거죠.
목사 역시 소식란에 좋은 결과를 말하는 것이 좋지 자기 교회에 안 좋은 일을 말하는 것이
좋지는 않겠죠.
저 역시 부족한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상처도 주고 누군가에게는 미운 감정도 가지고
부끄러운 모습도 많이 보여왔어요.
그렇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내가 너무 바닥으로 내려 갔을 때 어디에도 길이 없고
위로를 얻을 곳도 없었을 때 그래서 내가 달리 어디 갈 곳도 없어서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았을 때
그 상황 속에서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일로 나를 나를 만나주시고 마음에 평화를
주었던 그 하나님의 존재 만큼은 지금도 부정할 수가 없어요.
상황이 좋아지니까 내가 마음이 부유해지고 눈이 높아지니까
하나님과 소통하고 연결된 사람의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내가 문제이지 하나님은 그대로 계시고
여전히 내가 진실하지 못해서 진 그 자체인 분을 만나지 못할 뿐이죠.
언젠가 그런 순간이 또 올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기관과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실망해도 기독교인임을 부정하지 못하는 건 그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마치 루터의 개혁 전 천주교가 극심하게 부패하고 정치질로 종교 같지 않아도
지금으로 치자면 테레사 수녀 같은 어떤 순교자, 어떤 성녀, 어떤 믿음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겠죠.
교회라는 기관을 떠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과 기독교인의 영적 성숙에 대한
생각을 잃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나갈 수 있겠죠.
그리고 목사에 대한 실망도 참 많은데요
아쉽게도 목사는 교회의 돈많은 장로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요.
장로는 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그 직분을 받고 어떤 분야에서건 돈과 관련된 사람들이죠.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주로 보수 쪽에 서 있고 그 사람들의 편에서 벗어나는
설교와 성향을 드러내는 목회를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목사 자신이 개척한 소수의 그런 교회가 아니라면요.
목사도 고용인인 뿐인거죠.
저도 기독교인의 한 사람이지만 요즘의 기독교는 안타까운 모습이 많아서 저도 속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시고 그 때에는
내가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진리와 만날 만큼 눈꼽 만큼이라도 내면이 갖추어지게 되더라구요.
그럴 때 만난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만은
꼭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