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옳은지 판단 유보하고 기도하자는 이찬수 목사께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설교 중에 그렇게 말했답니다. 누가 옳은지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할 때라고. 박근혜 탄핵 사건때 골방에서 기도하자던 어느 목회자도 생각났습니다. 그때도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도 비슷합니다.
합동측 교회에서 모태부터 자라면서 항상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통령은 하나님이 세우신 분이니 데모하면 안된다.'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인들이 내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고 지식인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인권을 유린할 때도 그랬습니다.
3. 그런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빨갱이, 종북좌파로 몰면서 나라가 공산화된다며 비난하기 일쑤였습니다. 대통령은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그때 그 신앙은 다 어디가고 갑자기 태도가 변한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 30년쯤이나 지났는데 여전합니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고 내란수괴의 졸개들에게 선동을 받은 지지자들이 법원에 침입하여 폭동을 일으켰는데 누가 옳은지 판단을 유보하자니 심히 심란합니다. 이찬수 목사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상황이 판단이 안되십니까? 지금이 판단을 유보할 때입니까?
5.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할 이유는 1)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아닌데 위법적으로 비상계엄을 한 행위 2) 국무회의, 문서, 서명 등 계엄 절차의 위법성 3) 국회로 군대를 보내 계엄해제를 막은 위헌적 행위 4) 국회의장, 야당대표, 법조계 인사 등을 체포하려 한 행위 5) 계엄 포고령의 각 조항이 담은 위헌 등입니다.
계엄선포가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일 수 있지만 계엄을 내릴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해야 통치행위가 되는 것이고, 이번에 윤석열이 시도한 계엄은 위헌, 위법, 내란 행위입니다. 이찬수 목사님, 이게 판단이 안되십니까? 이 사건이 판단을 유보할 일입니까?
6. 윤석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그에 따라 체포되어 구속되었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거쳤고 합법적인 영장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법적으로 다툴 일입니다.
국힘의 윤상현을 비롯한 내란 고수 세력과 윤석열의 변호인단, 그리고 전광훈 같은 자들이 윤석열의 체포와 구속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대통령을 체포하려고 시도하고 구속시켜서 나라가 분열되고 망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윤석열이 내란을 시도해서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인과관계가 파악이 안됩니까?
7. 항상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내린 지지 세력들이 그렇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근원적 원인은 살짝 가리고 그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결과들을 가지고 선동선전을 일삼는 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서부지법에 폭도들이 난입한 것은 영장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광훈 같은 자들이 선동했기 때문입니까? 법원이 불법적으로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윤석열이 내란수괴로 수사에 응하지 않고 법체계를 송두리째 무시하며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우려 때문에 법원이 합법적으로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입니까?
8. 이찬수 목사님, 정말 궁금해서 묻고 싶습니다. 지금 상황이 판단이 안되십니까? 혹은 자신은 판단이 되지만, 교인들에게는 판단을 유보하라고 권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교인 중에 윤석열 지지자들도 있어서 그들까지 품고자 판단을 유보하자는 식으로 립서비스를 하는 것입니까?
9. 전광훈 같은 무리들이 개신교를 망치고 있습니다. 국민저항권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복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순교의 역사가 있는 한국 기독교가 어쩌다 자신의 기득권과 자신의 아젠다와 욕망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을 사주하는 자들로 낙인이 찍힌 겁니까?
전광훈만 나쁩니까? 앞에서 선동하는 자들보다 뒤에서 판단을 유보하자며 기도나 하자는 자들이 더 나쁘지 않습니까?
10. 열왕기 18장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흉악한 왕인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 엘리야구나." 아합의 입장에서 보면 엘리야가 눈에 가시입니다. 자신과 이세벨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대적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은 죄다 나라를 괴롭게 한 자로 동치시킵니다.
엘리야가 그렇게 답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닙니다. 아합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이스라엘 나라를 괴롭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참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사악한 아합 왕을 따르면 선지자가 850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아합 왕의 악행을 꼬집는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폭력을 써서라도 없애버려야 할 자였습니다.
11. 이찬수 목사님이 그 시대에 분당교회를 개척해서 교인들에게 설교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엘리야라고 하시겠습니까? 혹은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만 하자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엘리야 편에 서서 사악한 아합왕과 더 사악한 이세벨을 정죄하고 회개하라고 선포하겠습니까?
12. 이스라엘 상황을 가정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오늘 여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설교하겠습니까?
비상계엄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온갖 악행의 의혹이 있는 김건희의 편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저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전광훈의 길을 걷겠습니까?
아니면 엘리야처럼 권력의 힘에 두려워 하지 않고 윤석열과 그 집안과 내란 세력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하시겠습니까?
그도 아니면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할 때라고 비겁하게 숨어버리시겠습니까? 그것이 이찬수의 길입니까?
13.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회경제적 시각이나 역사의식, 민주주의 의식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탈 유교문화, 탈 무속신앙, 기복신앙 극복도 잘 못해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설교자라면 어떠해야 합니까? 엘리야처럼 용기있게 최고 권력에 맞서지는 못하더라도, 판단을 유보하자는 식의 비겁함은 제발 벗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한국개신교가 망하는 일을 앞당기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