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묘한 기류가 있던 동갑 남자와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이 있어요.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술자리였죠.
제가 벽을 등진 자리에 앉았고 이 남자는 제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둘이 술을 마셨어요.
한데 화장실에 갔다 와 보니까 이 남자가 벽을 등진 제 자리에 앉아 있는 거예요.
응?
저는 당황해서 왜 제 자리에 앉아 계시냐고 했더니
이 남자가 원래 여기가 내 자리 맞다는 거예요.
거짓말 하는 거죠? 했더니 많이 취했냐고 대답했어요.
엥? 에엥?
어리둥절해서 내가 진짜 취했나 싶어서 그냥 맞은편 자리에 걸터앉았죠.
이번엔 남자가 화장실에 갔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잠깐 동안 제 머릿속에 뭐가 반짝했고 원래의 제 자리인 벽을 등진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어요.
남자가 돌아와서 저를 보고 당황하더라고요.
자리가 왜... 하는 남자의 말에 전 시침 뚝 떼고,
뭐가요? 많이 취하셨나요? 했고요.
그러고 둘이 실실 웃으면서 술을 마셨네요.
거기서 술자리를 파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뒤 집에 가겠다는 말을 뒤집고 2차를 갔다가
2차 술집에서 일어난 일로 우리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고 미묘한 기류는 아주 혼란스럽게 끝나고 말았네요.
10년 전의 이야기.
요즘 그 인연이 자꾸 생각나는데 오늘은 그 남자가 너무 보고 싶네요.
순진한 아이 같은 인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거침없이 하이킥의 까칠이 이민용 선생처럼 한 마디도 안 지던 그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