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지역이 달라서 1년이 한두번 만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참 영리해요.
무슨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어 대화가 즐겁거든요.
며칠전
둘이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가
"내가 요즘 계엄때문에 숙면을 못한다.
탄핵 표결때 나가려 했는데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못갔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희 식구들 생각 다 똑같냐?
친구는 역사교사예요.
그 친구가 주위의 누구랑 맘이 잘 맞아서 잘 지냈는데
어느날 그 누구가 탄핵찬성 시위에 나가자고 하더래요.
그래서 그 친구가 그랬대요.
"나는 탄핵찬성을 반대한다.
아니 이재명같은 망나니가 대통령될 게 뻔한데
어떻게 윤석열을 탄핵할 수 있냐?"
첨엔 친구의 말을 거꾸로 알아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 쟤가. 이재명때문에 윤석열 살려두자고 하는거야?
이재명 악마화에 속지마라고 내가 그러니깐
"지인 중에 건설업자가 있는데 이재명도 똑같이 나쁜 놈이라 그랬다니깐."
그러다 곧이어 헤어질 시간에 되어 집에 왔는데요....
내가 왜 잊고 있었지? 몇 가지 묵혀둔 일화가 생각났어요.
대학 졸업무렵 국립대 사대도 임용고시 치라고 하는 것 때문에
대학 친구들이 항의하는 집회를 했었거든요.
그러다 어느날 그 친구를 만나서...
"너도 집회 나간다고 고생하지?"
라고 했더니 친구가 한숨을 푹 쉬면서
"넌 이 싸움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난 항의하는 시간에 공부하는게 훨씬 실속있다고 생각해.
정말 엉덩이에 진물이 날 정도로 공부했더니
앉아서 공부할 수가 없을 정도야."
그 친구는 우리과 남자선배랑 연애를 했었어요.
그 남자선배는 평소 전두환 노태우 독재항거 시위때 누구보다도 앞장섰고, 유머도 있고, 매력있었죠.
대학졸업 후 둘이 결혼한다길래
친구는 임용합격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선배는 무슨 일해? 물어보니깐 친구가 더듬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응... 그러니까.... 통일원... 거기 들어갔어."
그 후 다른 선배들이 그 친구랑 결혼하는 그 선배를 향해 욕을욕을.
프락치였던 거죠. 안기부에 들어간 거였어요.
안기부에서 승승장구한 그 선배는
미국에도 파견되었던 적이 있었고
딸아들 너무너무 잘 키워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학나와 최고의 직업...취업... 결혼까지...
아 참. 또 하나 생각나네요.
내가 수십년전 그 친구 결혼식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내 결혼식에 안왔어요..
축의금도 안하구요.
그때 내 결혼식 끝나고 전화와서는
내가 니 결혼식 가려고 선배랑 같이 가는 중에
선배가 운전하면서 온갖 짜증을 다 내서
내가 출발했다가 포기했어.
내가 왜 이 친구를 자꾸 찾았을까요?????
대한민국 지성인이란 사람이
국민이 대통령을 누구로 선택하든 그건 국민의 몫인데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사실에
너무너무 실망했나 봅니다.
며칠 전에 만났는데 지금까지도 마음이 너무너무 심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