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왜 상대를 궁금해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서 써 본 글이에요.
저는 40대 중반이고 최근 50대 중반 전후의 사람들을 만나서 느낀 점인데요, 비슷한 연령대가 많이 있는 이곳의 의견들 한번 들어보고 싶어 블로그에 쓴 글을 올려 봅니다.
만남 1
아이 학교 친구 엄마를 만났다. 두 시간 정도 차를 마시며 지속된 만남에서 내 기억으로 나에게 질문은 단 한번 정도? 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엄마 자녀 둘의 초등학교 때 있었던 에피소드부터 집안 사람들 등등에 대한 아주 많은 정보를 듣게 된다. 말은 군더더기 없이 잘 하는 편이어서 그럭저럭 재미는 있었는데 오랜 시간을 듣기만 하자니 좀 힘들었다. 집에 가면서 쿠팡이츠로 햄버거 세트를 시키고 도착하자마자 폭풍 흡입했다.
만남 2
만남 1이 있은 이틀 후, 온라인으로 건강 관련 수업을 들었던 분들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3년 째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하며 다른 분야쪽의 사람들은 만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어떤 분들일지 궁금했다. 일단 익명으로 써야 하니 A, B 두 사람이라고 해 두자.
서너 시간 즈음의 만남 동안, 90퍼센트는 A의 말로 채워졌다. (물론 내 느낌상. 하지만 나와 B 가 말한 분량을 생각하면 거의 맞을 듯. )
초반부터 좀 심하다? 싶어 내가 겨우 틈을 찾아 B 에게 뭘 물어보면 그분의 답이 끝나자 마자 또 다시 본인의 스토리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작 같이 수업 들은 내용에 대해선 거의 나누지 못한 것이 가장 속상했다.
내가 A 에 대해 알게 된 것들 중 기억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본인의 초등학교 때 부터 배웠던 사교육 및 입시 스토리, 어느 대학을 지원하려 했다가 결국 어디를 갔다, 남편의 직업, 오빠와 어머니 아버지의 직업, 딸의 초등때 부터 00를 배운 이야기 부터 대입까지, 아이의 질환에 대한 스토리(대학병원 교수 이름까지), 어느 대학에 갔고 직업이 무엇인지, 본인의 신앙에 대해, 아버지가 얼마나 자상했는지, 본인의 건강 관련 이야기 - 어느 병원을 가고 수치는 뭐고 , 등의 TMI. (물론 언급된 대학은 다 명문대고 직업들은 전문직이다...ㅎ)
상상을 해 보시라. 이 모든 정보가 아주 긴 에피소드 안에 다 들어있으니...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같이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B 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정말로 B 는 괜찮았을까? 도 궁금하다. ) 하지만 내 상식으론 초면에 저렇게까지 대화를 독점하면서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놓는 것이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인터뷰 요청을 하고 그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 어떤 경우였어도 서로 시간을 내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닐까? A 가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해맑게 자신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는 스타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적어도 나는 그 시간이 굉장히 무지무지 힘들었다는 거다. A의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길~기만 했다. 끝이 나지 않아서 겨우 핑계를 대고 빠져 나왔다. 쾡한 얼굴로 집에 가면서 맥주 네캔과 과자 세봉지를 사서 폭풍 흡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식습관에 관한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쁜 식습관을 유발한 것이다.
나의 의문
물론 나도 너그럽지 못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내가 괴로운 것은 내 마음에서 괴로움을 만든 탓이다. 그래서 A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왜 요즘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만나서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시늉이라도 내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인지 궁금하다. (이건 인터넷에서 많이 본 글들로 유추한 것) 특히 여자들이 나이가 들 수록 그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맥락없이 전투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더니... (남자도 그런지는 들은 적이 없어서 모름)
나의 경우, 공부하기 전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없어 거의 혼자 지내는 편이었다. 만나서 말 하기도, 듣기도 귀찮았던 것.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 곧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도 싫어했었다. 하지만 같이 공부하는 도반 선생님들에게 그런 관심과 애정을 주고, 또 받다 보니 다시 인류애가 새록새록 ㅎㅎ 생기는 중이다.
그런데 공부 공동체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선 종종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럴 때 마다 생기고 있던 인류애가 다시 박살이 나곤 한다. ㅋ 자기 이야기만 줄곧 떠드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자랑이나 신세한탄이다. 지극히 비생산적인데다 유머도 없다. 듣고 있으면 에너지가 쭉쭉 빨린다. 그러고 보니 자랑 혹은 한탄을 특별히 길~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 존중 및 타인 존중 이 아주 바닥인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그 지루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 자신이 정말이지 싫어졌다는 거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
만남의 당사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하다. 물론 보라고 쓴건 절대 절대 아닌데 혹시 본다면... 부디 상처받거나 원한감정을 품지는 말아 줬으면 하지만 ...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문제에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말하는 것이 정답이라 여겼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솔직함 이라는 것이 항상 선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판단이나 느낌이 진리도 아니며 또 옳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떤 충고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줄 때는 상대가 곡해없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위의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들이니... 물론 그런 것 치고 그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지만 말이다. ㅎㅎㅎ
결론
1. 나는 더 나이들어도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
2. 정말 좋은 강의를 들을 때도 길어지면 힘들 때가 있다. 제발 좀! "요점만 간단히 말해요"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다.
3. 다음부턴 기 빨리기 전에 어떻게 좀 막아보자... 이렇게 뒤끝작렬 하지 말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