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우리 할머니

그냥저냥 조회수 : 1,222
작성일 : 2024-10-12 15:19:16

'할아버지. 노인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 할어버지도 그래?' ' 아니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으니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 한적이 없다'는 할아버지와 달리 맨날 '어서 죽어야 할텐데'를 주문처럼 말씀하시곤 하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뇌출열로 쓰러지신 날 그날은 90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자네는 10년만 더 살다 오게나' 하셨던 할아버지의 유언보다 더 살다 할머니는 쓰러지신 후 3개월 지나 97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마냥 무서워 동네 친척 고모댁(할아버지쪽)에서 살다시피하다 실제 부부로 살기 시작한 것은 18세. 14살때 가난한 친정의 장녀로 태어나 입 하나 덜기 위해 9살 많은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내가 오냐 오냐 했더니 버릇이 없으니 에미 네가 이해하라' 라고 하실 정도로 할머니를 많이 이뻐하셨고 금술이 좋으셨다. 할머니는 시집 살이를 하지 않으셨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신 할아버지의 가까운 친척들이 어린 할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여 그 많던 논과 밭이 단출해졌을 때 시집을 오셨다.  일제 시대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쟁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하여 논 몇마지기를 상으로 받기도 하셨다고도 하고 아무튼 여장부셨다. 목소리도 크고 때론 막무가내셨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순종적이었다. 일제시대 결혼하여 만주로 이사를 간 여동생을 만나러 가며 할머니는 본인이 삼고 지으신 삼베를 갖고 가 팔아 돌아오는 길 기차안에서 일본 순사가 몸수색을 했지만 돈을 뺏기지 않으셨다. 그때 업고 간 어린 아들의 똥기저귀에 숨겼기 때문. '할머니 더럽지 않았어?','나는 똥이 하나두 더럽지 않았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작지만 뚱뚱한 중국할머니 인형을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하관 직전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새처럼 작디 작은 소녀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글을 올려야 한다니 먼저 생각나는 건 할머니 생애에 대한 호기심으로 귀담아 들었던 일화들. 가볍고 서툰 글 올리니 양해바랍니다.

IP : 183.101.xxx.201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10.12 3:24 PM (118.235.xxx.251)

    한 사람의 인생이 원글님 덕분에
    빛을 보고 날아올랐어요

  • 2. 1245
    '24.10.12 3:25 PM (121.161.xxx.51)

    역시 물갈이 한번은 해야하는게 맞네요. 이렇게 좋은 글도
    올라 오고..82운영진 감사합니다!

  • 3. 어머
    '24.10.12 3:28 PM (112.186.xxx.86)

    글을 너무 잘쓰시잖아요.
    할머니는 애처가 할아버지랑 잘지내고 계실듯하네요.


    게시물 올려한다는 압박감 너무 싫어요 ㅎㅎㅎㅎ

  • 4. 와~
    '24.10.12 3:29 PM (183.99.xxx.150)

    좋은 글이 가득하네요. 너무나 생생한 묘사! 소설속 한페이지를 읽은 듯 해요~ 기회 되시면 또 써주세요! 원글님!

  • 5. 기레기아웃
    '24.10.12 3:52 PM (61.73.xxx.75)

    너무 재밌게 잘 쓰셨어요 또 읽고 싶어요 ㅎ

  • 6. 새날
    '24.10.12 4:11 PM (59.9.xxx.174)

    우와 짝짝짝!!
    잔잔하고 아름답게 글 잘 쓰시네요.

  • 7. 샬롯
    '24.10.12 5:09 PM (210.204.xxx.201)

    와 정말 아름다운 글이예요!
    저도 남편이랑 앞으로 30년 그리 살고싶어요. 남편에게 이쁨받으면서요.

  • 8.
    '24.10.12 6:02 PM (125.189.xxx.41)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아 근데 글을 올려야되는군요..
    님이 저 대신 하나만 더 올려주세요.ㅎㅎㅎ
    농담요 ㅋ 글이 좋아서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4967 웃기는 네비게이션 5 짬뽕 2024/10/14 973
1634966 다이소에서 과소비하고 나니 생기가 돌아요! 19 호ㅗㅗ 2024/10/14 5,203
1634965 에어컨 추가 달았어요 3 2024/10/14 1,233
1634964 전란...민주주의국가에서 태어나서 사는 기쁨 10 2024/10/14 1,736
1634963 마약은 다 묻혔네요 6 .... 2024/10/14 3,375
1634962 신발장 펜트리 정리하니 날아갈것 같아요 1 2024/10/14 1,188
1634961 전세 재계약관련, 정말 몰라서요 7 가시 2024/10/14 1,054
1634960 투썸 케잌중 어떤게 제일 맛있어요? 11 ... 2024/10/14 4,214
1634959 병원 예약해두긴 했는데 2 .. 2024/10/14 843
1634958 친정 가까워도 잘 안가고 연락 잘안하게되네요. 6 휴우 2024/10/14 2,633
1634957 비행기에서주는 여행용 파우치 좋아하세요?? 23 해외 2024/10/14 3,810
1634956 헬기가 계속 여의도쪽에서 성남 방향으로.. 3 ........ 2024/10/14 1,895
1634955 홍대 신촌근처 인당 10만원 식사 6 ... 2024/10/14 1,060
1634954 여학생들 비둘기를 대부분 무서워하나봐요 25 ..... 2024/10/14 2,552
1634953 정치)ㅎㅎ희안하네요.윤건희 이재명 15 ㄱㄴㄷ 2024/10/14 2,691
1634952 [펌] 동물병원에 입원한 반려견이 걱정돼 칼퇴하고 찾아갔더니.j.. 5 ..... 2024/10/14 2,671
1634951 넓적하고 무거운 돌을 주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요? 3 취미생활 2024/10/14 963
1634950 말레이시아 아이들이랑 한달살기 하신분들 6 2024/10/14 1,442
1634949 글올리기위한글_여행유튜버 역마살로드 강추합니다 4 글쓰자 2024/10/14 748
1634948 산길을 산책할 수 있는곳 1 서울시내 2024/10/14 587
1634947 영화 아델라인 처럼 평생 안늙을수 있다면 9 ㅁㅁㅁ 2024/10/14 1,758
1634946 “한의원 대상 민원 넣으면 40만원”…비방에 사직 전공의 동원 10 qwerty.. 2024/10/14 3,160
1634945 염소탕 택배 되는 곳 있을까요? 8 ㅇㅇ 2024/10/14 696
1634944 질초음파 안아프게 하는 산부인과 없을까요? 13 서울 2024/10/14 2,926
1634943 여론조사 꽃 윤석열 긍정평가 19.2% 14 여론 2024/10/14 2,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