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한 강/편지

조회수 : 1,081
작성일 : 2024-10-12 12:59:24

1992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중

연세춘추 주관 연세문학상을 수상한 <한 강> 작품

<편지>

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 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 ···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 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뒹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대학생때 이런 시를 쓰다니

전 그때 뭘 했는지....

 

IP : 115.138.xxx.21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ㅡㅡㅡ
    '24.10.12 1:07 PM (219.248.xxx.133)

    와!!
    한강님 이런 시를...
    대학때요??
    대단한 그녀입니다.

    귀한 시를 발굴해서
    함께 나눠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2. ㅡㅡㅡ
    '24.10.12 1:09 PM (219.248.xxx.133)

    지리멸렬한 희망. 믿음. 오오 젠장할 삶... 이라니 !!!!
    이 구절. 맴도네요.

    시 너무 좋아요!

  • 3. 와~
    '24.10.12 1:23 PM (220.83.xxx.7)

    제가 저 나이때 뭐했는지......좋은 글 읽고 갑니다.

  • 4. ...
    '24.10.12 1:41 PM (112.156.xxx.69)

    이 시를 읽은 교수님이 너무 뛰어나서 경외감을 느꼈대요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문체가 너무 좋아요

  • 5. 새날
    '24.10.12 1:45 PM (59.9.xxx.174)

    와 어마어마 하네요.
    이 시가 대학생때 쓴 시라니
    정말 경외감을 느낍니다.

  • 6. ㅡㅡ
    '24.10.12 2:02 PM (221.140.xxx.254) - 삭제된댓글

    역시 스카이인가
    기본 연세대가 정도의 학습능력은 있어야
    통찰이고 사고고 지성이고 능력이 되는거지
    그딴 생각이나 하는 나자신
    어흑 ㅠ
    요며칠 놀란 세가지
    1. 한국에 노벨문학상이라니 ..
    2. 그걸 내가 수상 몇년전에 읽었다니
    3. 그때까진 내가 책을 읽었구나

    그러나
    언젠가부터 제가 활자를 읽는건
    82글이 거의 전부지만
    요즘 시가 와닿고 좋아집니다
    아주 절망적인 상태는 아니겠죠 하아

  • 7. 어흑
    '24.10.12 2:14 PM (223.38.xxx.117)

    제가 문학을 모르는 문외한이라 그럴까요?
    제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네요ㅠㅠ
    지나치게 은유적이고 반복적인 표현들이 어수선해요ㅜㅜ
    감히... 죄송해요.. 저는.. 이 글은 별로네요.

  • 8. 오늘
    '24.10.12 2:26 PM (223.39.xxx.108)

    작가 한강 으로 인해 오래전의 기억들이 소환되는 요즈음.....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9. 이런 시는
    '24.10.12 2:54 PM (183.97.xxx.35) - 삭제된댓글

    어떻게 번역했을까..

    데보라 스미스
    참 대단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4707 로마여행 선배님들 ~ 6 로마 2024/10/12 668
1634706 부석사 7 ... 2024/10/12 1,114
1634705 원주 뮤지엄산 9 꿈꾸는나방 2024/10/12 1,520
1634704 저랑 성씨 다른 이들이 다 외출했습니다 3 ㅈㅇ 2024/10/12 1,548
1634703 30, 40년 전에 보험회사 연금 가입하셨던 분들 9 ㅇㅇ 2024/10/12 1,496
1634702 어남선, 돼지목살로 갈비구이 minahi.. 2024/10/12 757
1634701 미국 마트 재료로 한국음식 문의드려요~ 24 가을 2024/10/12 1,271
1634700 무서운 물가.. 토마토가 먹고 싶어요ㅠㅠ 13 8282 2024/10/12 3,058
1634699 요즘 서울 근교 나들이하기 좋은곳 있을까요? 4 .. 2024/10/12 810
1634698 행복한 상상꿈 있으신가요? 2 .. 2024/10/12 338
1634697 전시회 다니기 좋은 날씨에요 5 미술 2024/10/12 1,006
1634696 전란 재밌습니다 4 글쓰기 2024/10/12 1,566
1634695 교육감 선거 6 ???? 2024/10/12 809
1634694 수세미 이야기 6 여름샘물 2024/10/12 952
1634693 인별 계정해킹당했나봐요 2 별별 2024/10/12 734
1634692 샴푸 후 오일 알려 주신 분.고마워요 22 머리 2024/10/12 4,339
1634691 강아지 거봉껍질 먹고 병원가니 15만원ㅜㅜ 12 거봉시러 2024/10/12 3,529
1634690 무슨 계기로 5 갑자기 2024/10/12 433
1634689 서울시 교육감 투표하고 왔습니다 8 투표 2024/10/12 719
1634688 자유게시판인데 글 올리기 좀 편해지겠네요. 6 ... 2024/10/12 1,025
1634687 서울시교육감 선거 진보진영 정근식 후보로 '완전한 단일화' 7 새벽2 2024/10/12 1,422
1634686 저렴이 옷 사실분들께 알려드림 2 광고 2024/10/12 3,690
1634685 입 짧은 청소년 먹는거 2 oo 2024/10/12 395
1634684 파리바게트나 던킨 알바하셨던분 아실까요 3 궁금 2024/10/12 1,691
1634683 기념일 안챙기는 자녀두신분 21 가정교육인가.. 2024/10/12 2,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