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갱년기가 되니 지나온 감정들이 불쑥

.. 조회수 : 1,587
작성일 : 2024-10-12 08:48:44

갱년기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인데요..

 

어린시절의 나는 뭐든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향에 뭐든 그러려니 하는 무던한 아이였던것 같고..엄마는 본인이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ㅡ세끼 밥 열심히 해주고 돈 잘 벌어야한다ㅡ에 충실했어도 감정적인 교류가 있거나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잘 때리고 소리 지르고.. 초등 저학년때 작은아씨들을 읽고 왜 엄마는 작은아씨들 엄마 같지 않냐고 울면서 물었던 기억도 있네요..

 

돈을 잘 벌었어도(이건 나중에 안 사실) 알아서 자식들에게 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전 우리집이 여유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애들 키우느라 고생많은 부모님을 위해 손벌리기 싫다는 생각(k장녀의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고3 내내 저녁 도시락 대신 학교앞 분식집에서 제일 쌌던 메뉴.. 라면을 먹고 다녔어요. 나중엔 라면만 봐도 울렁거리고 한숨이 났는데 같이 밥먹는 친구가 가끔 먹는 돌솥비빔밥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가끔 밥 먹게 용돈 조금 더 달라는 얘기도 못했을까ㅎㅎ

 

동생들보다 공부도 별로였고 도드라지지 못해서 그랬는지 첫째는 살림밑천이라며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시키는 엄마덕에 초등때부터 집안 설거지 했었고..지금 생각나는게 고등학생때 시험기간이었는데도 어김없이 식구들 저녁상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했어요. 바로 아래 동생은 시험공부한다고 독서실로 나서는데.. 이 상황이 갑자기 화가 나서 설거지통에 손을 푹 집어넣다가 물 속에 있어 안보이던 식칼에 손이 베었었죠.. 저 서울 토박이고 멀쩡한 아파트에 살았어요. 어디 시골이 아니고.. ㅎ

 

뭔가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한건 너무 운이 좋게 제 수준보다 훨씬 좋은 서울 메이저 대학에 진학한 후.. 뭣모르던 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고.. 그 와중에 돈없어서 근검절약하는줄 알았던 부모님은 대학생이 된 동생들에게 차를 사주고 백만원 넘는 무스탕(그당시에 유행이었죠)을 사주고 애플컴퓨터를 사주고.. 전 그 예쁜 나이에 돈 없으니 이것저것 싸구려 사서 잘 매치도 안되는 패션 테러리스트였는데ㅎㅎ 이게 뭐지? 싶더군요.. 나중에 왜 나한텐 그런거 안사줬어?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넌 사달라고 안했잖아? ..

 

엄마가 다정해졌다는 생각이 든건 대학생이 된 이후였던것 같아요. 결국 어찌저찌 해서 자식들중에 제일 나은 대학에 갔고 졸업 후 취업도 좋은곳에 운좋게 잘 되서 돈도 잘 벌었거든요. 제 인생에 대운이 든 시기였나봐요. 그 대운도 결혼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결혼 후 아이 키우고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자식으로의 역할을 하며 사느라 바쁘다가 오십줄이 되어 보니 이젠 나이들고 힘없는 엄마가 저를 제일 의지하고 너없으면 못산다 사랑한다며 사랑으로 충만한 엄마가 되었네요.

아이 키우면서 한 번씩 생각이 났어요. 세상에 애가 고3인데 야자때 저녁 먹으라고 왜 용돈도 잘 안챙겨줬을까? 그 땐 왜 이랬을까 저랬을까...

 

다 지난 일이고 지금은 나에게 성의껏 대하시고 의지하고 계시니 잊고 지내다가도 한 번씩 불쑥 본인 성격이 나와서 부딪힐때마다 묻어둔 의문들이 치고 올라와서 너무 힘드네요.

어젠 다른 사람 역성드느라 저에게 소리지르고 돌아와서 바로 눈치보며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에게 갑자기 서러워져서 '엄.마.는. 왜. 평.생. 나.한.테. 이.래?' 소리가 단전에서 올라오더군요. 미안하다고 우는 엄마에게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잊읍시다 했지만 돌아와서 누워 생각하니 참.. 힘의 무게는 이제 나에게 더 있으니 결국 약자는 엄마인데 어떻게 해도 죄의식이 느껴지는 상황.. 갱년기라 감정이 들쑥날쑥해서 더 힘든가봅니다..

한편으론 아이 키우는게 정말 무서운 일이구나, 한 인간에게 평생 자유롭지 못할 기억들이 키워지면서 생성되는구나.. 인간은 결국 잘나든 못나든 어릴때 가진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는구나. 내 아이는 나에게 키워지면서 어떤 감정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IP : 223.38.xxx.172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ㄹㄹㄹ
    '24.10.12 8:51 AM (1.239.xxx.246) - 삭제된댓글

    지금도 사랑 충만한 엄마가 아닌거죠.
    방법을 바꾼 것일 뿐...

  • 2. ㅡㅡㅡ
    '24.10.12 8:57 AM (118.235.xxx.63)

    노노 원글님
    큰 착각중 전혀 다정해진
    엄마가 아닙니다
    나이들고 힘없어지니 재빠르게 내말 잘 들을거 같은 자식한데
    의지할뿐
    한마디로 호구 ㅜㅜ (죄송)
    엄마를 약자로 생각하시다니
    약자는 소리 못 질러요 (원글님이 엄마한데 소리
    못 지르잖아요)
    반대로 님이 엄마한데 하고싶은말 다 하고 곧바로 미안하다 하실수 있으시겠어요?

  • 3. 님이
    '24.10.12 9:01 AM (118.235.xxx.100)

    더 병들어 가기 전, 아직 엄마 기운 있을 때 다 얘기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님 속풀이 다하세요. 엄마가 더 늙어 병들고 님을 붙잡고 의지하기 시작하면 더 답없어요. 지금도 님 사랑해서가 아닌 아쉬워서 저러는거. 당신 사랑하던 자식들은 부려먹기 안쓰럽고 사랑만 받았던 그들은 엄마에게 뭘 줘야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고.
    님은 어릴 때 못받던 사랑과 인정을 이런 방식으라도 받고 싶어 엄마 옆에 붙어있는것. 그것에 매달려 있으면 님 엄마 상태가 안좋아질수록 점점 더 억울해 지고 님만 죄책감과 혼란스러움에 싸이게 되요.
    엄마 돌봄은 많이 받은 자들에게 넘기세요. 님른 적당한 선에서 자르시고

  • 4. .....
    '24.10.12 9:06 AM (119.149.xxx.248) - 삭제된댓글

    님 엄마같은 분이 끝까지 이기적인거죠 힘있을때가 그 사람의 본모습...이건 남편도 마찬기지에요

  • 5. 저도
    '24.10.12 9:13 AM (172.226.xxx.46) - 삭제된댓글

    저도 그래요
    갱년기라 그런가봐요. 저희는 가난했었고 엄마한테 뭘 사달라고 해본적이 없어요
    학교 준비물도....그렇지만 막 제가 가장역할을 하는것은 아니었고 엄마도 나름 아끼면서 키우신거 같기는 한데요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 나중에 돌아가셨을때 내가 후회하지 않으려고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근데 가끔 엄마는 나에게 무엇을 그렇게 해줘서 당당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할까 그런 생각이 들고
    엄마는 나이 50때 엄마의 엄마에게 나만큼이라도 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가끔은 원망도 들고요
    난 애들 한번도 맡긴 적도 없는데 왜 나한테 나들이 한번 안 데리고 간다고 원망을 하나...내가 놀러다니면서 엄마를 안 데리고 다닌것도 아니고...난 여행이 안 좋을 뿐인데.... 힘드네요 진짜로
    직장다니고 바쁜 사람은 뭘 해도 그냥 그게 이유가 되니 탓을 안 하는데 왜 저는 동생보다 더 하면서 그 까짓거 하나로 필요없다는 말까지 듣는건지..... 그럴바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필요없다는 말 듣는게 낫지 않나...
    생활비도 전화요금도 사소한 필요한건 다 나한테 말하면서....말하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

  • 6. 저도
    '24.10.12 9:17 AM (172.226.xxx.46) - 삭제된댓글

    저도 그래요
    갱년기라 그런가봐요. 저희는 가난했었고 엄마한테 뭘 사달라고 해본적이 없어요
    학교 준비물도....그렇지만 막 제가 가장역할을 하는것은 아니었고 엄마도 나름 아끼면서 키우신거 같기는 한데요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 나중에 돌아가셨을때 내가 후회하지 않으려고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근데 가끔 엄마는 나에게 무엇을 그렇게 해줘서 당당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할까 그런 생각이 들고
    엄마는 나이 50때 엄마의 엄마에게 나만큼이라도 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가끔은 원망도 들고요
    난 애들 한번도 맡긴 적도 없는데 왜 나한테 나들이 한번 안 데리고 간다고 원망을 하나...내가 놀러다니면서 엄마를 안 데리고 다닌것도 아니고...난 여행이 안 좋을 뿐인데.... 힘드네요 진짜로
    직장다니고 바쁜 사람은 뭘 해도 그냥 그게 이유가 되니 탓을 안 하는데 왜 저는 동생보다 더 하면서 그 까짓거 하나로 필요없다는 말까지 듣는건지..... 그럴바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필요없다는 말 듣는게 낫지 않나...
    생활비도 드리고 전화요금도 내주고 사소한 필요한건 다 나한테 말하고 말하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이번에 갔더니 그러시네요
    그 이야기를 동생한테도 똑같이 하는지 궁금해요.동생보다 더 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 한게 없는데....
    내가 감정 쓰레기통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끝에 잊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잊혀지나요...
    정말 너무 씁쓸해요

  • 7. 같은 처지
    '24.10.12 9:25 AM (121.124.xxx.219)

    위에 님이님 말에 격하게 공감하네요. 저도 갱년기 되니 예전에 억울함이 올라와요. 형제중 왜 나만 참아야되고 왜 나만 엄마에게 맞춰줘야 하는지..참다참다 엄마에게 평생 처음으로 울면서 말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네가 갱년기 오더니 성격이 이상하게 변했다" 였어요. 근데 너무 무서운게 이상황이 억울하면서도, 평생 가스라이팅을 당해서그런지.. 내가 불쌍한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도 동시에 든다는거에요.
    하지만.. 이제 앞으로는 무조건 내 감정을 그때그때 말할거에요. 인정해주던 안해주던 말해야 억울함이 덜할 덧 같아서요
    원글님도 더이상 참지말고 화나면 화내세요. 절대로 미안하다 하지 말고요

  • 8. ..
    '24.10.12 9:26 AM (223.38.xxx.87) - 삭제된댓글

    사실 이해하려면 이해할수도 있죠.. 엄마가 자라온 환경이라든가 시대적 상황이라든가 생각해보면 인간으로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왜 이런 모든걸 이해하고 인간대 인간으로 품는게 결국은 나 뿐인가 싶어 그게 억울하기도 해요.
    그냥 이런 성향으로 태어난게 죄인가 싶어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옆에 있는다기보다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는것이거든요. 사랑이라기 보다 책임감이라고 하야할까요..

  • 9. ..
    '24.10.12 9:28 AM (223.38.xxx.87)

    사실 이해하려면 이해할수도 있죠.. 엄마가 자라온 환경이라든가 시대적 상황이라든가 생각해보면 인간으로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왜 이런 모든걸 이해하고 인간대 인간으로 품는게 결국은 나 뿐인가 싶어 그게 억울하기도 해요.
    그냥 이런 성향으로 태어난게 죄인가 싶어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옆에 있는다기보다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는것이거든요. 사랑이라기 보다 책임감이라고 하야할까요. 성격도 이젠 T에 가까워요. 사람사이 관계에 드라이하고요. 이것도 결국은 자기방어력이 발동한 것 같아요..

  • 10. 바람소리2
    '24.10.12 9:57 AM (114.204.xxx.203)

    사랑은 무슨
    필요하니 그리 대하는거죠
    지금도 차별 당하고요
    저는 점점 더 맘이 식어서 연락 줄였어요
    다 퍼주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의지하라고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3786 혹시 경동시장 맛난 과일집 아시나요? 5 경동시장 2024/10/12 688
1633785 와우 삼겹살을 시켰는데 ........ 2024/10/12 807
1633784 먼지없다고하는 러그 어떨까요? 3 . . 2024/10/12 360
1633783 저도 노벨 문학상 수상을 핑계로 부랴부랴 한자 적어 봅니다. 3 크라상 2024/10/12 851
1633782 엄마 이야기 9 은하수 2024/10/12 1,060
1633781 친절한 82 2 두딸맘 2024/10/12 346
1633780 예전 혜경쌤 참게장 3 참게장 2024/10/12 491
1633779 동네 세탁업체 보관료를 받던데...다른 세탁소들도 그런가요? 3 수선행 2024/10/12 570
1633778 저 음식만 잘해요 그런데 보리밥집 열면 망할라나요? 14 ㅁㅁ 2024/10/12 2,143
1633777 (후기) 꽃미남 카페 알바 다시 봤는데 2024/10/12 1,009
1633776 북한에 무인기 침투 4 now 2024/10/12 992
1633775 시나노골드 맛있네요 10 사과의계절 2024/10/12 1,588
1633774 전세사기 주범 '가짜 부동산'…부동산 거래 '46%' 무등록 중.. 2 ㅇㅇ 2024/10/12 877
1633773 게시판이 따스하네요 6 여면가우 2024/10/12 507
1633772 어떻게 이름도 한강 8 ㅇㅇ 2024/10/12 1,237
1633771 소확행_행복템(살림살이) 16 .. 2024/10/12 1,813
1633770 이븐한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7 ㅇㅇ 2024/10/12 907
1633769 백만년만에 자유부인이네요 1 hh 2024/10/12 456
1633768 간장 보관 1 가을 2024/10/12 273
1633767 쭈꾸미볶음에 대패삼겹 넣으려는데 질문 4 .. 2024/10/12 398
1633766 신발 ... 2024/10/12 202
1633765 처음으로 글 올려봐요 7 . 2024/10/12 390
1633764 초딩 아들의 계탄 날 5 ㅎㅎㅎㅎㅎ 2024/10/12 1,059
1633763 쿠팡플레이에 콜린퍼스의 오만과 편견 3 세아 2024/10/12 674
1633762 매일경제에 한강 작가님과의 서면인터뷰가 올라왔습니다. 9 물방울 2024/10/12 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