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이 아빠가 돌아가신지 2년째입니다.
전립선 암으로 수술 하셨고
위에 용종이 있어서 떼어냈어요.
꾸준히 병원 다니셨고 혈액 검사도 꾸준히 받았는데
췌장암인 걸 발견했을땐 이미 3~4기였습니다.
위에서 용종 떼어내고 조직검사했을때 그게 암이었다고 했어요.
천만 다행이라고 했는데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하셔서 수술받은 종합병원 가셔서 검사했는데 췌장암이었네요.
72세.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인데... 손주들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저한테는 그냥 영원한 아빠였습니다.
나이들어가는 것도 느끼고 살지 못할만큼 저희 아빠는 그냥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거 같았어요.
전화해서 아빠 나야~~ 하면 어 큰딸 웬일이야 하시고
친정에 가면 대문앞까지 나와서 오느라 수고했다 하시고
변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서도 항암을 권했고
아빠도 항암 하시겠다고 결정하셨기 때문에 큰 고민없이 항암을 시작했지만
결국 힘든 그길을 못 견디시고 2차 항암만에 돌아가셨어요.
정신력도 강하시고 1차 항암 후에도 큰 부작용은 없었기 때문에
저희 가족은 모두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체 식사량도 많지 않았던 분이 항암으로 인해 입맛을 잃어버리자
몸이 쇠약해지는 건 순식간이더라구요.
아빠가 계시던 병원을 오가며,
그 해 병원의 그 찬란한 가을정원을 바쁘게 오가며 아빠가 누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코로나로 병실 면회조차 불가능해 대기실에서 아빠가 나오시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래도 우리 아빠는 좋아지실 거라 믿으며 단 한순간도 불안한 생각을 한적이 없었지만
아빠는 끝내 암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어요.
아빠가 아프신 걸 모르는지 텃밭에 일궈놓은 모든 농작물은 눈치도 없이 풍년이고
감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 석류나무까지 이례없이 많은 열매들이
주렁주렁이었습니다.
병문안 오며가며 들리신 고모들이 서로 과일이며 농작물이며 챙겨가는 것 조차도
어찌나 마음에 힘이 들던지요
그 해 가을은 찬란하면서도 슬프고 스산했어요.
그렇게 아빠를 보내고 이제 2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아빠라는 단어를 생각만 해도 눈물부터 납니다
꿈속에서 건강한 아빠를 보고 아빠 이제 안아파?? 하면서 울다가 깼던적이 여러번이었어요.
여기저기 올라오는 게시글에서 암이라는 단어만 봐도 그 글을 읽을 용기가 없어서
읽지 못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그래도 살아진다고 이제는 그런 글도 볼 용기가 생겼어요.
아마 다시 그때가 돌아온다해도 저는 항암을 선택할지도 몰라요.
그냥 그럴 거 같아요. 아빠가 조금이라도 우리곁에 있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릅니다.
아빠가 없는 그 빈자리는 세상 그 어떤걸로도 채울 수 없음을,
늘 강해보이고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빠에게 저는 그동안 너무 무심하고 철부지 없던 딸이었음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누군가는 시간이 흐르면 무뎌진다는데
마음속의 이 빈자리는 시간이 흘러도 그런 척 할뿐이지 무뎌질 것 같진 않아요.
모든 부모님들이 건강하시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