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이니 이제 곧 사춘기가 올 거라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요.
여름방학 할 때까지만 해도 딸같은 아들, 너무 다정하고 저랑 맨날 수다 떨고 같이 영화 보는 게 제일 재밌다고 하고요. 잠도 제가 밤늦게 일하다 서재에서 자면 엄마 옆에서 잔다고 인형 안고 오던 아이였어요. 그러다 방학 끝날 때쯤 코로나 걸려서 자기 방에서 열흘 가까이 격리 시켰는데요. 그 후로 아이가 싹 달라졌어요. 제가 소파 옆자리에만 앉아도 일어나 멀찍이 떨어져 안고요. 혹시 제 손이 닿기라도 할 것 같으면 움츠러 들고요. 학교에서 픽업해서 학원 데려다 주는 그 짧은 시간에 차에 같이 타는 것도 못견뎌 하는 것 같아요. 아무 이유없이 날선 소리를 하고 상처주는 말을 틈틈이 날리네요. 오늘도 저녁때 뭐 해줄까 스테이크랑 돈까스 중에 고르라고 했더니, 목소리 좀 낮추라고 제가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게 창피하대요. 차 안에 우리 둘만 있는데 누굴 의식하는 걸까요. 어디 가게에 환불 받을 게 있어서 고객 센터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엄마 오늘은 제발 싸우지 마요, 또 화내지 말라고요. 내가 언제 남한테 화를 냈다고 그래? 물어도, 하여튼 오늘은 그러지 말라고요. 마치 상상속의 화가 가득찬 나쁜 엄마를 대하는 것 같이 그러네요. 며칠 전엔 술 좋아하는 아버지 얘기가 티비에 나왔는데 허허 웃으면서 우리엄마 만큼 술 좋아하는 엄마는 없을 걸요, 혼잣말처럼 그러길래, 그럼, 일 끝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엄마는 사는 낙이야, 그랬더니. 일 끝나고는 무슨, 하루 종일 마시고 음주운전도 맨날 하면서. 그러길래 엄마가 언제 하루종일 술을 마셨어? 그리고 난 30년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안 했어! 그렇게 따졌더니, 녜녜, 하고는 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네요. 어떻게든 저를 화나게 하고 상처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갑자기 제가 적이 되어야 할 아무런 계기가 없었는데, 이게 정말 그 무서운 중2병인건가요.
선배님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아이가 말도 안되는 못된 소리를 할 때 일일이 따지고 대꾸하셨나요? 야단치면 다시 안 그럴까요? 남편은 그냥 무시하래요. 아이가 남편한텐 안 그래요. 제가 무슨 얘기 하는지 들으려고도 안하고 오히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해서 일을 키운다고 하네요. 남편은 집에 잘 없기도 하고 가끔 집에 있을 땐 아이가 컴퓨터나 게임 관련 질문도 많고 도움을 받을 입장이라 그런지 아빠의 권위는 지켜주더라고요. 매일 밥 차려주고 빨래 해준다고 만만한 저한테만 그러는 것 같아요. 너무 야비하죠? 생각할 수록 화나네요. 저도 나름 화가 오르락 내리락할 법한 갱년기인데요. 그냥 꾹 참고 무시하고 안 싸우려고 견디다 보면 이 시기가 지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