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하늘에 분홍빛이 도는, 조용하고 아직은 모든 것이 깨어나지 않은 아침
나는 어젯밤 읽다 만 욘 포세의 책을 다시 집어들고 침대에 기대앉는다
이 시간 어두움을 막 벗어난 밝기가 좋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불빛같은 이 밝기가 좋다
헤드보드에 달린 독서등을 켜니 진하지 않은 어둠 속에 노란 불빛이 동그랗게 퍼진다
그 불빛 안으로 책과 내가 들어가면 노르웨이 피요르 해안가 오두막집 다락방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이 불빛 아래 책읽는 시간이 좋다
문득 책 너머 두 발이 보인다
저것은 아빠의 발이다
하얗고 뼈대가 굵직한, 발등고가 높고 발볼도 넓은 아빠의 발
달리기, 축구, 야구, 골프, 등산, 낚시,.. 운동이며 활동은 다 잘하셨고 즐기셨던 아빠의 발
치매걸리신 엄마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 4시반이면 나가서 한시간씩 빨리걷기를 하시고 들어오셔서는 기어를 높인 실내자전거를 땀흘려 타시고 낮에는 엄마 손 붙잡고 뚝방길을 매일 두시간씩 걸으며 엄마에게 햇빛을 쏘여주신 아빠의 발
아빠가 보고싶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어딘가를 향해 아빠를 불렀다
아빠! 보고싶어요
아빠! 먼저 가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랑 푸른 들판 맑은 물가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열심히 즐기고 계시죠?
그런데 오늘 아침 내 몸 끝에 달린 발을 보니 아빠가 계신 곳은 먼 하늘이 아니었다
튼튼하고 걷기 좋아했던 아빠의 발이
몸은 노인이셨지만 얼굴은 해맑은 아이에 멈춰있던 아빠의 미소가
하늘과 숲과 바다를 보며 감탄과 감동을 담던 아빠의 눈이
나와 유난히 잘 통하던 아빠의 마음이
그 모든게 다 나에게 있었다
아빠는 나와 함께 계셨구나!